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대학본부를 점거했고, 경찰 1,600여 명이 대학에 투입되었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얘기인 것 같다. 아니다. 2016년 여름의 일이다. 이화여대 사태 말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이화여대는 2017년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뉴미디어산업과 건강, 영양, 패션 등의 전공을 포함한 단과대학이다. 사실 이는 교육부 평생교육단과대학사업의 일환이었다. 30세 이상의 고졸자 중 재직 경력 3년 이상자에게 수능시험과 관계없이 평생교육단과대학 입학자격을 부여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소정의 과정을 이수하면 학사학위가 수여됨은 물론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을 해야 했던 이들에게 대학교육의 문호를 넓히겠다는 취지다. 이 사업에 참여한 대학은 정부로부터 30억의 재정지원을 받게 된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반발은 극심했다. 대학평의원회 회의에서 학생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곧바로 농성에 돌입했다. 그 와중에 평의원 교수와 교직원 등 5명이 감금되었다가 46시간 만에 풀려나는 일도 벌어졌다. 1,600여 명의 경찰 병력 투입을 둘러싸고는 학교와 학생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결국 대학 측은 백기를 들었다. 본부 보직자들은 전원 사퇴하고 총장만 덩그러니 남은 대학의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이번 사태는 대학의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래서일까. 영 개운치가 않다.
첫째, 대학의 ‘상업화’다. ‘돈’이 곧 대학의 경쟁력이라고들 한다. 이번 사태도 대학 측의 ‘학위장사’논란에 기인한 것이다. 맞다. 어느 때 부터인가 대학은 돈의 ‘맛’에 흠뻑 빠졌다. 돈칠을 하듯 외형 경쟁에만 몰두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건물들이 생겨났고, 멀쩡한 운동장을 뒤집어엎었다. 학교 소개 팜플렛은 종이부터가 달랐고, 디자인 역시 그럴싸하게 변했다. 기부자 이름을 새겨 넣은 강의실 안에도 돈냄새가 풀풀 난다. 물어보고 싶다. 한국 대학의 경쟁력이 뒤처져 있었던 이유가 낡은 건물 탓이었던가. 강의실에 대형 모니터가 달려 있지 않아서고, 운동장에 잔디가 깔리지 않아서였던가. 그마저도 아니라면 학교 어딘가에 근사한 카페가 없었기 때문인가. 헛다리를 짚어도 한참 짚었다.
둘째, 대학의 ‘비민주성’이다. 대학은 학문의 이름으로 자유를 향유한다. 금기란 있을 수 없다. 현실은 달라졌다. 대학은 돈을 내세운 정부나 기업에 의해 손쉽게 길들여졌다. 불의를 향해 소리치는 것은 무모함이 되었고, 대학의 민주주의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전락했다. 안타깝다. 단언컨대 대학은 가장 비효율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대학이 진짜 경계해야 하는 것은, ‘단일화된 목소리’요, ‘획일화된 가치’다.
셋째, 대학의 ‘학벌주의와의 담합’이다. 우리나라 학벌 구조는 세계 유래가 없을 정도로 고약하다. 극소수의 학생들에게 이유 없는 우월감을 주면서, 대다수 학생들에게는 치유되지 못하는 패배감을 준다. 이 얼마나 폭력적인가. 똑같은 성과라도, SKY 출신이 하면 거창해 보이고, 고졸 출신이 해내면 하찮아 보인다. 한심한 노릇이다. 그래서일까. 19살에 이른바 SKY대학에 들어 간 사실을 빼고는, 평생 노력도 성취도 해 본적 없는 사람이, 평생 출신대학 운운하며 따지고 자랑하는 짓만큼 추한 일도 없다. 더 심각한 것은 학벌순혈주의다. 나의 선배나, 후배가 되자면 마땅히 나와 똑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고 믿는다. 좋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수능을 봐야 하며, 똑같은 시기에 입학해야 한다. 편입을 했거나, 대학원만 다니러 온 이들은 동질감을 느끼지도 못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는 건 아닐까. 혹여 이번 이화여대 사태가 그런 학벌순혈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30세가 넘은 직장인들에게 -대충 최고위과정이나, 특수대학원 정도면 몰라도- 이대 졸업장까지 주는 것이 마뜩치 않았던 거라면 실망스러운 일이다. 모교를 사랑하는 것과 학벌주의는 전혀 다른 것이다.
기성세대는 대학의 민주화를 걷어찼다. 학벌주의에도 굴복했다. 젊은 대학생들마저 비굴하게 따라갈 수는 없다. 마땅히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게 대학의 진정한 ‘가치’요, 대학생으로서의 ‘특권’이다. 기성세대들에게 당당하게 따져 묻자.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뭐시 중헌지도 모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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