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면의 인권센터 설문조사 결과를 받아보고는 ‘설문지에 인권에 대한 뜻을 적어놓을걸’ 하고 후회했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뜻이다. 또 다른 누군가로부터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필자는 인권을 넓게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권리, 좁게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권리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도서관 앞에서 30명이 넘는 학생들을 붙잡고 인권을 침해당한 경험이 있냐고 물었을 때 그 중에서 오직 한 명의 학생만이 인권을 침해당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인권을 침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는 사람도 한 명뿐이었다. 필자는 그렇다면 인권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묻기 시작했다. 몇몇의 학생들은 상대방을 최소한으로 배려해주는 것이라 답했다. 그렇다면 상대방에게 최소한으로 배려 받지 못한 적이 없단 말인가? 정작 마이피누나 대나무숲을 보면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글이 넘쳐난다. 타과생이라 차별을 당하고 성적을 낮게 받았다는 것, 남자인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면 항상 기분 나쁜 스킨쉽을 당한다는 것 등은 모두 인권을 침해당한 일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인권을 침해당하고도 자신이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중앙대학교 인권센터의 김태완 인권전문연구원은 학생식당의 밥이 맛이 없어 인권을 침해받았다며 인권센터를 찾아온 학생이 있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얘기를 들을 당시에는 정말 특이한 학생이라고만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우리 학교 학생들의 상황을 마주하고 나니 오히려 사소한 것에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직접 센터까지 방문한 것이 대견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성평등상담센터에 접수되는 사건의 수도 우리 학교가 서울대학교에 비해 턱없이 적다고 한다. 물론 학교 차원의 홍보 문제도 있겠지만 인권에 대한 인식의 문제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새내기라는 이유로 선배들에 의해 억지로 술을 마실 필요는 없다. 또 예체능 계열 학과라고 해서 선배들에게 군기를 이유로 인사를 강요당할 수는 없다. 인권침해는 거창한 문제가 아니다. 동양인이라서 인종 차별을 받고 장애인이라서 피해를 입고 성소수자라서 차별 대우를 받은 것만 인권침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과 대전에 있는 4개의 학교를 돌면서 만난 인권센터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있다. 학생들이 인권센터의 문턱을 넘기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인권센터의 문턱을 넘기는커녕 자신이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예체능 계열 학과의 일부 학생들은 학과의 군기 문화에 대해 자신이 고발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충남대학교에서는 인권센터가 생기고 학교 내에서 군기문화라는 것이 사라졌다고 한다.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는 것은 당연하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법으로 권리를 보장하고 있어도 실제 생활에서 활용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또 미국의 시민운동가 로저 볼드윈은 ‘권리는 그것을 지킬 용기가 있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권리 위에 잠을 잘 것인지 용기를 가지고 그것을 지킬 지는 자신만이 선택할 문제다.

구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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