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폭스바겐의 마르틴 빈터코른 최고경영자가 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자사의 배출가스 조작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했다. 독일을 대표하는 국민차 회사가 몰락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클린 디젤’ 신화의 몰락이기도 했다.
디젤엔진은 한 때 친환경의 상징이었다. 지구온난화와 탄소배출 문제가 지구적 이슈로 떠올랐던 시기, 디젤엔진은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매력적인 수단이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디젤엔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우리 정부도 디젤차 구매를 장려했다. 디젤차의 판매량은 급상승했고 언론도 앞 다투어 클린 디젤을 찬양했다.
하지만 폭스바겐 사태 이후 디젤엔진에 대한 전방위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환경부는 얼마 전 미세먼지 대책의 주범으로 디젤차를 지목하며 경유에 대한 세금 인상을 요청했다. 환경단체들도 연일 집회와 기자회견을 열어 디젤차 퇴출을 요구하고 나섰다.

다방면에서 활용되는 디젤엔진

디질엔진의 루돌프 디젤이 확립한 디젤 사이클을 기반으로 설계된 내연기관이다. 휘발유를 사용하는 가솔린엔진과 유사한 형태이나 연료의 상이함에서 오는 구조적 차이가 존재한다. 휘발유의 발화점은 250~450°C지만 경유의 발화점은 그보다 낮은 170~200°C다. 따라서 가솔린엔진은 실린더 내에 있는 점화플러그로 스파크를 발생시켜 연료를 연소시키지만, 디젤엔진은 점화플러그 없이 압축 작용만으로 자연발화가 가능하다. 압력이 높아질수록 발화점이 낮아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승용차에만 사용되는 가솔린엔진과 달리 디젤엔진은 승용차는 물론 버스와 대형 화물차, 기차에서 선박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는 디젤엔진이 가진 장점 때문이다. 우선 경유는 휘발유보다 밀도가 높아 열효율이 높다. 당연히 연비에 있어 유리하다. 또 상대적으로 낮은 분당엔진회전수(RPM)에서도 강한 힘을 낼 수 있어 트럭이나 중장비 등과의 궁합이 좋다. 결정적으로 가솔린엔진과 달리 실린더 체적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 특장점이다. 단순히 실린더의 크기를 키우는 것으로 간편하게 대형 엔진을 제작할 수 있어 중장비나 선박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클린 디젤의 신화가 무너지다

그러나 디젤엔진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디젤엔진이 배출하는 각종 오염물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이에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유로규제(European emission standards) 등 오염물질 배출량을 제한하는 기준을 설정하고 강화해 왔다. 유로규제의 경우 2014년부터 적용된 유로6는 1992년 최초로 도입된 유로1에 비해 10배 이상 엄격해진 기준을 자랑한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 같은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유럽 업체들이 이 분야를 선도하게 됐다. 높은 효율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염물질은 거의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내연기관, 클린 디젤의 꿈이 실현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든 것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2013년,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는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와 함께 디젤차의 도로주행 시 배출가스 테스트에 나섰다. 테스트 결과는 당혹스러웠다. 폭스바겐의 디젤차들은 도로주행에서 엄청난 오염물질을 뿜어냈다. 하지만 실험실로 돌아가면 다시 멀쩡해졌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보고하는 한편 조사에 착수했다. 연구팀이 차량 전자제어유닛(ECU)의 소프트웨어 코드를 분석한 결과 배출가스 제어장치 쪽으로 비밀리에 전송되고 있던 서브루틴이 드러났다. 결국 작년 9월 3일 폭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 사실을 인정했다.
이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클린 디젤 열풍을 선도하던 회사의 디젤차가 ‘클린’ 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른 회사의 디젤차들도 실 도로주행에서 실내인증기준보다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한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최근 들어 미세먼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디젤차 대기오염에 일부 책임 있어

디젤엔진이 대기오염을 일으킨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 디젤엔진은 일반적으로 가솔린엔진보다 미세먼지(PM)와 질소산화물(NOx)를 더 많이 배출하며 이들의 배출량에는 트레이드 오프(Trade Off)의 관계가 성립한다. 미세먼지 생성을 줄이면 질소산화물이 늘어나고, 질소산화물 생성을 줄이면 미세먼지가 늘어나는 식이다.
때문에 자동차 제조사들은 오염물질의 생성을 줄이는 것과 함께 각종 후처리 장치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모색했다. 그 결과 △배기가스 재순환 장치(EGR) △디젤 미립자필터(DPF) △희박질소촉매(LNT) △선택적 환원촉매(SCR) 등 다양한 후처리 장치가 개발됐다. 하지만 이들 후처리 장치는 제작단가를 인상시키는데다가 성능에도 악영향을 줬다.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조작을 택한 것도 여기서 기인했다. 디젤 전문가인 <켈리 블루북> 맷 디로렌조 편집인은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폭스바겐은 디젤차 소유자로서의 경험을 가능한 쉽고 간단하게, 가솔린차와 유사한 수준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제조사는 물론 차량 소유자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하는 후처리 장치를 최소화 하려다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후처리 장치가 상용화되기 이전에 생산된 노후 디젤차들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정부에서 DPF 등 후처리 장치 부착을 유도하고 있지만, 수도권에서만 수십 만 대의 노후 디젤차가 여전히 걸러지지 않은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다. 이들 노후 디젤차가 배출하는 오염물질의 양은 신형 디젤차와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노후화된 대형 화물차 한 대가 배출하는 오염물질의 양이 유로6를 만족한 디젤차 수만 대가 배출하는 양과 맞먹을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작정 미세먼지 주범으로 모는 것은 억지

