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국회 헌정회관에서 국회사무처로 가는 거리가 300m라고 한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를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초선 의원들이 버스를 타고 갔다고 해서 언론의 몰매를 맞았다. 그것도 90여 명을 위해 버스가 여섯 대가 동원되었다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조선 시대 9대로 중 한 곳인 <삼남대로>를 걸을 때였다. 수원 지지대 고개를 넘어 의왕시에 접어들자 아파트 숲이 들어차서 길이 애매했다. 버스 승강장 앞에서 토큰을 파는 아저씨에게 오전초등학교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렇게 먼 거리를 걸어가요? 차 타고 가야지요”. “거리가 얼마나 되는데요?”. “버스로 두 정거장이나 되는데…”.
  필자가 해남에서 이곳까지 걸어왔다고 하면 놀라 자빠질 것 같아서 그 말을 할 수도 없고, 그저 할 말을 잃을 뿐이었다. 하기야 아파트에서 슈퍼마켓에 갈 때도 차를 타고 가는 세상이 아닌가? 그렇게 먼 거리가 ‘버스로 두 정거장’이라는 공식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그래서 그랬을까. 당선증에 아직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급하게 처리할 일도 없는데, 300m를 버스를 타고 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물론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너무 바쁘게 살기도 했고, 과잉의전의 문제 때문에 그렇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걷는 것을 등한시하다가 보니 걷는 것을 잊기도 했고, 일면 걷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저마다 다르게 살고 저마다 다른 길을 간다. 도(道)라고 표현한 길, 그 길을 걸으며 사람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덴마크의 철학자인 키르케고르는 “나는 걸으면서 나의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 걸으면서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고 하였고, 그리스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는 “내가 찾아 헤맨 것은 나 자신이었다” 라고 술회하며 길을 걷는 것은 보이지 않는 스스로의 마음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술회하고 있다.
  그렇다면 걷기는 왜 좋은가? 첫 번째가 건강에 가장 특효약이다.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行補)가 낫다” 허준은 아무리 비싸고 좋은 약이나 음식보다 좋은 것을 걷는 것으로 보았고, 정약용 역시 ‘걷는 것은 청복(淸福), 즉 ‘맑은 즐거움이다’라고 극찬을 했다.
두 번째가 마음을 다스리는 데 걷기처럼 좋은 운동이 없기 때문이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여러 철학자는 ‘걸으면서 강의하고 가르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소요학파(逍遙學派)’라고 불렀다. 영어로 ‘Peripatetic’, 곧 ‘습관적으로 먼 길을 걷는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사유(思惟)와 걷기를 의미한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인 칸트 역시 매일 걸으면서 건강을 유지했고, 그의 사상을 진전시켰다. 이렇듯 걷기는 한 발 한 발 걸으면서 여러 가지 사물을 만나고 세상을 만나며 나를 만나게 되는 지름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기가 맑고 경치가 좋은 곳을 사나흘 정도 걸으면 보약 한 재 먹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또한 길은 잃어서 헤맬수록 좋다.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고 평탄하고 안전한 길, 알려진 길만 가면 새로운 길을 찾을 수가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들뢰즈가 “창조란 불행한 것들 사이로 자신의 길을 금 그어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창조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고난의 길을 걸어갈 것을 권유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청춘의 시절, 이 나라 이 땅을 걸어서 답사했던 선각자들이 많았다.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바꿔 말하면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옛사람들의 역사와 사상의 흔적을 따라 이 땅을 걸었다. 그들이 걸어간 길을 한 발 한 발 걸어가다 보면 우리 민족이 걸어가야 할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신정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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