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중순이 되면, 봄기운이 완연하면서 활기차던 대학 캠퍼스가 추억처럼 떠오른다.
중간고사 시험이 끝난 이후라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탓도 있겠지만, 갓 입학한 신입생들은 캠퍼스 문화에 적응을 시작하고 재학생들은 축제나 대동제의 준비 때문에 부산스럽게 움직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밤이 되면 학교 곳곳의 주막은 흐트러질 듯하면서도 지성을 뽐내고, 세상을 향해 작은 공을 쏘아 올리곤 했었던 그 시절이 ‘멋’은 있었다. 이런 낭만도 있었던 반면, 몇백 미터로 이어진 도서관 줄 서기가 계속되고 정독실에는 밤늦도록 면학에 젊음을 불태우는 학우들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이런 문화는 끊어지지 않고 일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의 역사는 중국 주나라 때의 국학기관이나 BC 387년경 플라톤이 설립한 아카데미아를 기원으로 하고 있으나, 12세기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케임브리지, 옥스퍼드 등)의 전형적인 대학의 출현에 이어, 18~19세기경 독일 베를린대학이 근대 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으로 이해한다. 근대 대학에서는 공동생활의 장소에서 모두 모여 동시에 학문을 연구하고 진리와 자유를 탐닉해 왔다. 그러니 비판적 연구가 가능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학문 공동체의 상징이 곧 대학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구려의 태학, 고려의 국자감이 있었으며 조선의 국립 고등교육기관인 성균관과 사립서원이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 광복 이후에도 대학은 한국 사회의 최고 교육기관이자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대학은 국가에 따라 그 성격에 있어서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어느 나라에서나 항상 그 시대의 미래를 열어갈 학문의 연구와 지도자 양성에 크게 기여해 왔다.
대학은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고 사회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최고의 교육기관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대학이 고등 교육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잃어가고 있다. 인간 세상의 미래를 위한 다양한 학문 연구보다는 실용주의적 학문만이 중시되고, 취업을 위한 인력양성소로 변모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학생들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 학문만을 중요시 여기고, 취업이 잘되는 대학을 선별해 순위를 매긴다. 교육부에서 진행하는 사업은 다양한 학문의 중요성을 무시한 채, 특정 학과만 지원하는 것도 이러한 현실의 심각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지도자로서의 길은 요원하고 당장 생계 문제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는 현실이 너무도 개탄스럽다. 대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 ‘창의적인 미래’를 위해 어딘가에 올인 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자신이 어딘가에 몰두하면 미래가 열리고, 삶의 보람이 느껴지며, 생계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세상을 그리워 해본다. 대학교수들이 학생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더욱 더 고민해야 될 것 같다.
미친 듯이 몰입하고, 자유롭게 소통하며, 미래에 필요한 것이 진정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그런 대학 문화가 그립다.

김종관(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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