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악명 높은 주거난은 1차적으로 좁은 땅에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거주한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올해 기준 홍콩의 인구는 약 730만 명이며 면적은 약 1,100㎢다. 인구밀도도 ㎢당 6,600명으로 꽤 높은 편이다. 더 큰 문제는 홍콩 국토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신계(新界) 일대가 아닌, 홍콩섬 북부와 구룡반도 일대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주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 지역의 인구밀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예컨대 구룡반도의 주요 주거지인 몽콕(Mong Kok)의 인구밀도는 ㎢당 130,000명을 기록해 기네스북에도 수록될 정도다.

홍콩 주거 문제의 역사적 배경

이처럼 기형적이고 높은 인구밀도에는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영국은 난징조약과 베이징조약을 통해 차례로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영구 양도받았다. 이후 홍콩은 무역항으로 성장해나갔고 영국은 1898년 2차 베이징조약을 통해 구룡반도의 북쪽인 신계 지역을 99년간 조차했다. 영국이 영구양도 대신 99년 조차를 택한 이유는 명확하진 않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빌미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로 돌아왔고, 중국 대륙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다. 자연스레 공산주의 체체에서 위협을 느낀 사람들이 중국 전역에서 홍콩으로 몰려들었고 홍콩의 인구는 이 시기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후 홍콩은 빠르게 성장하는데 이 과정에서 과거부터 홍콩의 중심이었던 홍콩섬과 구룡반도 일대가 홍콩의 주요 도심으로 개발됐다. 1984년 ‘중영공동선언’으로 홍콩의 중국반환이 확정되지 전까지 중국과의 접경지대이자 교외 지역인 신계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공공주택 공급으로 안전망을 짜다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들로 홍콩의 인구가 폭증하던 1953년 12월 25일, 섹킵메이(Shek Kip Mei) 주거지구에 불길이 치솟았다. 크리스마스 새벽에 닥친 대화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 1950년 지어진 홍콩 최초의 공공임대주택 메이호 하우스(Meiho House)도 불탔다. 그러나 다소 역설적이게도 이는 홍콩 정부가 공공주택 공급에 박차를 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강동기(홍콩대) 씨는 <홍콩수요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섹킵메이 대화재는 저소득층의 주거문제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정부의 진지한 고찰을 불러일으켰다’며 ‘홍콩주택위원회 및 홍콩주택협회 등의 관련 부처들은 저소득층들을 위한 주택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저소득층 주택개발계획(Low-cost housing scheme)’을 시행하게 됐다’고 전했다. 마치 그 상징처럼, 메이호 하우스는 불타 사라졌던 그 자리에 콘크리트 건물로 다시 들어섰다.
이후 홍콩 정부는 ‘내집마련정책(Home-ownership scheme)’을 펼치며 공공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했다. 민간 건설업체와의 협력, 뉴타운 개발 등도 이어졌다. 특히 뉴타운 개발의 경우 중영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로는 신계 지역도 개발대상으로 삼으며 인구 분산에 기여했다. 그 결과 현재 홍콩 인구의 40% 정도인 약 300만 명이 공공주택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됐다. 공공주택의 질적 수준이 과거보다 향상됐음은 물론이다.

한계에 부딪친 공공주택 공급

그러나 현재 홍콩 공공주택 정책은 그 한계를 마주하고 있다. 1997년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신규 공공주택 공급량은 줄어들었다. 공공주택이 필요한 이들은 많지만 공급은 한정적이다. 홍콩 삼수이포(Sham Shui Po) 지역을 연구해온 한 사진가는 작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홍콩 정부는 금융위기를 부동산 부양으로 극복하려 했고, 주택 대출에 돈을 쏟아 부으면서 공공주택 짓기는 거의 중단됐다’며 ‘공공주택에 들어가려면 길게는 10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3월 홍콩 정부가 공공주택 2,100세대 가량을 분양하자 13만 명이 넘는 몰린 지원자가 몰렸으며, 홍콩의 공공임대주택 대기자 수는 이미 20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청년들에게 공공주택 입주는 꿈같은 일이다. 홍콩 역시 고령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 노년층들에게 공공주택의 우선권이 주어지고 있다. 2005년부터 시행된 이 정책은 공공주택 2,000세대를 1인 가구만 신청할 수 있게 하고, 1인 가구 중에서는 7년 이상 대기한 사람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정책의 결과는 즉각 드러났다. 홍콩 지역사회조직협회(Society for Community Organization, 이하 SoCO)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4년까지 30세 이하 1인 가구 중 공공주택에 입주한 사람은 0명이다. 2014년 홍콩의 민주화를 위치며 일어난‘우산 혁명’ 당시 거리의 청년들이 주거문제 해결을 구호로 외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공공주택에 들어가지 못한 저소득층의 상황은 열악하다. 홍콩경제는 상당부분 3차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도심지인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중심으로만 일자리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신계 등 외곽지역에 조성된 뉴타운은 상대적으로 주거비가 싸지만 경제적 자족능력을 거의 갖추지 못하고 있다. 결국 가난한 이들은 소득의 대부분을 교통비로 쓸 것인지 주거비로 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도심에 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큐비클과 같은 기형적인 주거지에 의존하는데, 그런 이들의 수만 20만 명에 달한다. 큐비클의 임대료는 분명 저렴한 편이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2011년 SoCO에서 발표한 <홍콩의 주거문제(Hong Kong's Housing Shame)>에 따르면 이들은 월수입의 30~40%를 임대료로 쓰고 있다.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물론 홍콩 정부라고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부동산 가격 억제는 홍콩 정부의 최우선 목표다. 2012년 취임한 홍콩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은 부동산 거래에 붙는 세금을 인상하고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등 부동산 가격 억제를 위한 정책을 펼쳐왔다. 여기에 경기 악화가 겹치면서 올해부터 홍콩 부동산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마침내 거품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2018년까지 부동산 가격이 20% 이상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한편 주거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이를 정부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는 인식 아래 민간 차원의 노력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라이트비’에서 운영하는 주거 지원 사업인‘라이트홈 프로젝트’다. 라이트비 리키 유 대표는 작년 열린‘제2회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 국제포럼’에서 ‘우리는 정부의 주거복지 시스템을 대신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협력자로서 시스템의 빈 구멍을 채워주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라이트홈 프로젝트는 싱글맘에게 3년간 주거공간을 제공하고 자립을 돕는 사업으로 2012년 9월부터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수십 가구에 혜택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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