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이 대부분인 건축 세계에서 당당히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한 여성이 있다. 바로 한국건축가협회 부산건축가회 손숙희(건축공학 84, 졸업) 회장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자신의 건축 사무소인 ‘수가디자인 건축사사무소’ 대표직까지 겸임하고 있다.  그녀가 건축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은 우연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홀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들여야만 했다. 오로지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던 건축 현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전날 밤을 꼬박 새워 공부하기도 했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부대신문>은 7월 9일, 수가디자인 건축사사무소를 찾아가 손숙희 회장을 만났다.

 

△ 올해부터 한국건축가협회 부산건축가회 회장직을 맡게 됐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
  부산광역시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국건축가협회는 설계디자인을 전공한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영리를 추구하는 단체라기 보단 건축가들이 모여 재능을 기부하는 봉사단체에 가깝다. 흔히들 ‘건축’이라 하면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그에 비해 건축에 대한 인식은 수준이 낮은 편이다. 유명한 건물을 보더라도 그 건물을 지은 건축가가 누구인지 언급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한국건축가협회에서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건축분야에서 한번 등단한 건축가들은 승승장구해서 잘 나갈 수 있지만, 등단하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그래서 한국건축가협회 부산건축가회에서는 자체적으로 공모를 열기도 하고, 인재를 뽑아 시상식을 진행하기도 한다. 젊은 건축가들로 하여금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고 자신을 알릴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또한 최근에는 건축분야에 적성을 가진 인재들을 발굴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협력해 건축에 관심 있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단체가 지역사회에 제공한 바가 한 번의 봉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선순환을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한국건축가회 회장뿐 아니라 현재 수가디자인 건축사사무소 대표직과 함께 맡고 있는데, 두 가지 일 모두 하기에 어려운 점은 없나.
  두 가지 일 모두 하는 것이 버겁기는 하지만 본업을 넘어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
  본업은 수가디자인 건축사사무일이다. 2008년부터 독립해서 지금의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다. 이곳에서는 주로 지역자치단체나 관공서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참가신청을 하고, 선정되면 사업에 착수한다. 현재 맡아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부산진구의 소방서를 설계디자인하는 일이다. 이 같은 큰 프로젝트와 동시에 소규모 인테리어 공사도 맡아 하고 있다.

 

△ 초빙 교수로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현재의 건축사무소를 개소했다고 들었다.
  학문적으로 건축 분야에 깊게 파고들고 싶었다. 건축공학과 학부 과정을 졸업하고 석사과정으로 인테리어를 전공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더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우리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동서대학교에서 초빙교수를 맡게 됐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 나름의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비교를 하자면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 일을 진행하는 설계사무소 일이 더 흥미로웠다. 강의하는 일과 비교했을 때 건축 사무소의 일은 매번 달라 긴장감이 생긴다. 맡게 되는 프로젝트 마다 사용자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된다. 다만 소규모의 회사이다 보니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렵기도 하지만, 이전의 노하우를 살려 착실히 사무실을 운영 중이다.

 

△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과 수학 과목을 좋아했다. 원래는 미술을 전공하려 했는데,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은 내가 수학을 전공하기를 바랐다.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친한 친구의 오빠가 건축을 전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곰곰이 고민해보니 수학과 미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좋은 전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건축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내 적성에도 부합한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됐다.

 

△ 우리 학교 재학 당시에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나?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막연히 ‘건축’하면 소규모의 주택 디자인 정도로만 떠올랐다. 그런데 막상 공부해보니 건축은 생각보다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전공을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3학년 때는 직접 학과 공부와 관련된 ‘서클’을 만들기도 했다. 서클 활동을 위해 작업 공간을 구했다. 그 곳에서 동기나 선배들과 공모전 준비를 하기도 하고 건축가로서의 꿈을 키워 나갔다.
  그 때부터 가져온 꿈이 있다면, 건축가로서 하나의 건물을 짓더라도 주변과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단순한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예술로서 의미를 지니도록 최선을 다해서 훌륭한 건물을 짓는 것이 목표이자 꿈이다.

 

△ 최근에는 많이 늘어났지만 건축업계에서 여성은 드물다고 들었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어려운 점은 없었나.
  우리 학교 재학 당시, 건축공학과에는 전 학년에 여학생이 6명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4명만이 지금까지 건축공학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원래 성격은 조용하고 차분했으나, 남학생들과 함께 지내고 경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활발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졸업 후에도 어려운 점이 있었다. 건축 현장에서 많이 들었던 말은 ‘여자가 무슨 건축을 하냐’, ‘아침부터 건설현장에서 여자를 보다니 재수 없다’ 등이었다. 또한 IMF 외환위기 때 다녔던 직장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뒤에 생각해보니 이러한 편견들 덕분에 이를 악물고 노력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건축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내 나이 또래 여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건축가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나.
  부산국제건축문화제가 2012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Hop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집을 고쳐준 일이었다.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에 있는 집이었는데, 지어진 지 50년이 넘은 초가집을 조금씩 보수해서 사는 곳이었다. 밖에서 보기엔 멀쩡했지만 집 내부를 보니 나무 들보가 다 썩거나 헐어 있었다. 그런 집에서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던 것이다. 막상 공사를 진행하려 하니 생각보다 공사의 규모가 커서, 여기저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사무소 직원들을 동원해 자재를 나르기도 하고, 알고 지냈던 분에게 가구 등을 기부받기도 했다.
  공사가 모두 끝나고 나니 굉장히 뿌듯하고 벅차올랐다. 낡은 집에서 살던 할머니가 새로 지어진 집을 보시고는 바로 춤을 추시더라. 집을 새로 짓는 것에 멈추지 않고, 할머니의 추억을 보존해 드리기 위해 다른 일은 없을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 옛날 집에서 쓸 만한 대들보나 자재들을 이용해 마당에 장식품을 만들었다. 의미도 있고 아름답기도 해서 할머니도 마음에 들어 하셨다.

 

△ 개교 70주년을 맞아 우리 학교와 동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학교가 개교 70주년을 맞는 동안 많은 발전을 거듭했다.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에서 가장 인재들이 많은 국립대라는 명성도 자자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저해하는 것 같다.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있는 후배들을 보면, 서로 힘을 합쳐서 일을 하려는 협동심이 부족한 것 같다. 얼마 전 열렸던 우리 학교 건축학과 졸업작품전에 방문해서도 얘기했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힘들 때 서로 돕는 것이었다. 최종적으로는 그것이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손숙희 회장이 직접 제작했던 부산진소방서 설계안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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