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이 법은 예정대로 오는 28일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논란은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곳곳에서 개정 요구가 빗발치면서 벌써부터 국회에 개정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사회적 혼란도 상당해서 주무 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에는 유권해석을 요청하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정식집과 한우농가가 모두 망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도 들린다. 대체 이 법이 무엇이 길래 이렇게까지 문제가 되는 것일까.

‘스폰서 검사’ 사건에서 촉발

2011년 11월, 대법원은 건설업자로부터 140만 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고 현금 1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대검찰청 한승철 전 감찰부장의 무죄를 확정했다. 그와 함께 기소된 검사 2명에게도 역시 무죄가 선고됐다. 접대를 받거나 금품을 제공받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일명 ‘스폰서 검사 사건’에 잇따라 무죄가 선고되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기존의 형법 체계로는 공직사회의 윤리를 확립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던 2012년, 김영란 전 대법관이 이끌던 국민권익위원회는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의 이름을 따 김영란법이라고 불리게 된 이 법안은 국민적 지지와 관심 속에 2013년 국회에 제출됐다. 이후 진통과 수정 끝에 2015년 3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청탁금지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부정청탁금지법은 본회의 통과 이틀 만에 헌법재판소로 향해야 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한국기자협회를 대리하는 방식으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요청한 것이다. 이후 사립학교와 유치원 관계자 등도 추가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쟁점은 크게 4가지로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 등을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것 △배우자가 금품을 제공받으면 자진신고 해야 한다는 것 △법에서 말하는 ‘부정청탁’과 ‘사회상규’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것 △금품 상한액수를 법률이 아니라 시행령으로 명시한 것이었다. 그리고 법 시행을 2달 앞둔 지난 7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부정청탁금지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최종 판단했다. 이에 부정청탁금지법과 동법 시행령은 오는 28일부터 정상 시행될 예정이다.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 전면 금지돼

부정청탁금지법의 핵심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부정청탁의 금지로 △인·허가 △채용·승진 △입찰·경매 △입학·성적 △보조·지원금 등 법률 5조에 명시된 14가지 항목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금지하는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발간한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해설집>은 ‘<형법>,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이 금품 수수와 결부된 청탁을 규제하고 있는 것과 달리, 부정청탁금지법은 부정청탁행위 그 자체를 규제’하며 ‘청탁 내용의 실현 여부와 무관하게 부정청탁행위 자체를 금지대상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부정청탁금지법에 따르면 부정청탁을 받은 공직자는 이것이 부정청탁임을 알리고 거부 의사를 표해야 하며, 동일한 청탁을 다시 받은 경우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부정청탁을 한 자에게는 최대 3천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청탁을 받아준 공직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단 이해당사자가 직접 부정청탁을 한 경우에는 해당인에게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법인이나 단체를 위한 부정청탁에 대한 양벌규정도 존재한다. 법인이나 단체의 소속원이 업무에 관하여 부정청탁을 한 경우 법인·단체에도 주의와 감독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의 자율적인 반부패 노력을 유도하고 민간에서도 청렴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적에서다.
한편 이를 두고 국회의원들이 법 적용 대상에서 빠져나갔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도 선출직 공무원으로 당연히 부정청탁금지법의 적용 대상이다. 다만 정당한 형태의 입법청원 등을 보장하기 위해 ‘공익을 위한 제3자의 고충 전달’은 부정청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예외조항을 두었을 뿐이다.

고가의 금품 수수 시
직무관련성 없어도 처벌

부정청탁금지법의 또 다른 핵심 내용은 금품수수의 금지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일명 ‘3·5·10 규정’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3·5·10 규정’은 부정청탁금지법의 진정한 의미라고 말하기 힘들다. 오히려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100, 300 규정이다. 부정청탁금지법은 법 적용 대상자가 1회 100만 원 혹은 연간 3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했을 경우 그 명목과 직무관련성, 대가성에 무관하게 형사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처벌할 수 없었던 형법 상 뇌물죄를 보완한 것이다. 만약 법 적용 대상자가 직무관련성이 있는 금품을 1회 100만 원 이하로 수수했을 경우 수수금액에 2~5배에 해당하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렇다면 ‘3·5·10 규정’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부정청탁금지법은 몇 가지 예외사유를 두어 금품의 제공을 가능토록 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원할한 직무수행, 사교·의례·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선물·경조사비 등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가액 범위 안의 금품’이며 이때 시행령으로 정한 가액이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 원인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식사 접대와 선물이 줄어 내수가 위축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서울 시내 1만 원대 맛집을 소개하는 <한끼 식사의 행복>을 출간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공무원 후배들이 떳떳하게 식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냈다’며 ‘값비싼 곳에서 밥을 안 먹고 비싼 선물을 안 보낸다고 위축될 경제라면 아예 접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일갈하기도 했다.
적용 대상자 두고 논란 일기도

