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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개교 70주년 기념축시] 여기는
  • 동길산(경제학 80, 졸업) 시인
  • 승인 2016.05.09 23:13
  • 호수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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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10년이 일곱 번 바뀌기 전 여기는
새벽이 가장 먼저 열리던 개벽의 땅.
미리내 계곡물을 정한수 삼아
어둠을 걷어 내고 개명하게 해 주십사
잠들기 직전에도 빌고
잠 깬 직후에도 빌었으니
하늘의 신 땅의 신 사람의 신이 감복해 여기를
가장 먼저 깨치는 지혜의 땅으로 점지하셨다.
깨치고 또 깨쳐
해마다 새로이 태어나는 신생의 땅으로 점지하셨다.

여기는 반도의 동쪽, 해 뜨는 동쪽.
누구였을까 해를 찾아서 발바닥 부르트도록 나아간 이.
마침내 신이 점지한 땅에 이르러 첫 삽을 꽂은 이.
황토 대신 햇살이 푹푹 파였네.
황토 대신 햇살로 집을 짓고 지붕을 이었네.
집도 사람도 햇살에 감싸여 멀리서 봐도 눈부셨네.
가까이서 멀리서 삽질을 구경하던 이
비로소 알았네 여기가 신이 점지한 땅임을.
가까이서 멀리서 삽질을 구경하던 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삽 들고 모여들었네.
다 같이 땅 파며 다 같이 햇살에 감싸였네 다 같이 눈부셨네.

다 같이 눈부셨네.
같은 문으로 들어와 같은 문으로 나간 이들
햇살이 습기를 말리듯
낮은 곳 구석진 곳
낮고 구석진 세상 곳곳의 습기를 말리며
우러러봐야 보이는 해가 되었거나 되어 가네.
미명을 박차고 불끈 떠올라
방향 잃은 이, 입술 깨문 이, 넘어진 이
동쪽으로 오라 동쪽으로 오라 길 비추네.
강에 비친 달이 천이고 만이듯
세상을 비추는 천의 해여! 만의 해여!
들어온 문도 같은 문
나간 문도 같은 문.
문기둥에 손대어 보면 여전히 따뜻하네.
햇살에 감싸여 여전히 눈부시네.

10년이 일곱 번 바뀐 지금도 여기는
새벽이 가장 먼저 열리는 개벽의 땅.
나무의 잎은 새벽 첫 햇살에 반짝이느니
위에 있는 잎은 아래 있는 잎에게 햇살 나누고
바깥에 있는 잎은 안에 있는 잎에게 햇살 나누어
저 많고 많은 잎 함께 반짝인다.
저 많고 많은 잎 함께 단풍든다.
보아라!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쪼개어 함께 나누는 새벽벌판.
10년이 일곱 번 바뀐 지금도 여기는
함께 반짝이고 함께 단풍드는 대동의 벌판.

10년이 다시 일곱 번 바뀔 후에도 여기는
함께 반짝이고 함께 단풍들 공생의 땅 상생의 땅.
가장 높이 날아서 가장 멀리 본 독수리가
제 집이라고 찾아오는 여기는
10년이 다시 일곱 번 바뀔 후에도 여기는
진리 자유 봉사
진리와 자유와 봉사를 네모반듯하게 쌓아올린 상아탑.
어둠 물리치고 가장 먼저 새벽을 여는
진리와 자유와 봉사의 상아탑.

 

 

동길산 (경제학 80, 졸업) 시인

동길산 시인은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다섯 권과 산문집 네 권을 펴냈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추모하는 304행 장시 <세월호>를 썼다.

국문학과 故고현철(국어국문학) 교수와 고교 문예부·대학 동기다.

 
 

 

동길산(경제학 80, 졸업) 시인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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