하지만 모든 디젤차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몰리는 것에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정부가 발표한 최신자료인 국립환경과학원 ‘2013년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통계’에 따르면 전국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의 총량은 약 1,500t과 500t 정도 증가했다. 그런데 도로이동오염원(디젤차)만 놓고 보면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모두 배출량이 소폭 감소했다. 이에 여소영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원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디젤차 등록대수가 늘었지만 신차는 배출계수가 낮고 노후 디젤차는 폐차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통계에서 디젤차의 배출량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사실 이 통계는 애초부터 심각하게 디젤차에 불리한 구조로 만들어져있다. 통계에 가솔린차의 미세먼지 배출량을 측정하는 항목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솔린차는 미세먼지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황당한 전제에서 통계가 산출된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기술연구원의 2009년 조사에 따르면 휘발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차량도 ㎞당 0.0018g의 미세먼지를 배출했다. 이는 당시 기준인 유로4를 만족했던 디젤차의 배출량보다 불과 0.0003g 적은 수치다. 게다가 최근 독일에서는 가솔린직분사(GDI)엔진을 장착한 차량이 유로6를 만족하는 디젤차보다 더 많은 미세먼지를 배출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로6 충족 차량들이 도로주행에서 더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음을 근거로 여전히 디젤차가 미세먼지의 주범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올해 환경부가 유로6를 만족한 디젤차 20종을 조사한 결과, 19종이 도로주행에서 실내인증기준보다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 오염물질은 미세먼지가 아닌 질소산화물이다. 이덕환(서강대 화학) 교수는 <디지털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디젤차의 질소산화물을 미세먼지로 분류하는 것은 황당하다’며 ‘질소산화물은 초미세먼지의 10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분자성 물질’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환경부는 질소산화물이 다시 미세먼지를 생성한다는 입장이지만 여기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그린카 콘서트>의 저자 박철완 씨는 <IT조선>에 기고한 글에서 ‘질소산화물은 광화학 반응을 거쳐 질산염이 되고, 대기 중 카본 소스와 만나 PM2.5로 간다’며 ‘질산염에서 기원한 PM2.5는 타 요인으로 중복 추정 집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질산염과 반응하는 카본 소스 자체가 초미세먼지이기 때문에, 질소산화물로 인해 만들어진 초미세먼지라는 건 사실 이중 집계라는 것이다.
게다가 신형 디젤차가 배출하는 오염물질이 그리 유독하지 않은 수준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근 미국 HEI(Health Effects Institute)는 유로4를 만족한 디젤엔진의 배기가스에 1,200여 마리의 실험용 쥐들을 30개월 동안 주 5일, 하루 16시간씩 노출시켰던 연구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발암성 △생물학적 반응 △미세종양 형성 △유전독성 및 산화적 손상 △혈장 표지자 및 심혈관계 반응 등을 분석하고 최종적으로 디젤엔진의 배출가스가 암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문제 해결 위해선 접근법 달리해야

디젤엔진의 오염물질 배출 문제가 공론화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고, 자동차 제조사들은 갈수록 엄격해지는 규제를 통과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매진해 왔다. 폭스바겐 사태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있기도 했지만 모든 제조사가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BMW 520d 차량의 경우 환경부 도로주행 조사에서도 실내인증기준보다 적은 오염물질을 배출했다. 유럽연합에서 최근 실내인증기준의 2.1배를 도로주행 기준으로 설정한 것에 비춰볼 때 상당한 기술적 성숙이 이뤄진 셈이다. 클린 디젤의 꿈이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필수(대림대 자동차학) 교수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디젤엔진은 가솔린엔진에 비해 개선될 여지가 충분하다”며 “여전히 실현 가능한 범위에서 가장 경쟁력을 갖춘 엔진은 디젤”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디젤차를 완전히 없애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시내버스를 디젤에서 압축천연가스(CNG)로 바꾸는 작업이 결실을 맺고 있지만, 대형 트럭이나 중장비에서 디젤엔진을 대체할 기관을 찾는 것을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접근 방향을 달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디젤차의 오염물질 배출을 규제하되, 이를 만족한 디젤차들을 공격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이상현(대덕대 자동차학) 교수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신형 디젤차들의 오염물질은 쥴었고 문제가 되는 것은 오래된 디젤차”라며 “낡은 디젤차의 점검을 철저히 하고 폐차 지원 제도를 마련하는 등의 방법이 더 효과가 클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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