여기 한 기업이 있다. IMF 경제위기로 법정관리 상태에 있던 기업들을 인수하는 것으로 출발해,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웠다. 때마침 찾아온 조선경기 호황 덕에 재계 순위 10위권을 넘보는 재벌로 급성장했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내실이 부족했던 탓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버텨내지 못했다. 공적자금 4조 5천억 원이 투입됐다 증발했고 회사는 수조 원의 순손실을 내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결국 그룹이 산산조각 나면서 조선업 계열사는 상장폐지, 지주회사는 채권단의 경영관리를 받는 처지가 됐다.
여기 또 다른 기업이 있다. IMF 경제위기로 모그룹이 해체됐지만, 2001년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국내 조선업계 빅3로 떠올랐다. 글로벌 금융 위기는 해양플랜트 사업 진출로 극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이 회사가 분식회계를 통해 해양플랜트 분야의 엄청난 손실을 감춰왔음이 드러났다. 정부가 공적자금 4조 2천억 원을 밀어 넣은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야당은 정부가 분식회계 사실을 알고도 자금을 지원했다고 공격했지만 당연히 누구도 그랬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 분식회계가 드러나면서 이 회사의 주식은 거래 정지됐고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이들 두 회사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뉴스타파>가 첫 번째 기업의 8년 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분석했더니 이들은 연간 수억 원을 ‘접대비’ 명목으로 사용해오고 있었다. 이 중 1회 평균 접대비가 가장 많았던 대상은 기자였는데, ‘김영란법’ 반대 목소리를 높이던 양대 경제지와 <연합뉴스>가 접대비 탑3에 올랐다. 두 번째 기업은 아예 출장이라는 명목으로 <조선일보> 주필을 태운 전세기를 띄웠다. 사기업 출장을 왜 언론사 주필이 가는지, 전세기가 지중해의 아름다운 휴양지로 향한 이유는 무엇인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첫 번째는 STX, 두 번째는 대우조선해양 이야기다.
조선업에 위기가 닥쳤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한때의 업계 4위는 공중 분해됐고 빅3도 곪아 들어가고 있다. 정부는 대마불사를 외치며 공적자금을 밀어 넣어 보지만, 그 대마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예금보호공사나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채권으로 조달한 자금이라지만, 정부가 원리금 상환을 보증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회수하지 못한 자금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그래서 그 돈은 어디로 갔는가. 천문학적인 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누가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책임을 지워야 할 이도 돈과 함께 실종됐기 때문이다.
언론과 자본은 일심동체가 된 지 오래다. 회사가 잘 나갈 때는 회사 돈이, 경영이 어려워지면 공적자금이 기자의 주머니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 주머니가 두둑해진 기자는 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펜을 들고, 살아난 기업은 다시 기자의 주머니를 채운다. 감시의 의무를 진 자들이 눈먼 돈으로 자신의 눈도 가리는 동안, 조선소의 노동자들은 길바닥으로 내몰린다. 그들의 월급에서 떼어간 세금이 공적자금의 기반이라는 사실은 지독한 아이러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주머니를 채운 기자들이 ‘구조조정의 시급함’에 대해 써내려갈 때, 비극은 차라리 희극에 가까워진다. 곧 있으면 민족의 대명절이라는 한가위다. 명절상여금은 바라지도 않으니 몇 달째 밀린 임금이라도 달라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외침을 한가위 보름달은 들어줄 수 있을까.

김민관 대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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