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노포, 노포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열차 사이의 간격이 넓으니 타실 때 발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음성을 들으면 사람들은 더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지하철은 바쁜 도시의 상징이자, 일상을 지탱하는 ‘시민의 발’이 되었다. 지하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정확한 출발·도착시각을 알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분 단위로 계획을 짠다. 열차 지연과 기다림은 더는 미덕이 아니다. 혹여나 운행 중에 사고가 발생하면 기관사 혼자서 3분 안에 신고부터 재운행을 위한 준비까지 마쳐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단지 편리함의 문제가, 누군가에게는 일터와 생계의 문제가 되고, 그것에 생명까지 내걸어야 했다. 어느 모임에서 만난 부산지하철 노조원은 필자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장전역 근처라 대답하자, 그 역은 기관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선에 있는 정거장이라며 미소를 띠었다. 온종일 홀로 지하에서 운행하다 보면 탁 트인 1호선의 지상 광경에 반가움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1인 승무원제로 느끼는 책임감과 부담감, 사고가 난 뒤의 트라우마.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치료받으면 사실상 기관사의 일을 할 수 없으므로 이를 숨기기도 한다. 사고가 일어나도 개인의 책임과 부주의로 돌아가기 쉽다.
지난달, 시청역을 지나다 농성을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을 봤다.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해 가까이 다가갔다. 지난 4월, 부산에서 지하철 기관사의 자살이 있었고, 똑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었다. 그는 사고가 있었던 뒤, 책임감과 중압감으로 우울증에 걸렸지만 사측에서는 이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했다. 그가 자살했지만 사측으로부터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고, 노동 환경 개선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달 28일에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 한 명이 열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장소에는 시민들의 애도 물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스크린도어를 빼곡히 채운 포스트잇을 통해 공감과 분노, 안타까움을 표출하고 있다. 우리 학교 게시판에서도 그를 추모하는 대자보와 포스트잇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사고가 한두 번이 아님에도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단가를 낮추고, 노동력에 투입되는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며 이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공공의 이익이나 생명과 같은 가치는 효율성 앞에서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또한 개인이 안전에 대한 지침을 따르지 않아 부주의함으로 일어난 사고라며 개인의 불찰로 간주했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스크린도어의 사고에 많은 이들이 추모에 동참하는 것은 단지 이 일이 그녀와 그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개인이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다시 재발할 우려가 있는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다. 이미 잦은 지하철 사고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안전의 외주화’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1인 승무제가 원인으로 제기됐다. 이제는 실천의 문제로 남았다. 누군가의 위태로움으로 지탱되는 효율, 그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효율의 신화에서 벗어나, 무엇이 진정 공공의 이익과 부합하는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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