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만들어진 세계 최초 가습기 살균제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와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돼왔다. 하지만 2011년부터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무고한 사망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시행된 가습기 살균제 위해성 검증 결과가 이제서야 밝혀지면서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일명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은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그리고 사건이 끝난 지금 우리는 과연 안전한 것일까?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발단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건의 주범인 가습기 살균제의 역사는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가습기 사용 시 생기는 내부 물때나 곰팡이 등이 문제가 되면서 가습기를 위생적으로 사용하자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를 위해 ‘SK케미칼’(당시 유공)은 세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 메이트’를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여러 제조업체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하기 시작했는데, 제품의 유해성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출시 후 18년째가 되던 2011년이었다.
2011년 4월 서울아산병원에는 중증 폐렴 임산부를 비롯한 호흡기질환 환자 8명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이들은 모두 원인 불명의 폐렴으로 입원했고, 그중 일부 환자는 폐렴으로 인해 다장기 손상이 발생해 사망했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폐질환과 비교할 수 없는 이상 증상이었다. 당시 중환자실장인 고윤석(호흡기내과) 교수는 사건브리핑을 통해 “폐섬유화를 일으키는 호흡기 질환으로는 특발성 간질성 폐렴이 있지만, 사망자처럼 건강하던 사람이 짧은 시간 내 급속히 폐섬유화가 진행되는 양상과는 다르다"고 밝혔다. 특히 사망한 환자와 비슷한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속출하면서 사건의 심각성은 커지고 있었다. 이후 고윤석 교수는 급성 폐렴의 집단 발생에 대해 질변관리본부에 신고와 함께 조사요청을 접수했다.
같은 해 8월 보건복지부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손상의 위험 요인으로 추정된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11월 질병관리본부는 “실험 쥐를 이용해 가습기 살균제 흡입 독성 실험을 진행한 결과 잠정적으로 이상 소견이 나타났다”고 밝히며 폐질환의 원인으로 잠정지목됐던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 사용 및 판매 중단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이후 살균제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이하 PHMG)와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이하 PGH)의 흡입 독성이 추가로 확인됐다.

인체에게 너무나도 위험한 가습기 살균제

시민단체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건이 알려진 2011년 이후부터 조사되고 접수된 전체 피해규모는 총 1,848명으로, 사망자는 266명이다. 수많은 피해자와 사망자를 낳은 가습기 살균제. 과연 그 원인으로 지목된 성분 PHMG와 PGH는 얼마나 유해한 것일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PHMG는 1996년 SK케미칼에서 세계 최초로 제조됐으며, 초창기에는 카펫의 세정제 용도로 사용됐다. 이후 옥시 측은 이를 가습기 살균제로써 제품화 했다. 그리고 ‘무해’와 ‘세계최초 PHMG 가습기 살균제’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그러나 PHMG는 전혀 무해하지 않다. ‘광범위 살균제 PHMG의 인간 폐 세포 독성 연구’라는 논문을 보면 ‘최소 5, 10ppm 농도의 PHMG는 인간 폐 상피세포 내 세포 유전자를 손상시킨다’라며 ‘이는 세포주기에 영향을 주고, 결과적으로 세포의 죽음을 유도한다’는 연구결과를 볼 수 있다. 물론 제조사에서는 ‘물에 200배 희석시켜 사용하라(6.3~25ppm)’는 권고를 하지만 1,279ppm의 농도를 가진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의 경우 인체에 큰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렌즈 세척용 생리식염수에 주로 사용되는 같은 구아디닌 계열인 ‘염산폴리헥사메틸렌비구아니드’(이하 PHMB)에도 독성이 존재한다. 물론 용도에 맞게 사용된다면 문제가 없지만, 2013년 유럽화학국(EEB)은 ‘PHMB를 흡입할 경우 사망’한다고 밝혔다. 이를 비춰보면 PHMG에도 독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임종한(인하대 작업환경의학)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업이 출시 당시 PHMG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며 광고했지만, 유사 계열 물질인 PHMB가 가진 독성과 발암성을 통해 PHMG의 독성 여부를 추정할 수 있었다’며 ‘최소한의 흡입독성 자료도 없이 시장에 출시하고, 안전하다고 했던 광고는 명백한 과장 광고였다’고 전했다.
옥시는 2011년 국가공인시험검사기관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하 KCL)에 자사 가습기 살균제를 이용한 동물 대상 독성실험을 의뢰해 위해성을 측정했다. 질병관리본부가 폐질환의 원인을 가습기 살균제로 지목한 직후였다. 실험은 총 3단계로 이뤄졌는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먼저 첫 번째 단계인 PHMG만의 고농도 흡입 실험에서는 실험 쥐 10마리 중 8마리가 죽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 진행된 4주간의 자사 가습기 살균제 제품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의 고농도 흡입 실험에서는 20마리 중 10마리가 사망했다. 부검 결과 공통적으로 폐섬유화와 간 독성이 확인됐다. 또한 폐와 간의 변색·부종뿐만 아니라 여타 장기의 위축 등 전반적인 장기손상이 발견됐다. 이후 옥시는 부정적인 해당 실험의 결과를 따로 보고하지 않았으며, 실험 3단계인 13주 반복 흡입독성시험 역시 옥시 측의 요구로 중단됐다. 옥시 측이 이미 살균제의 위해성을 알고있었다는 대목이다.

