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 여부가 뜨거운 논란거리였다. 필자가 이 곡을 처음 접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였다. 처음 들었지만 강렬한 가사와 장엄한 분위기로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대학 입학 후 처음 참석한 개강총회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서툴지만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합쳐지자 여느 가수 못지않았다. 당시 사회학과 학생회에서도 이 곡을 개강총회마다 제창할지 말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논쟁 끝에 개강총회 식순에서 제창이 빠졌다. 이후 취재차 갔던 집회에서도 여러 번 이 곡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마다 이 곡의 진수는 서투른 여러 목소리의 조합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렇기에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 여부가 논란이 되어 안타깝다. 2009년부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에서 합창으로 바꿨다. 이 곡을 ‘기념식의 지정곡으로 할지 말지’도 논란거리다. 국가보훈처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합창하기로 한 이유를 “합창과 제창 사이에 논란이 있는 상태에서 제창으로 결정할 수 없었다며 최대한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도록 결정한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당일 기념식에 찾아간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광주 시민들이 입장을 저지해 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되었던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씨와 야학을 운영하던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탄생한 곡이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어 한때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가사의 절절함과 결의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고, 카세트테이프로 녹음되기도 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현재는 대표적인 민중가요로 자리 잡았다. 일본어, 중국어, 영어, 태국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불릴 정도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곡이다. 하지만 이 곡은 ‘종북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는 5·18민주화운동을 주동한 세력에 북한군이 포함되어 있다는 음모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음모론은 근거가 없지만 몇몇 정치권 인사들의 입에서 공공연하게 거론되면서 희생자들의 명예훼손, 역사 부정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 모든 논란 끝에 필자가 내린 결론은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5·18의 광주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2014년 광주행 버스에 탑승했다. 광주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금남로를 걷다 망월동의 묘역에 갔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묘가 가득한 것을 보면서 망연함과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끼기도 했다.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 간의 연대감과 비애가 가득했다. 현장을 방문한 뒤 든 생각은 5·18민주화운동이 기념일로 지정된 이유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작곡된 이유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 여부가 아니다. 이를 중재하는 정부의 자세다. 여·야당의 분열로 대표되는 정치권의 분열, 대척점에 있는 노사관계, 세대갈등과 지역갈등 등 대한민국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내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이 곡의 제창 여부로 또다시 지역감정과 당파 싸움이 생기지 않도록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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