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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으로 뽑은 총장들, 어떤 변화를 이끌었을까

   올해로 개교 70주년을 맡은 우리 학교. 기나긴 역사의 길을 걸어온 만큼 우리 학교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대학의 한 축인 ‘총장’의 자리에는 그동안 총 18명이 거쳐 갔다. 이 중 교수회 주관으로 선출된 최초의 직선 총장인 14대 장혁표 전 총장부터 19대 김기섭 전 총장까지, 이들이 총장 취임사를 통해 그렸던 우리 학교의 비전과 임기 동안 만들어낸 변화를 살펴봤다.

최초의 직선 총장,
국제화 진전 보여
   
14대 장혁표 전 총장 (1991년~1995년)  
  우리 학교에서 최초로 직선제를 통해 선출된 장혁표 전 총장은 취임식에서 △대학원의 육성 발전·연구소 운영 활성화 등으로 연구 기반의 지원 및 확충 △교육의 국제화 △전산망의 도입 및 확충 등을 강조했다.
  장 전 총장은 임기 동안 △국립대 최초로 안식년제 도입 △공학연구센터 설립 △기초과학연구 등의 중점연구소 지정 등을 통해 연구 의욕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일부 구성원은 연구를 위한 행정적 뒷받침의 부족함을 개선하기 위해 연구처를 개별적으로 둘 것을 요청했다. 교수와 조교의 증원이 미흡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교육의 국제화는 △교수와 직원의 해외연수 기회 확대 △어학실습실 확충 △국제대학원 설립 △교양 필수 과목으로 영어 지정 등으로 진전시켰다. 종합정보시스템의 구축에 착수해 행정의 전산화를 도입한 성과도 보였다. 다만 김호정(행정학) 교수가 재임용 탈락에 불복해 대학본부에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하자, 상고를 지시한 교육부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은 직선 총장으로서의 흠으로 지적받았다.
 
정보화 촉진했지만 교육부 
정책에 대한 대응은 아쉬워
 
     
15대 윤수인 전 총장 (1995년~1999년) 
   윤수인 전 총장은 임기를 시작하며 연구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그 방안으로 △대학원생의 증원과 장학 및 후생 개선 △대학원 중심 대학 체제 △연구실 환경 개선 등을 언급했다. 이와 함께 △캠퍼스 공간의 확보 △도서관·전자계산소의 기능 보강 등도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의 임기 동안 △종합전산망의 구축 완료 △주제도서관 설립 △기계공학연구정보센터·의학전문정보센터 유치 등을 통해 학내 정보화를 촉진했다. △소장도서 100만 권 달성 △도서관 예산 28억 원 증액을 통해 내실이 튼튼해지기도 했다. 연구 환경의 개선에서도 일정 부분 수확이 있었다. 임기 4년 동안 연구비 총액이 75억 원 증가하고 공동실험실습관과 공동연구소동이 개관했다. 캠퍼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캠퍼스종합계획을 수립하여 부산캠퍼스의 재개발을 시작했고, 의·치대의 부산캠퍼스 이전 계획을 확정했다.
  교육부의 정책 강요에 대한 우리 학교의 입장 문제로 학내 구성원 간의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학본부는 BK21 사업·학부제 등을 도입하고자 했지만 교수·학생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윤 전 총장은 이임사에서 “부득이 이 사업(BK21 사업)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던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라고 언급했다.
 
‘환태평양 핵심역량대학’ 
키우고자… 소통은 미흡
 
   
16대 박재윤 전 총장 (1999년~2003년)
  최초의 외부인사로 총장으로 당선된 박재윤 전 총장은 우리 학교를 ‘환태평양 핵심역량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고 강조했다. 환태평양권이라는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6개 대학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경쟁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하고자 했다. 세부 사안으로 △정기적 세미나 혹은 워크숍 개최 △학생의 학점과 과외 활동 교류 △교수 교환 등을 언급했다.
  박 전 총장은 여러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학내구성원들로부터 의견을 적절히 수렴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다. 주력 사업이었던 환태평양 사업의 일환으로 환태평양 컴퓨터·영어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지만, 사전 준비가 부족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제2캠퍼스를 양산 부지로 선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학내구성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고, 부산시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교육부 정책에 대한 대학본부의 대응에 대해서도 교수회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연임 성공했지만 효원문화회관 
사태로 대학 운영은 ‘실패’
 
   
17대~18대 김인세 전 총장 (2003년~2011년)
  김인세 전 총장은 우리 학교에서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다. 김 전 총장은 첫 임기를 시작하며 △첨단 교육 환경 조성 △철학과 교양을 중시하는 패러다임 형성 △합리적·민주적인 대학 운영 등을 약속했다. 임기 동안 △교양교육원·교수학습지원센터 신설 △대학평의회의 학칙화 △제2캠퍼스를 양산에 유치해 의·치대와 양산부산대병원 신축 △효원문화회관 개장 등을 이뤘다. 그러나 민주적 대학 운영에서 다소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교수회의 학칙화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고, 애초 목적과 변형된 형태로 평의원회 학칙화가 이뤄졌다. 또한 부경대와의 ‘공동발전 추진 협약서 체결’ 과정에서 학내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아 많은 비판을 받았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첫 임기 동안 구축한 시스템과 교육·연구 인프라를 바탕으로 △교양교육·전공교육 강화 △학내 연구지원 체제 구축 △연간 1,000명 이상 학생의 해외 교류 등을 통한 국제화 증진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김 전 총장은 첫 임기 시절 시작했던 효원문화회관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여러 비리를 저질렀다. 효원문화회관 사업자인 효원이앤씨에 기성회비를 담보로 보증을 서고 그 대가로 뇌물을 수수하는 등 범죄를 저지른 정황이 드러나 지난 2012년 구속 기소됐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우리 학교는 효원이앤씨를 대신해 대출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에 휘말려 현재까지도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하나 되는 부산대 꿈꿨으나, 
아쉬운 마무리
     
19대 김기섭 전 총장 (2012년~2015년)
  김기섭 전 총장은 효원문화회관 사태의 그늘 속에서 임기를 시작했다. 김 전 총장은 취임식에서 “사회의 일부인 대학이 사회와 함께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이 사회적 변화와 혁신의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되어버렸으며, 변화와 혁신의 주체가 될 때 대학의 위기가 기회로 반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학의 본질적 사명인 진리에 대한 탐구와 학문의 연마를 수행하기 위해 사회적 권력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One PNU’라는 슬로건을 통해 ‘하나 되는 부산대학교’를 강조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총장직선제의 폐지를 끊임없이 강요하자, 총장직선제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에서 몇 차례 입장을 번복했다. 대학본부가 학칙을 개정하며 직선제 폐지를 추진하자 교수회는 총장 불신임을 결의하기도 했다. 결국 작년 8월 故 고현철(국어국문학)교수가 김 전 총장의 행보와 교육부에 항의하며 투신했고, 김 전 총장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참회하겠다’며 자진사퇴했다.

부대신문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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