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좋아하시나요? 한국인의 혈관 속에 흐를 것 같은 소주부터 탱고를 추는 여인이라도 만나야 할 것 같은 와인, 보드카, 맥주, 요즘 대유행 중인 과일 맛 나는 달콤한 술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형형색색의 맛과 향을 자랑하는 술의 대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술을 유독 사랑하는 우리나라는 지구 상 그 어떤 나라보다(심지어 러시아보다도!) 독주를 많이 마신다는 통계가 있기도 할 정도인데요. 사랑한다면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만 오히려 한국은 만취한 이들이 벌이는 문제들에도 지나치게 관대한 편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건사고는 셀 수가 없을 지경이고 심지어 살인, 강도, 폭력 등의 범죄에까지도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하는 판결에 대한 불만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 잔 마셨을 뿐이라며 무심코 벌이는 음주운전은 나뿐만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고는 합니다.
1,120년의 어느 날, 영국의 왕 헨리 1세는 노르망디에 다녀오는 길에 후계자인 윌리엄 왕자를 ‘화이트 십’이라는 새 배에 태웠습니다. 아들이 좋은 배를 타고 안전하게 귀국하길 바란 아버지의 마음이었겠지만 당시 최고 성능인 멋진 신상 배에, 아버지 눈치 볼 일이 없어진 젊은 왕자와 왕자의 친구들인 젊은 귀족들, 신이 난 선원들까지 합세하니 바로 흥청망청 술판이 벌어집니다. 과열 된 파티 분위기에 윌리엄의 사촌 스티븐을 포함한 몇몇은 몸이 안 좋다며 배에서 내리기도 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술판을 벌인 약 300여 명의 승객과 50여 명의 선원들은 원래 항해 시간을 훨씬 지난 밤이 되어서야 만취한 채로 항해를 시작합니다. 본격 12세기의 음주운전인 셈이죠. 그렇게 술 냄새 풀풀 풍기며 밤바다를 가로지르던 화이트 십은 얼마 후… 쾅!암초에 거세게 부딪혀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구출되었지만 이복 누이를 위해 돌아가기로 결정한 윌리엄의 구명정을 보고 허우적거리고 있던 수백 명의 사람은 손을 뻗었고 결국 구명정까지 침몰하면서 윌리엄 왕자를 포함, 승객, 선원들 대다수가 사망하였습니다.
윌리엄의 죽음에 영국은 큰 충격에 빠집니다. 헨리 1세에게는 수십 명의 자녀가 있기야 했지만, 그중 왕비에게서 태어나 후계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자녀는 죽은 윌리엄과 딸 마틸다가 전부였기 때문이었죠. 헨리 1세는 딸 마틸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영국에서 여자가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이때만 해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고 결국 헨리 1세의 사후, 배에서 내렸던 사촌 스티븐이 왕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윌리엄의 선상 술 파티는 결국 마틸다와 스티븐 사이의 내전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피폐하게 만든 이 내전은 19년이 지난 후, 스티븐은 왕위를 보전하되 마틸다의 아들인 헨리 플랜태저넷이 후계자가 되는 식으로 마무리되었죠. 스티븐이 얼마 후 사망하면서 헨리 플랜태저넷은 헨리 2세로 즉위하며 플랜태저넷 왕조를 열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날, “술부터 깨고 출발하자” 했더라면 역사는 또 다르게 흘러갔을 것입니다.
최근, 만취한 상태로 운전하다 후배를 친 사망사고 뺑소니 사건이 술에 취해 사리분별 능력이 극심하게 떨어진 상태였다 등의 이유로 3년으로 감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다른 사건에선 극히 만취한 채 음주운전을 한 운전자가 차량 두 대를 들이받고 편의점으로 돌진까지 해놓고는 술 마신 것까지만 기억이 난다, 깨어보니 경찰서였다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사건의 운전자는 이 사건 외에도 이미 3차례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를 낸 전적이 있지만, 그는 여전히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이처럼 사건사고에 술이 미치는 영향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술 먹고 실수로…’라는 말만 나오면 한없이 관대해지고 개인들은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에는 혀를 차면서도 음주운전은 대수롭지 않게 하고는 합니다. 술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나 자신과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상기하여 사회와 개인 모두 책임감 있는 음주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이주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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