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황녀였던 덕혜옹주의 삶을 그린 영화 <덕혜옹주>는 권비영의 장편 소설 <덕혜옹주>(다산책방, 2009)를 원작으로 했다. 2009년 처음 발행된 소설은 한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원작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서 다시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다. 소설이 발표되기 전까지, 고종의 외동딸로 태어나 일본인과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정신분열증으로 힘들게 살았던 덕혜옹주의 삶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신문에서 덕혜옹주의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된 소설가는 “덕혜옹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운명”이라 여겼으며,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고 집필 동기를 밝힌다.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덕혜옹주가 결혼 후 머물렀던 대마도를 여러 번 방문하고, 그녀와 관련된 자료를 모아 글을 썼다고 한다.
소설가 김숨은 최근 연달아 장편 소설을 발표하였다. 지난 6월 민음사에서 출간된 <L의 운동화>와 이번 달 현대문학에서 나온 <한 명>이 바로 그것이다. <L의 운동화>는 1987년 6월 9일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22살의 나이로 사망한 이한열의 삶을 조명한다. 사고 당시 이한열이 신었던 흰색 운동화는 오른쪽 한 짝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2015년 미술품 복원 전문가 김겸이 복원하여 현재 이한열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김숨 작가는 운동화 복원 작업을 지켜본 후, 그 과정을 소설로 썼다. “한 개인의 사적인 운동화 한 짝이 시대를 대변하는 물건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는 “잊혀가는 기억의 대상을 복원하는 건 우리의 훼손돼가는 삶을 복원하는 것”이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한 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한 명만 남은 상황을 전제로 시작한다. 2015년 한 해 동안 아홉 분의 피해자가 돌아가셨다. 김숨 작가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이러다가 한 분만 남는 어느 때가 오겠다. 그리고 또 한 분도 살아계시지 않은 때도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명’이라는 제목이 다가왔고,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위안부 피해자 증언록을 바탕으로 쓴 소설에는 316개의 각주가 달려있다. 소설이지만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료와 사료를 바탕으로 고증된 작품인 것이다.
흔히들 소설을 정의할 때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 현실에서 있을 법한 그럴듯한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앞선 권비영, 김숨 소설가 외의 많은 작가들이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 인물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취재와 인터뷰, 논문, 단행본 등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창작력의 원천을 작가의 가공되지 않은 상상력과 개성이라 할 때 이들의 작품은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작가들이 실존 인물의 삶을 조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권비영과 김숨 작가는 덕혜옹주, 이한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신문이나 강연, 기사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삶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을 수도, 혹은 처음 본 낯선 내용이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작가가 그들과 대면하게 되었을 때, 어떤 ‘숙명’ 내지 ‘운명’ 같은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예리하게 뻗어있던 감각의 촉수가 특정 인물, 사건과 맞닿자 작가는 자신이 글을 써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그 사명감이란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 사건을 독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작가 나름의 역할이나 의무일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 예외적 인물의 삶을 다시 조명하여 독자 앞에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고통, 고난에 동참하기를 호소하는 것. 그리하여 우리가 삭제, 편집해 버린 역사와 사건, 인물을 다시 복원, 복구하여 충분히 애도하기를, 애도할 수 있기를 작가는 바라고 있다. 그것은 과거의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현재형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명감이야말로 소설가가 책상 앞에 앉아 고군분투하게 하는 원동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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