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브라질 남부 포르투 알레그레시에서 처음 시작한 ‘주민참여예산제’.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9월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의무화됐고, 부산광역시에서 주민참여예산위원회를 꾸린지는 4년이 지났다. 하지만 최근 들어 법적으로 주민의 참여를 제한하고, 공무원의 참여를 의무화하는 등 제도 본래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로 4주년을 맞은 부산광역시의 ‘주민참여예산제’. 이 제도가 공무원의 개입, 예산 삭감 등으로 본래 취지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편성에 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시민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재정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지역 예산에 대한 시민의 책임성을 고취시키기 위함이다. 주민참여예산제는 2011년 <지방재정법>이 개정되면서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도록 의무화됐으며,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의 경우 2012년부터 주민참여예산위원회(이하 참여예산위)를 구성해 운영 중이다. 참여예산위는 부산시와 각 지역구ㆍ군 별로 구성된다. 또한 작년부터는 <부산광역시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 개정안에 따라 부시장이 맡았던 부산시 참여예산위 위원장직을 민간위원이 맡게 됐다.

주민 참여 제한되는
주민참여예산제?

최근 행정자치부에서 입법 예고한 <지방재정법 시행령> 개정안이 참여예산위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참여예산위 관련 항목에서 ‘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한 15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도록 명시했다. 현재 부산시에는 100명의 참여예산위 위원들이 소속돼 있는데, 개정안에 따라 총 85명이 줄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두 곳(강서구, 중구)을 제외한 모든 지역구ㆍ군에서 적게는 5명, 많게는 35명의 인원을 감축시켜야 한다.
시민단체는 참여예산위 위원 수를 15명으로 하향 조정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이하 참여연대)는 최근 논평을 통해 이번 <지방재정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자체마다 인구수, 예산 규모, 추진 사업, 문화 등이 다름에도, 이처럼 개정하는 것은 주민참여예산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행정 이기주의의 발로’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이병구 기획실장은 “부산시 인구가 350만 명인데 15명의 참여예산위는 말이 안 된다”라며 “참여예산위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다양성을 보장함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해운대구 참여예산위 위원이었던 참여연대 신병륜 씨는 “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들의 많은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며 “적은 수의 인원이 전체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지에 의문”이라 답했다.

공무원 참여 의무화한 개정안

또한 행정자치부는 ‘공무원 위원은 전체의 4분의 1을 초과해선 안 된다’고 정함으로써 공무원의 참여를 의무화했다. 부산시에서는 주민참여예산제 도입 초기에 공무원들이 주도한 사업이 주로 통과되기도 했다. 부산시 참여예산위 양은진 전 위원장은 “주민들이 제안하는 사업 자체가 적다 보니, 공무원이 기존에 시행하던 사업을 참여예산위의 사업인 것처럼 제안하기도 했다”며 “예를 들어 낙동강 주변 오토캠핑장 설치의 경우, 공무원들이 환경단체의 반발을 우려해 참여예산위의 사업인 것 마냥 심의에 올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주민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는 제도에 공무원의 참여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현재 부산시 참여예산위에도 7명의 공무원 위원이 포함돼있다. 하지만 이들의 역할은 사업을 제안하고 회의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제안한 사업을 전문가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예산 편성을 도와주는 것이다. 해운대구 참여예산위 위원직을 맡았던 부산시민운동지원센터 김해몽 센터장은 “공무원 참여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주민들을 공무원의 예산 편성 과정에 참여시키겠다는 본래 취지를 왜곡시킨 것”이라며 “과도한 개입을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공무원 참여는 찬성”이라 전했다.

부산시의 예산삭감,
규제할 방법은 없다

올해 부산시에서는 주민참여예산제의 예산을 전년 대비 30%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방재정법> 상 참여예산위에 할당되는 예산의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참여예산위의 예산을 어떻게 편성하든 규제할 방안이 없다.
이에 참여연대는 작년 12월 논평에서 부산시 서병수 시장의 공약이었던 ‘주민참여 보장과 적정규모 예산편성’을 언급하며 ‘부산시는 주민참여예산제가 내실화될 수 있도록 오히려 예산을 증액하고 주민참여예산위원들의 다양한 활동을 보장해야 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김해몽 센터장은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서는 참여예산위에 충분한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며 “법적으로 참여예산위의 예산 편성 방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홍보 부족도 문제점 중 하나

전문가들은 주민참여예산제에 대한 홍보가 부족한 점을 문제로 꼽는다. 주민들이 예산 편성 과정에 참여하고, 지속해서 행정업무에 관여함으로써 재정운영을 감시하는 본래 취지에 맞게, 주민들의 충분한 관심과 활발한 사업제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영강(동의대 행정학) 교수는 “아직 제도도입 초기 단계라 주민들의 사업제안이 적은 것 같다”며 “충분한 홍보와 선전을 통해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고 전했다. 부산시 참여예산위 위원장으로는 처음으로 민간위원 출신인 양은진 전 위원장도 “작년에 민선 위원장이 뽑히기 전까지는 부산시의 홍보가 부족해서 주민들 참여가 더뎠던 것 같다”며 “앞으로 주민 대상 홍보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이뤄져서 많은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해운대구 주민참여예산위원회가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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