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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동양평화론, 국가를 초월한 평화를 말하다
  • 신우소 기자
  • 승인 2016.06.06 03:38
  • 호수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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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과 인류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안중근 의사. 그가 그토록 원하던 독립을 찾은 지금,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100여 년 전 안중근은 국가들의 연합을 통해 세계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구체적으로 평화회의를 조직하고, 평화군을 육성하여 평화와 안정이 보장되는 사회를 지향했다.

  안중근은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1895년 아버지 안태훈을 따라 가톨릭에 입교하여 신식학문을 접하게 된 그는 △독립운동 △교육운동 △종교활동 △민권활동 등에 힘썼다. 1907년부터는 연해주로 망명해 의병운동에 몸을 담았고, 동지 11명과 왼손 약지를 끊음으로써 끝까지 일본에 대항할 것을 맹세했다. 그해 10월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안중근은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한 채 하얼빈역에 잠입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안중근은 현장에서 체포돼 뤼순의 일본 감옥에 수감됐으며, 여기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이윽고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대한독립을 외쳤던 안중근. 그가 그린 이상 사회의 모습은 <동양평화론>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처형되기 직전의 10일 동안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동양평화론>의 서(序)와 전감(前鑑), 즉 서론과 제1장 부분을 집필했다. 그는 <동양평화론>에서 ‘동양’이란 개념에 대해 ‘아시아 여러 나라’라는 뚜렷한 인식을 갖고 있었으며, 동양평화란 아시아의 각 나라가 모두 자주 독립하여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그는 동양의 대표국가인 한국, 중국, 일본이 각기 독립국으로서 주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공동으로 관리하는 군항을 만들고,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서로 협력하여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에 공동으로 대응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원만한 금융거래를 위해 공동은행을 설립하고, 공용화폐를 발행할 것을 제안했다. 그뿐만 아니라 3개국의 청년들로 공동의 군단을 만들고 그들이 2개 이상의 언어를 배우게 하여 형제의 관념을 높일 것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한·중·일 세 나라의 황제가 로마 교황을 방문하여 협력을 맹세할 것을 주장했으며, 이를 통해 세계 민중의 신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처럼 그가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조선의 독립이 아니라 동양의 평화였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이주화 학예팀장은 “안중근은 공동평화연대를 지지하고, 공용화폐를 사용하기를 주장했다”며 “이는 그 당시의 사람들보다 앞선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안중근이 그린 이상 사회를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그가 그린 이상세계의 한계를 위정척사론적 충군주의, 서양과의 적대적인 관계설정 등을 들어 설명한다. 안중근의 사상이 제국주의를 배격하고 국권을 수호하려는 위정척사운동의 논리와 유사하며, 러시아를 비롯한 서양과의 적대적인 관계를 설정한 것은 그의 한계라는 지적이다. 중국 다롄대학교의 최봉룡 교수는 그의 논문 <안중근 의거의 중국에 대한 영향과 그 평가>를 통해 ‘안중근의 사상에서도 그 시대적인 한계성이 드러나고 있다’며 ‘그는 일본 문명에 대한 선의에 찬 기대에서 출발하여 일본이 정책을 개변할 것을 촉구했지만, 결국 일본은 동양평화의 확보라는 구실로 한국을 병탄하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은 시대를 앞서간 생각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평화로운 공존과 협력을 추구하고자 했던 안중근의 사상은 일견 지금의 유럽연합(EU)과도 유사하다. 중립지를 설치하고, 이중언어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평화를 위한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제안이었다. 안중근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국가 사이의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여 서로 협력하고 화목을 도모하는 세상을 지향한 것이다. 안중근평화연구원 신운용 책임연구원은 “안중근은 세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 인종을 구분하지 않았다”라며 “침략하는 사람과 평화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구분 지어 생각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고 전했다.
 
   
 

신우소 기자  danbi@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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