부정청탁금지법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었던 것은 적용 대상자의 문제였다. 우선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이 대상자로 포함된 것이 논쟁거리가 됐다. 헌법재판소는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적용 대상자로 포함한 조항에 대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에서 ‘해당 조항은 언론인의 법적 권리에 어떤 제한도 하고 있지 않다’며 ‘언론과 교육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에게 공직자에 맞먹는 청렴성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한국기자협회는 즉각 ‘김영란법 합헌 판결 유감이다’라는 성명을 내고 ‘민간영역에 속하는 언론이 공공성이 크다는 이유로 공공기관, 공직자로 규정되고 언론활동 전반이 감시와 규제 대상이 되는 상황은 납득할 수 없다’며 ‘앞으로 기자들은 정상적인 취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활동의 제약은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싸늘하다. 당장 기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시사인> 고재열 기자는 개인 SNS에 쓴 글에서 ‘기자협회 성명서가 개그’라며 ‘당연히 자기검열 해야지, 준다고 다 받아 쳐묵쳐묵 하면 기사는 어떻게 쓰냐’고 꼬집기도 했다.
한편 법 적용 대상자의 배우자가 금품을 수수한 경우 이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법 적용 대상자 본인을 처벌하는 규정도 문제시 됐다. 이는 헌법재판소 내에서도 가장 의견이 갈렸던 부분으로 ‘배우자가 금품을 받는 것은 본인이 받는 것과 실질적인 차이가 없으므로 금품의 우회 제공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다. 그러나 배우자와 본인을 동일하게 볼 수 없으며 금품을 수수한 당사자를 처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정미, 김이수 등 소수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신고를 하지 않은 행위를 금품을 수수한 것과 동일하게 처벌하는 것은 형벌·책임 비례원칙에 어긋나 균형을 상실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법체계 불완전 지적하는 목소리도

부정청탁금지법에서 ‘이해충돌방지규정’이 사라진 부분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이해충돌방지규정은 공직자들이 자신이나 4촌 이내 친척의 사적인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직무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국민권익위원회가 제출한 초안에서는 핵심내용이었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제됐다. 이에 최근 안철수(국민의당) 의원,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등이 이해충돌방지조항이 빠진 법은 반쪽짜리라 주장하고 나서면서 논란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부정청탁금지법 처리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김기식(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은 지난달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해충돌방지 조항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제척회피제도(공직자의 가족이 연관 업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인데, 현실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시행이 불가능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며 ‘이해충돌방지조항을 포함하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다’고 반박했다. 법 적용 대상자의 4촌 이내의 친척이 수백만 명에 달하는데 이들의 업무를 모두 파악하고 규제하는 것이 위헌적일뿐더러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한편 부정청탁금지법의 규제 대상이 광범위하며 그 내용이 모호하다는 것도 문제로 거론된다. 특히 ‘부정청탁’과 ‘사회상규’의 개념이 불명확하다는 것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에 헌법재판소 측은 다른 법령에서도 해당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관련 판례도 많아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부정청탁 △사회상규 △직무관련성 △동일인 등 법의 중요개념들이 혼란스럽다는 비판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김주영(명지대 법학) 교수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상규 규정의 해석 여부가 갈리는 일들이 생길 것’이라며 ‘향후 판례를 통해 사회상규의 의미가 자연스레 규정될 것이라고 하지만 판결이 나기까지 수사를 받는 사람들의 피해를 생각하면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검찰 권력이 지나치게 강해질 것이라는 문제제기도 나온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의 해석에 의해 합법과 불법이 갈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과거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을 지냈던 최교일(새누리당) 의원은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에서 30년을 근무한 자신도 법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해 헷갈린다’며 ‘부정청탁금지법 시행으로 검찰 권력이 강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부정청탁금지법의 의미 기억해야

이처럼 법 시행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논란들은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역사 상 가장 강력한 부패방지법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법 시행 이후에도 이때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정청탁금지법을 비판하는 측에서도 법의 입법목적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2015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시행한 부패인식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무원 중 3.4%가 ‘공직사회는 부패하다’고 느낀 반면 일반국민의 경우 무려 57.8%가 ‘공직사회는 부패하다’고 느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국민들이 공직사회에 높은 청렴성을 기대하며, 현재 공직사회는 이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부정청탁금지법의 개정이나 보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제20대 국회 역시 곳곳에서 빗발치는 개정요구를 묵살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이 부정청탁금지법을 만들어 냈는지 기억해야 한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재직하며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을 추진하던 당시 ‘금품을 받아도 직무관련성만 없으면 처벌받지 않아 이를 부패로 인식하지 못하는 모럴해저드가 만연하다’며 ‘국민들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제 이 같은 법을 제정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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