문제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서 시작됐다

현재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으로 개정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하 유해화관법)에도 문제는 존재했다. 처음 카펫 세정제에 사용되던 PHMG를 용도 변경해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했던 2000년 당시에도 유해화관법에 적용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법에는 용도 변경 시 ‘유해성이 있는 물질에 의해 실제로 피해를 입을 정도’를 의미하는 위해성 재평가 조항이 없었다. 즉 PHMG를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물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해로운 특성’인 유해성만 평가하면 됐다. 이 때문에 당시 업체는 이를 함유한 원료를 카펫 첨가제 용도로 유해성 심사를 받았다. 허가를 받은 이후 용도를 변경하더라도 위해성에 대한 재심사의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4월 환경부는 “PHMG는 반응성 및 휘발성이 낮은 물질이며 유해성 심사 신청 시 용도가 카펫을 제조할 때 첨가하는 항균제였다”며 “카펫 제품을 사용하는 일반 소비자에게는 흡입될 우려가 낮아 흡입독성실험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법 개정 후에도 여전히 남은 문제점

문제가 불거진 후 2013년, 기존 유해화관법은 화평법과 화관법으로 개정됐다. 그러나 해당 법안에도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화평법 초안에는 등록대상 화학물질과 관련하여 가습기 살균제처럼 처음 등록된 용도와 다르게 사용될 경우,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를 거치며 해당 조항이 삭제됐고, 변경사항은 발생 6개월 내에 사후 보고 하는 것으로 완화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해당 조항이 ‘업계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였다. 2012년 8월 규제개혁위원회 행정분과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위원들은 ‘업계에 과도한 부담을 준다’며 삭제를 권고했고, ‘제도가 관련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업계가 제출한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라’고 주문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화평법 완화에 동의했다. 화평법 제정 당시 전문가들은 기존 화학물질의 △제조 △수입 △판매의 등록기준을 연간 1톤 이상으로 설정한다면 생활화학제품에 사용되는 살생물제에 대해 관리가 어려울 것이라 경고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9월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며 “기업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달라”고 강조했다. 결국 기준은 1톤으로 정해졌다.
이러한 기준으로는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생활화학제품에 사용되는 살생물제는 극히 미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간 1톤보다 낮은 양을 사용하고도 생활화학제품을 양산해낼 수 있다. 특히 옥시레킷벤키저가 2001년부터 2011년까지 판매한 옥시싹싹에 사용된 PHMG의 양은 연간 300kg에 불과하다. 현재 화평법의 기준인 1톤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PHMG는 여전히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화평법 시행 이후 1톤 이하로 등록 의무가 면제된 건수는 전체의 92.4%인 4만 1256건. 1톤 이상으로 △용도 △양 △독성시험 등 정보가 환경부에 제출된 건수는 고작 49건에 불과하다.
관련법에 따르면 공산품에는 화장품보다 비교적 자유롭게 화학물질을 성분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유해 화학물질이라 하더라도 기준치 이하로 검출된다면 성분을 표시할 의무 역시 없다. 살생물제를 관리하는 정부 부처가 각각 다른 것도 문제다. 살균제와 살충제는 보건복지부, 공산품 관련은 산업통상자원부처럼 총 다섯 부처로 나뉘어져 있다.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각각의 관리 기준 역시 달라 관리가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는 일상 중 대부분을 화학제품과 함께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화학물질을 주성분으로 하는 제품이다. 2013년에는 물티슈의 성분에 가습기 살균제에 있었던 PHMG, PGH 등의 화학물질들이 검출돼 많은 논란이 됐다. 또한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일부 신발 탈취제에서는 PHMB가 검출됐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가 안전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번 문제는 정부가 기업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생긴 안전불감증에 의한 최악의 사건이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피해자와 무고한 사망자들을 낳았다. 물론 이에 대해 기업과 정부가 일차적으로 책임을 지어야 마땅하다. 살균제의 위해성을 연구했던 KCL과 이를 묵인하고 제품을 생산해온 제조업체들과 이를 소비자들에게 판매한 유통업체들.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 위험성이 드러났음에도 관련 법안을 약화시키는데에만 초점을 맞췄던 정부 모두 반성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되돌려놓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제2, 제3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발생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앞서 말한 화평법과 화관법의 조항 개정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연간 1톤으로 지정된 현재의 법안 등이 먼저 개정되어야 더 많은 화학물질을 검사해 위해성 있는 화학물질의 유통을 막을 수 있다.
법안의 개정 등은 정부와 업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우리들의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그들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 그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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