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지영 <심리학 15>

  나는 100m 달리기를 좋아한다. 그리 멀지도 엄청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가 좋다. 숨이 채 차오르기 전에 도착하는 데다, 출발선에서 목표지점이 보인다는 점에서 안정감이 있다. 여태까지 내 삶도 마찬가지였다. 100m 달리기처럼 짧고 굵게 끝나는 일을 선호했고, 장거리 경주는 가급적 피했다.
사실 신문사 생활은 100m 달리기를 할 때보다 더 빠르고 힘차게 달려야지만 한 주를 무사히 넘길 수 있다. 월요일을 시작으로 쉴 틈 없이 달려서 일요일 새벽 떠오르는 해를 보며 집에 도착하면 한 주의 레이스가 무사히 끝이 난다. 그래서 나는 한 주 발행을 마칠 때마다 ‘이번 주도 잘 달렸다’ 하고 내심 뿌듯해했다. 스트레스에 엉엉 울고 코피가 나더라도 도착점에 도착하고야 마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기자로서의 책임감과 의무를 놓아버린 지난 2주간, 달리기를 잠시 멈추고 재정비를 하던 중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내게 목표지점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2년 6개월의 임기는 도착점일 뿐 목표가 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난 이유 없이 신문사가 좋아 보여서 입사지원서를 냈고, 동료가 좋고 선배가 좋아서 수습생활을 했으며, 사회부로 배치받아 적응하기 급급했다. 한 주 한 주 발행을 무사히 마치는 것이 도착점에 도착한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을 뿐, 사실 진짜 목표지점도 없는 달리기는 끝이 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무서워졌다. 목표도 없이 무작정 뜀박질을 하다가는 힘들어서 주저앉았을 때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 것 같았다. 2년 6개월이라는 임기가 끝난 뒤 ‘아름다운 도전’이었노라 말할 수 없겠다는 두려움도 생겼다. 무엇보다도 내가 어디쯤 왔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기에, 잘하고 있다는 자신감은 한없이 추락했다.
그렇다면 난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달리기를 지속해야 할까. 급하게 목표를 만들어볼까 싶었지만 ‘학생들의 목소리가 되겠다’는, 말만 번지르르한 입사지원서의 지원동기처럼 공허한 외침이 될 게 뻔했다. 생각은 길을 잃어 방황하고 있었고 이 상태로는 기자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것 같았다. 미처 생각을 추스르기도 전에, 수습의 그늘을 벗어나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차라리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면 목표가 없다는 것도 몰랐을 텐데…’하며 후회했을 정도로 정기자의 무게는 막막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100m 달리기를 운운하면서까지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면, 이미 한번 달리기를 쉬어봤기에 더 이상 멈추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한번 시작한 이상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나에게 부대신문은 끝까지 달려보고 싶은 레이스다. 내가 길을 잃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기에 이제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 쭉 나아가면 될 것 같다. 여전히 목에 걸린 기자증은 무겁지만, 그만큼 더 힘차게 달려서 힘을 길러야겠다. 도달하지 못할까 무서워 목표를 못 만드는 일이 없도록. 그래서 나는 여태 달렸듯, 앞으로도 일요일 새벽을 향해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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