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1893~1976) 선생님께서 소문난 애서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나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운 중국의 정치가이네. 중국에 공산주의 체제를 수립한 혁명가로 알려져 있지. 나의 이런 정치 활동에 기반이 되었던 것은 바로 독서네. 농사 일손이 급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아버지는 내게 읽고 쓰는 것과 주판밖에 가르치지 않았지. 하지만 나는 스스로 책을 갈구해서 마치 배고픈 소가 채소밭에 달려 들어가듯 책을 읽었어. 후에는 침실 사방 벽을 모두 책장으로 만들고도 화장실에 책이 가득 쌓여있을 정도였네. 내가 죽은 후 확인해보니 장서 권수가 약 10만 권, 장서목록만 30권에 달했다고 하더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책을 놓지 않을 정도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밥은 하루 안 먹어도 되고 잠은 하루 안 자도 되지만 책은 하루라도 읽지 않으면 안 되었다네. 내가 장사에서 공부할 시절 ‘심신의 수양과 학문의 연구를 위주로 노력하여 책을 읽자’는 항심(恒心)을 유지하겠다고 결심했었지. 국가통치 같은 막중한 업무 속에서도 일분일초를 쪼개어 책을 읽은 이유도 이 때문이네. 모두가 궁금해 하긴 하더군. 그 많은 국가대사를 관장해야 하는데 책을 볼 시간이 어디서 생겨났느냐고. 나의 독서 시간은 생긴 것이 아니라 짜낸 것이네. 업무시간 외에 거의 모든 시간에 독서를 했다고 보면 되네.

▲책을 많이 읽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까지 읽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독서를 하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많이 읽고(多讀) △많이 생각하고(多想) △많이 묻고(多問) △많이 쓰는(多寫) 사다(四多)습관이 있었어. 먼저 많이 읽는다는 것은, 많은 책을 읽는 것과 동시에 여러 번 읽는 것도 말한다네. 세 번 반복해 읽고 네 번 되풀이하는 삼복사온(三復四溫)을 실천했지. <자치통감>은 17번 읽었고 <홍루몽>은 10여 종의 판본을 다 들여서 읽었을 정도였다네.
  많이 생각하는 것은 책을 맹신하거나 무조건 따르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의미네. ‘<서경>을 그대로 다 믿는다면 <서경>이 없느니만 못하다’라는 맹자의 말씀을 아는가? 어떤 점이 옳고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해서 판단력과 비판의식을 기르지 않는다면 책을 헛읽은 것과 다름없어. 독서 과정에서는 대담하게 회의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용기와 의지가 필요해. 나는 중국 고서나 마르크스주의 저작을 대할 때도 그랬네. 그리고 책에서 의문이 드는 사항은 잘 아는 사람을 찾아 물어서 해결해야 하네. ‘많이 묻는다’는 그런 뜻일세.
  마지막으로 손에 붓을 잡지 않고 책을 읽는 것은 독서가 아니네. 독서를 하면서 생각나는 것을 쓰고, 다 읽은 뒤에도 써야 하네. 나는 책을 읽을 때 중요한 부분에 동그라미, 점 등의 부호를 이용해 표시하고, 모르거나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는 주를 달기도 했다네.
 
▲‘독서는 모택동을 만들고 모택동은 중국을 만들었다’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점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나의 지혜와 재능의 토대가 독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네. 학문이 바탕이 되면 산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멀리 많은 것을 볼 수 있기에 나는 늘 배우려고 노력했지. 하지만 그럼에도 늘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꼈어. 그래서 △정치 △경제 △군사부터 △역사 △지리 △종교 등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독서를 했던 것이네. 물론 그렇다고 배우는 데에 그치기만 하면 안 돼. 학문에 정통하려고 하는 것은 현실에 응용하기 위해서라네. 이론과 실천은 화살과 과녁의 관계와 같아. 과녁을 맞히지 않는 화살이 필요한가? 독서도 실천하는 가운데서 해야 하는 것이네. 생각한 바를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그건 진정한 독서라고 볼 수 없지. 내가 중국을 개혁한 것은, 독서를 통해 배운 것을 실천한 바가 빛을 발했다고 보면 되네.
* 참고 자료 : <마오의 독서생활>(꿍위즈, 핑센즈, 스중취안 외 저, 글항아리), <국가지도자와 독서-중국 국가주석 모택동의 경우>(허권수 학술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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