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서를 보여주며 “그 힘든 걸 해냅니다. 제가”라고 한 마디 던지는 친구. 선물을 주며 “이 목걸이, 송혜교보다 네가 더 잘 어울려”라는 남자친구의 거짓말이 싫지 않다. 잠시 사람을 착각에 빠지게 하는 립 서비스는 대인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눈에 콩깍지가 낀 연인들은 애인이 송중기보다 멋있고 송혜교보다 예쁘게 보이겠지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여러분은 절대 착각에 빠지지 않는다고 확신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누구나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프리즘에 햇빛을 통과시켜 무지개 모양의 스펙트럼을 관찰한 뉴턴은 그 속에 7가지 색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뉴턴은 소리의 과학인 음악이 7음계를 사용한다면 빛도 그렇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무지개나 프리즘으로 햇빛의 스펙트럼을 관찰해 보면 7가지 색을 구분해 보기 어렵다. 뉴턴이 단지 ‘7’이라는 숫자만큼의 색을 보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이었다. 뉴턴이 7가지 색 무지개를 보길 원했듯이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아전인수(我田引水)라고 하며, 과학자들은 좀 더 거창하게 관측의 이론 의존성이라고 한다. 관측의 이론 의존성은 과학자들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 실험결과를 관측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객관적이어야 할 과학자들도 착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사실 ‘착각에 빠졌다’는 말은 좋지 않은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착각의 빠진 사람은 종종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다. 얼마 전 미국에서는 기내에서 수학문제를 풀던 교수가 테러리스트로 오인당하여 비행기가 회항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이 경우에는 단순히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때론 오해가 폭력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등산길에서 만난 사람이 자기에게 욕하는 줄 착각하여 살인을 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심지어 착각은 낙랑공주처럼 자신과 나라를 모두 비극으로 내몰기도 한다. 착각은 특별한 경우에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많은 교통사고는 운전자의 착각 때문에 일어나지만, 사람들은 무인자동차보다 자신의 운전 실력이 뛰어나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심지어 무인자동차가 인간의 운전습성을 따라 하다가 사고를 냈는데도 인공지능을 믿을 수 없다고 여긴다.
  우리가 착각하지 않는다면 매일 같이 접하는 CF의 형태는 지금과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합리적 소비자에게는 제품에 대한 정보만 필요할 뿐 비싼 모델을 기용해 제품의 단가를 높이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CF에서는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를 이용해 뉴로마케팅을 할 만큼 마음을 움직이는데 적극적이다. CF뿐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남이 착각하기를 바라며 하루를 시작한다. 옷이나 헤어스타일에 신경 쓰는 것은 외모를 통해 나에 대한 판단 기준을 흐리기 위한 전략이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외모에 의한 편견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고등학교 때 ‘단정한 복장’에 대한 규정을 어기면 벌을 받았을 것이다. 단정한 복장을 해야 수업태도가 좋을 것이라는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해가 폭력을 불러오고 착각에 빠져 판단을 흐림에도 인간에게 착각은 꼭 필요하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라는 희망, 이번 시험에는 꼭 합격할 것이라는 기대가 힘든 하루를 버티게 하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들리지 않아도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착각이 베토벤을 탄생시켰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지만 인간도 날 수 있다는 착각이 비행기를 만들었다. 이 약이 병을 낫게 해 줄 것이라는 긍정적 착각이 플라세보 효과를 만든다.
  착각은 개인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있지만 집단의 착각은 비극을 불러 올 수도 있다. 인류는 인종문제나 종교 갈등과 같은 착각에 빠져 수많은 죄 없는 목숨을 잃었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을 착각에 빠트려 전 세계를 전쟁의 참화 속에 밀어 넣었다. 최근 북한이나 미국, 필리핀 등 세계 정치의 흐름을 보면서 왠지 히틀러의 망령이 되살아난 듯 느껴지는 것은 단지 나의 착각일까? 

최원석 과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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