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기간 방송되었던 리얼리티 예능 <용감한 가족>은 연예인들이 화장실도 없는 수상가옥에서 지내거나 염전에서 일을 해 돈을 버는 극한 체험을 하는 예능이었다. 출연자들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예민해지기도 하고, 같이 지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서로를 이해하면서 마음을 나누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방송에서 딸 역할을 했던 여자 출연자는 생각보다 털털하고 일도 잘해 눈길이 갔었는데, 어느 순간 그녀의 몸매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면서 순식간에 다수의 광고에 얼굴을 내미는 톱스타가 되었다. 바로 설현이다. 그런 그녀가 <온스타일>에 출연해 그녀가 소속된 아이돌그룹의 다른 멤버 지민과 함께 역사문제를 푸는 장면이 방송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상식에 가까운 문제임에도 오랜 시간 정답을 풀지 못하는 두 명의 모습이 그대로 방송되었고, 한순간 그녀들은 “역사의식 없는 무개념”의 아이돌이 되어있었다.
사실 그동안 연예인들이 퀴즈를 풀면서 보여준 ‘상식 이하의/지식이 낮음’을 발견해, 대중적 웃음코드로 활용한 방송이 많이 제작되어왔었다. 아마도 출연자들 역시 그런 자신의 모습이 유머코드로 활용되는 것에 웃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웃음코드에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무한도전>의 ‘바보전쟁’이 여기에 해당된다. ‘바보전쟁-순수의 시대’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면서, 그동안 상식 이하의 지식을 가진 코믹한 대상으로 많이 언급되어왔던 연예인들이 출연해, 오히려 각자 자신만의 매력과 능력을 지니고 있는 존중받아야 할 대상임을 보여주었다. 하나의 명확한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갖는 한계와 문제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고 보고 싶다.
하지만 설현과 지민의 상황은 좀 달랐다. 바로 역사문제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방송에서는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의 신중하지 못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그들은 정말 ‘무개념’으로 대상화되었다. 결국 대중의 사랑을 받던 광고 대세녀 ‘설현’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타의 이미지가 대중의 인기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한국사회에서 그녀의 행동은 치명타였다.
물론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이러한 비판에 일정 정도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 가수들에 대한 역사적 개념을 요구하기 전에, 아이돌 가수를 출연자로 선택해 방송을 제작하는 제작자들과 아이돌 그룹이 속한 소속사의 책임은 논의가 되고 있지 않은 것은 더욱 문제라고 본다. 방송제작자들은 ‘재미’만 있다면 소재가 무엇이든 방송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아이돌그룹의 소속사는 가수들을 보호하는 것보다 신곡홍보 활동을 더 우선시했다는 점이다. 설현과 지민은 방송 논란 이후 강행된 신곡 발표 등의 쇼케이스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다. 이미 잘 알려진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가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어 중국 내에서 큰 역풍을 맞았던 사례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쯔위는 방송제작진이 전달해준 대만국기를 방송에서 흔들었을 뿐이었지만, 중국내에서의 반감은 커졌고, JYP는 쯔위를 앞세워 사과영상을 찍어 올리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제작자와 연예기획사가 아닌 아이돌 멤버가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들었고, 문제 발생의 원인이 아이돌 그룹 멤버에게 있다는 것만을 부각시켰다. 즉, 중국시장에서의 수익성을 고려한 행보라는 것, 제작자와 기획사는 책임논란으로부터 빠져있다는 것은 문제적이다.
우리는 여성 아이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살인적 스케줄과 극한의 다이어트, 그리고 프라이버시도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돌 멤버들은 개인 휴대폰 조차 소유하지 못하고 기획사의 요구를 수행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지만, 그들이 겪고 있을 연예기획사의 ‘폭력성’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에서 여성 아이돌이 잠깐이라도 벗어날 경우, 냉정하게 외면한다. 정치인에게 요구되어야 할 도덕적 윤리와 올바름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연예기획사가 수익성 중심의 시선에서만 아이돌그룹을 관리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류스타로 명명하며, 아이돌 그룹에게 국위선양을 하는 ‘역할론’을 부여하기보다, 대중음악 장르에서 활동하는 가수로 활동할 수 있도록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바꿔야 할 때인 것 같다.

이종임
성균관대학교 문화융합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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