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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식탁, 대통령의 식탁
  •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 승인 2016.09.05 00:05
  • 호수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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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더위에 지친 많은 국민을 더욱 ‘열 받게’ 만드는 뉴스가 있었다. 청와대에서 열린 만찬에 ‘송로버섯’, ‘캐비아’, ‘샥스핀’ 등 초호화 식재료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여론이 들끓자 청와대에서는 ‘맛만 살짝 나게 소량으로 썼기 때문에 실제 식비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으나, 밥 굶는 아동도 없잖아 있고 서민들은 누진세 걱정에 에어컨도 마음껏 틀지 못해 끙끙 앓는 상황에서는 먹히기 어려운 변명이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조선 시대 왕들도 기상이변으로 백성들의 근심이 깊을 때는 스스로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減膳)’을 했다”며 꼬집었다.
  그러면 과연 감선이란 얼마나 많이, 얼마나 내실 있게 이루어졌을까. 감선의 근거는 고대 중국의 경전이다. <시경>과 <대대례>에는 가뭄이 심하면 군주는 식사를 줄인다고 적혀 있다. 백성과 고통을 나눈다는 의미다. 한편 한왕조의 동 중서는 ‘천인 감응론’을 세웠는데, 사람의 일과 하늘의 일이 서로 통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르면 날씨가 이상하게 가물거나 폭염이 계속되면 군주가 정치를 잘못하여 천지의 기운을 흐트러뜨렸기 때문이며, 따라서 식사를 줄이고 음악을 듣지 않는 등 반성하며 잘못을 뉘우치는 자세를 보여야 했다.
  한국사 최초의 감선은 492년, 신라의 소지왕이 시행했는데 삼국에서 고려에 이르는 시기에는 감선이 있어도 이따금, 군주의 성향과 재해의 정도에 따라 드문드문 있었다. 그러다가 유교 이념에 충실한 조선왕조에서는 재해가 있으면 반드시 감선을 할 뿐 아니라, 왕실에 불상사가 있거나, 흉악범죄가 발생하거나, 뭔가 상서롭지 못한 일만 생기면 감선에 들어가곤 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렇게 한다면 아마 군주가 영양실조에 걸렸을 것이다.
  통계를 보면 조선왕조를 통틀어 27명의 왕이 319회의 감선을 행했으며, 그중에서 가장 성실하게 감선했던 왕은 아마 세종일 것이다. 그는 16차례의 감선을 하여 횟수 자체로는 별로 많은 편이 못되지만, 가뭄으로 한 번 실시하면 비가 올 때까지 열흘이고 한 달이고 내내 했다. 또 감선과 함께 금주도 행했으며, 그때까지는 매번 받는 밥상에서 반찬 수만 줄이던 것을 아예 밥상을 들이는 횟수를 줄이게 함으로써 ‘간헐적 단식’을 실시했다.
  그러나 스스로는 식탐이 많았으며 ‘고기 마니아’이기도 했던 세종이기에, 감선을 끝내면 고기를 목이 메도록 먹는 폭식에 빠지기도 했다. 이처럼 단식과 폭식을 반복함으로써 건강이 나빠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반면 조선 왕 중에서 가장 많은 횟수의 감선을 한 사람은 최장기 재위자이기도 한 영조인데, 그는 89차례 감선했으나 비가 오든 말든 상관없이 3일이나 5일 등 미리 정한 날짜만큼만 반찬을 줄이고 끝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과식을 줄임으로써 건강을 돕는 효과까지 보았다. 또 그는 재해에 따른 감선을 할 뿐 아니라 신하들과의 힘겨루기에 감선을 이용하기도 했다. 당쟁이 격화되거나 하면 ‘정치가 이 모양인데 내가 밥은 먹어 무엇하랴’라며 밥상에 손도 대지 않고 물려버렸던 것이다. 이러고 보면 왕의 건강이 염려되는 신하들은 정쟁을 그치고 잘못을 빌며 ‘단식투쟁’을 끝내달라고 애원하곤 했다.
  서양의 군주들은 어땠을까. 감선과 같은 개념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오히려 ‘귀한 사람일수록 귀하게 먹어야 한다’며 밥상의 신분제를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채소는 천한 것들의 먹을거리라 여겨 고기만 배불리 먹는 식사를 반복한 나머지, 각종 성인병에 걸리기도 했다. 현대의 대통령들은 어떨까. 나라별 차이와 개인차가 있다. 미국 대통령들은 대체로 소박하게 먹었다. 스스로 서민임을 과시하려 하고, 바쁜 업무를 소화하다 보면 쌓이는 스트레스를 ‘고향의 맛’으로 달래려고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닉슨은 수프 한 접시로 식사를 때우는 수가 많았고, 카터는 고향 농장에서 키우던 땅콩버터를 바른 샌드위치를 즐겼다고 한다. 반면 프랑스 대통령들은 자신의 식사가 국가의 품격을 나타낸다고 여겨 음식에서 와인까지 최고급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조선의 군주를 본받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고 활기차게 국정에 임해 주는 게 본인에게나 국가에게나 득이 아닐까. 문제는 그렇게 해서 국정이 과연 국민의 눈에 만족스러운가일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이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린다고 재난이 돌이켜질 리는 없지만, 적어도 마음의 위로는 된다. 감선의 본뜻도 그런 것이었음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함규진 역사 저술가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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