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소 <화공생명공학 14>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낙수를 생각하자마자 떠오른 시의 한 구절이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채 앞만 보고 달리던 내 인생에 한 번의 제동이 걸렸다. 입시에서 실패한 뒤로, 예상하지 못한 일 년의 공백이 생긴 것이다. 재수 생활 이후, 대학에 입학한 나는 뒤처져 있다는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무엇이든 해야 돼’라는 생각 속에 파묻혀 지내던 나에게 우연히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다가왔다. 사회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지나던 길목에서 ‘수습기자 모집’ 포스터를 보았다. 이는 나에게 두 번째 우연으로 다가왔다. 내내 잊히지 않던 ‘수습기자 모집’이라는 글자에 나는 이미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었다.
수습교육을 마치고, 발행에 참여한 첫 신문에서 나는 내 이름을 찾느라 바빴다. 신문에서 보이는 내 바이라인 하나하나가 나에게 기쁨이었고, 행복이었다. 배우는 과정 속에서 ‘지금 쓰는 기사보다 긴 호흡의 기사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때, 수습기자로서의 마지막 발행에서 교수회장 선거라는 기사를 맡게 됐다.
하지만 쓰고 싶었던 기사를 쓰게 됐다는 기쁨도 잠시, 이는 나에게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하나의 기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취재원에게 질문하기 위해서 나는 취재원만큼의 배경지식을 알고 있어야 했으며, 생각하지 못한 변수들이 존재했기에 어려움은 더욱 크게 와 닿았다.
열정적이던 수습기자 생활이 지나고, 대학부 부수습기자가 되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기자가 되겠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외치던 나는 사라진 뒤였다. 최고의 결과보다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일에 임하기를 다짐하던 나도 없었다. 최선보다 현실과 타협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나만이 남아있었을 뿐이다. 여유가 없다는 변명만 늘어대며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즈음의 나는 강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8개월 동안의 나는 흔들림에 약한 존재였다. 회의 자리에서나 트레이닝 과정에서 내 생각을 밝히는 사람이기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만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정기자’라는 수식어를 단 나 또한 여전히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절대 꺾이지는 않을 것이다. 기자로서 나만의 흔들리지 않는 주관을 세우고, 나만의 잣대로 판단해 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가 세운 명확한 기준 속에서 나 스스로 확신을 가지며 기사를 써나갈 것이다.
우연이 세 번 겹치면 운명이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 기자가 운명이 되기까지는 마지막 한 번의 우연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우연을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부대신문과 나를, 또 기자와 나를 운명으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개척해 나갈 것이다. 기자로서 보내는 소중한 하루하루가 모이면 언젠가는 나의 운명이 되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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