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 ‘가정의 달’이라고도 한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21일 부부의 날, 그리고 가족은 아니지만 15일, 스승의 날도 있다. 늘 보는 사이이기에 ‘쌩까기’도 어려워서, 5월만 되면 통장 잔고가 두 배는 빨리 줄어든다는 애교 섞인 푸념도 곧잘 듣는다. 그런데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기념일도 하나 있다. 5월 11일, 입양의 날이다.
신화의 세계에는 입양아 출신의 영웅이 많다. 그리스 신화의 주신 제우스부터 입양아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도 그렇고, 영웅신 헤라클레스,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도 그렇다. 최초로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했다는 정복왕 사르곤과 히브리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팔레스타인으로 인도한 모세는 어머니의 손으로 강물에 던져 졌다가 입양된 집에서 자라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 역사의 인물들도 입양의 서러움을 딛고 역사에 발자국을 남긴 예가 셀 수 없다. 로마의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는 변변치 않은 집안 출신이었으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입양된 다음 끝없는 노력 끝에 로마의 제1인자가 될 수 있었다. 네르바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는 다섯 황제는 이른바 ‘5현제’로서 로마의 ‘황금시대’를 일군 황제들로 찬사를 듣는데, 모두 전임 황제들에게 입양되어 그 자리에 올랐다. 일본 전국시대를 마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입양아였으며, 미국의 제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와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영부인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엘리노어 루스벨트도 그랬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도 축복받지 못한 결합으로 태어나서 입양아의 길을 걸었다. 또 문인으로는 <전쟁과 평화>의 레프 톨스토이, <검은 고양이>의 에드거 앨런 포가 있으며 음악인에는 비틀스의 존 레논, 전설적인 트럼펫 연주자인 루이스 암스트롱이 있다. 너무도 유명한 마릴린 먼로 역시 입양아로 자라났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역시 적지 않다. 미천한 출신으로 입양 뒤에 노력을 거듭해 명재상이 된 반석평, 중농주의 실학자 서유구, 갑신정변의 주역이던 김옥균과 서재필, 기업가이자 정치인이던 인촌 김성수 등이 있고,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정조는 숙부뻘인 효장세자에게, 고종은 효명세자에게 입적되는 등 ‘형식상 입양아’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서구의 입양과 다른 점은 대부분 친척 중에서 양자를 들였다는 점이다. 서구에서는 일종의 동맹 관계를 맺기 위한 입양이나 똑똑해 보이는 소년을 후계자로 삼으려던 입양이 많았던 반면, 우리나라의 입양은 대를 잇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 따라서 한 가문에서 아들을 얻지 못하는 집이 있으면 아들 많은 쪽에서 입양을 해와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이는 입양아 본인의 행복보다는 양부모나 가문의 이익을 위한 입양이 아닐 수 없다. 심하게 말하면 사람을 그 자체로서 소중하게 보기보다 ‘투자 대상’ 또는 ‘도구’로 본 것이다. 친부모를 잃은 설움도 크거늘 자신이 물건처럼 팔려왔다는 사실을 평생 잊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어땠을까. 입양아 출신의 위인들은 그 한을 풀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제는 입양되는 아이 스스로의 행복과 인권을 위한 입양이 상식이 되어간다. 혈통주의를 고수하던 우리나라도 1998년에 친양자 제도를 신설, 입양된 아이가 친부의 성 대신 양부의 성을 쓸 수 있게 되면서 부모와 자식의 성이 달라 따돌림을 받을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 걸림돌은 있다. 동성 커플의 입양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사랑으로 맺어지고 가슴으로 낳으려는 동성 커플의 염원이 뜨겁지만 법과 사회적 인식은 아직 차갑기만 한 경우가 많다.
분명 피를 나눈 부모 자식이면서도 차마 못 할 일을 벌이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제 가정이란 당연히 사랑이 깃드는 곳이 아니라, 사랑이 깃들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 사랑의 노력을 낡은 관습이나 무관심으로 헛되게 만드는 일은 없어져야 하겠다. 

함규진
역사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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