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요즘 학교는 시끌벅적합니다. 개교 70주년을 맞은 탓도 있고, 대동제가 열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연구실 앞에는 아직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덩달아 저도 선생님께 짧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뵌 건 재작년 봄이었습니다. 왠지 모를 기분에 이끌려 학년과도 맞지 않는 선생님의 수업을 미리 듣게 됐습니다. 선생님의 인상은 강렬했습니다. 책 한번 보지 않고 한 시간이 넘도록 강의를 이어나가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강의를 하시다 목이 아파 물로 목을 축이실 때까지도 제 시선은 선생님으로부터 떠나지 않았습니다.
재작년 축제를 며칠 앞둔 그맘때, 선생님께서는 말하셨습니다. 축제는 모든 걸 잊고 즐기는 거라고. 이 날만큼은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구요. 평생 학문에만 열중하며 축제 때도 연구실에 계실 것만 같았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놀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습니다.
올해 5월, 축제와 학교 행사가 모여 있는 이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다시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일사불란하게 개교 70주년 행사와 축제를 준비한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저는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과연 온전히 축제를 즐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이번 축제는 무언가 이상합니다. 선생님이 말했듯, 쉴 틈 없이 달려왔던 그 틈새에서 잠시나마 기뻐야 하는데, 전혀 기뻐 보이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선생님의 말처럼 모든 걸 잊고 즐기기에는 가슴 속 무언가 답답한 게 남아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선생님이 돌아가신 이유와 상통할 수도 있겠지요. 선생님이 지키시고자 했던 대학의 자율이라는 가치가 아직 완전히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자율이 없는 상황에서 즐기는 축제란 참 묘한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데 자율은 어디에 있으며 축제는 왠 말일까요. 우리 스스로는 자율을 되찾으려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날, 흰 종이 위에 눌러쓴 선생님의 목소리가 우리 학교에 큰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 울림의 진폭은 다 이해하지 못할 만큼 섬세해서 학내구성원 모두에게 닿지 않았나 봅니다. 그날, 글자 하나하나를 깎아 다듬으며 어떤 고통을 느꼈을지 저 또한 모두 알지 못합니다. 진정한 자율은 결코 달콤하지 않을 것입니다. 피와 얼룩진 고통을 기반으로 맺힌 열매가 어떻게 달겠습니까.
갑작스러운 선생님의 소식 이후 9개월이 지난 지금. 지키고 개선하고자 했던 것들이 얼마나 이뤄졌을까요. 아무리 애써 축제 분위기를 만들고 새로운 대학으로 거듭나려 겉모습을 꾸며도, 지금의 학교는 아직 진정한 축제를 즐기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진정 축제를 축제처럼 즐길 수 없는 상황이 선생님께서도 싫으시겠지요. 지금의 모습이 제가 생각해온 이상적인 대학의 모습이 아니듯, 선생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셨겠지요. 그렇기에 선생님도 모습을 바꿔보고자 하신 거겠지요. 시늉뿐인 축제를 앞두고, 선생님이 더 보고 싶습니다.
故 고현철 선생님을 떠올리며, 제자 신지인 드림

신지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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