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부산광역시 교육청 앞에서 3일 째 단식 농성을 하던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김희정 전 지부장이 응급실에 실려 갔다. 만성 염증성 질환인 베체트병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단식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음에도, 김희정 전 지부장이 단식을 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부산광역시 교육청에서 실시한 ‘교육실무직원’의 전보에 학교비정규직노조가 △사전협의의 부재 △업무매뉴얼 미비 △전보의 근거 부족 등을 이유로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7월 20일,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 교육청에서 부산시 내 초ㆍ중ㆍ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육실무직원’을 상대로 정기전보(같은 직급 내에서의 보직 변경)를 시행하겠다고 공문을 보냈다. 정기전보 대상자는 부산지역 12,000여 명의 교육실무직원 중 현 소속 학교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교무 △과학 △전산 업무직 476명이다. 이들은 지난 1일 자로 새로운 학교로 발령 났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부산지부(이하 학비노조)는 이번 전보에 대항하기 위해 삭발 투쟁, 단식 투쟁 등을 감행했다. 하지만 부산시 교육청은 부산시 교육청 중앙현관 앞에서 노숙농성 중인 학비노조 조합원 16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소하는 등 강경한 대응으로 맞섰다. 학비노조는 이에 굴하지 않고 2차 단식 투쟁을 벌이는 등 강력히 투쟁했지만, 지난달 31일, 43일간 이어졌던 노숙농성을 풀고 업무에 복귀했다. 부산시 교육청의 가처분 신청을 부산지방법원이 받아들여 농성 중인 조합원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후 학비노조는 페이스북을 통해 ‘농성을 해제하는 대신 2차 투쟁으로 전환’한다며 ‘이런 사태를 발생시킨 김석준 교육감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 전했다.

교육청 “협의했다”
vs 노조 “협의한 적 없다”

이번 전보의 사전협의 여부를 두고 부산시 교육청과 학비노조 간에 의견이 갈렸다. 부산시에서는 작년 1월에 시행된 <부산광역시교육청 교육실무직원 채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개정안에 따라 교육감이 교육실무직원을 전보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작년 4월, 부산시 교육청과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간 단체협약을 맺었다. 이 단체협약에는 ‘전보 등의 인사원칙을 노동조합과 사전에 성실히 협의하여 수립’하자는 내용이 포함돼있기 때문에 전보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노조와 사전협의가 필요하다.
부산시 교육청은 사전협의가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산시 교육청 행정관리과 진동희 주무관은 “전보 공문을 보내기 전 노조 간부들과 협의를 끝냈지만, 일부 조합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 같다”고 답했다. 반면 학비노조는 이번 전보가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시행된 강제 전보라고 전했다. 학비노조는 부산시 교육청이 사전협의를 거쳤다는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비노조 서희자 수석부지부장은 “정식으로 회의를 거쳐 결정한 전보는 인정할 수 있다”며 “하지만 현재 부산시 교육청은 전보 협의 회의록을 내놓지도 못하면서 협의했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직종 특성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진 전보

부산시 교육청은 업무매뉴얼 등의 전보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보를 강행했다. 당초 부산시 교육청과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의 단체협약에서 ‘업무매뉴얼을 우선 마련한 후 전보에 대한 노사협의를 진행’하기로 한 바 있다. 학비노조의 주장에 의하면, 노사합의 이후 부산시 교육청은 ‘업무매뉴얼 T/F’팀을 구성하고 지난달 4일까지 업무매뉴얼 구축을 완료할 계획이었다. 이후 노조 측은 ‘전보 협의회’를 구성해서 전보와 관련된 논의를 해나갈 생각이었으나, 부산시 교육청에서 예고도 없이 전보 인사 공문을 발송한 것이다. 서희자 수석부지부장은 “현재 54개의 직종이 있는 학교비정규직은 직종과 학교마다 임금 지급체계나 전보 필요시기 등 각기 다르다”며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전보를 추진한다면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특성상 단순 보직 이동이 힘든 과학실무원의 업무를 고려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특히 이번 전보 대상인 과학실무원의 경우, 위험 약품을 다루는 과학실험실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실험실 내부의 구조나 물품 위치 등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때문에 더더욱 업무매뉴얼 구축 없이 강제전보를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서희자 수석부지부장은 “공문대로 9월 1일에 전보가 이뤄진다면 과학실무원은 새로운 과학실험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학생들과 수업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보를 인정할 수 없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전보의 필요성에 대해 부산시 교육청 측은 “전보를 통해 보직의 효율적 운영과 업무의 순환이 이뤄져 직원들이 탄성에 젖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학비노조는 페이스북을 통해 ‘장기근무와 (업무) 비효율의 상관 관계, 전보와 업무효율 향상의 상관 관계 등 근거자료 전무’하고, ‘타지역의 경우 교원들의 행정업무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교무행정사를 신규 배치하는데, 부산시 교육청은 신규 배치 계획 없이 업무만 가중시킨다’며 부산시 교육청의 근거를 반박했다.
부산시 교육청은 어떤 이유에서건 전보를 취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진동희 주무관은 “이미 전보 인사 공문이 나간 상황에서 전보를 취소하는 것은 힘들다”고 말했다.

우리 학교 예비교사들,
노조를 위해 목소리 내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부당함을 알리고 이들을 지지하기 위해 부산지역 내 예비교사들이 나섰다. 지난달 8일에는 우리 학교 사범대학, 부산교육대학교 학생들 15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시 교육청과 학비 노동자 간 전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보를 철회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지난달 24일 부산시 교육청 앞에서 열린 학비노조의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장태원(수학교육 14) 씨는 “지난번 기자회견에도 참여한 적 있다”며 “본인이 예비교사로서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해서 참여했다”고 말했다. 함께 자리를 지키던 강하늘(윤리교육 15) 씨 또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당한 처우를 알게 된 뒤, 사범대학 학생으로서 함께 목소리를 내서 힘을 보태주고자 했다”며 “이번 사건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고 하루빨리 대화가 통해서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달 24일, 부산광역시 교육청 앞에서 집회 중인 노동자들

 

부산시 교육청에서 부산시청까지 행진하는 노동자들

 

교육청 중앙현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던 학비노조

 

집회 중 발언하는 학비노조 서희자 수석부지부장

 

단식 3일 차인 학비노조 김희정 전 지부장. 그녀는 24일에 응급실에 실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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