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을 받는 장애인들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지 8년이 지났다. 1998년 제정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또한 최근까지 개정을 거쳐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한 설비 이용과 정보 접근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장애인들이 문화시설을 이용하기엔 아직도 그 벽이 높다.

장애인의 문화향유권에 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문화예술시설 환경은 이를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문화도시 부산’은 없다?

장애인들은 먼저 문화시설 이용 및 접근이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일반적인 보행 통로와 건물 출입 매개시설에는 장애인이 혼자서 접근하기에 무리가 있는 것이다. 시각장애인 김현동(금정구, 49) 씨는 “시각장애인은 점자블록만 있다면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지만, 문화시설에는 이런 설비가 미흡하다”고 전했다. 시각장애인 점자블록은 방향을 유도하거나 위험 등을 알려주는 편의시설로, 시각장애인에게 보행코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문화시설에 출입하더라도 정작 시설을 이용하는 데에 불편함이 따른다. 시설 내부의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녹색당 부산시당은 ‘부산시 내 장애인전용좌석 설치영화관 및 공연자의 명단과 전용좌석 수 현황’의 정보공개청구내용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부산시내 전체 영화관 및 공연장의 전체좌석수의 약 1.5%만이 장애인전용좌석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많은 소극장과 아트홀에는 장애인전용좌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부산녹색당 윤미랑 사무처장은 “부산에 있는 장애인 인구수와 좌석수의 차이가 크다”며 “절반도 채워지지 않았을 뿐더러 공연장 등의 상황은 전혀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보 접근을 위한 편의시설 및 환경은 더 열악했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이나 영상물 자막 등 편의를 갖춘 문화 콘텐츠는 극히 적기 때문이다. 금정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영숙 소장은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문화시설,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정하는 것이 아닌 정해져 있는 것”이라며 “비장애인이 △시간 △장소 △콘텐츠 등의 사항을 원하는대로 선택하는 것과 시작부터 다르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부산광역시청에서 열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행 제고를 위한 방안’ 토론회에서도 정보 접근을 위한 편의 제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부산농아인협회가 조사한 부산 대표 문화시설 5곳이 갖춘 청각장애인 편의 제공이 미흡했던 것이다. 부산농아인협회 박영옥 수화정책팀장은 “모든 문화시설에 수화통역사가 상주하기는 어렵다”며 “그러나 영상물 자막, 스마트폰을 이용한 해설 서비스를 통해 이를 대체할 수 있는데도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관련법의 규정상 장애인화장실의 경우 남녀화장실이 따로 설치되어야 한다. 하지만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남녀가 통합된 장애인전용 화장실만이 설비돼있다

미흡한 법규정과 인식 속 사라진 장애인 문화향유권

장차법 등의 법에서 문화・예술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이 있음에도, 문화시설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설비가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건축된 문화시설의 경우 내부 구조를 바꾸기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부산시립미술관 시설관리팀 박영호 주무관은 “장애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한 당시 지어진 건물은 현행법 규정에 맞지 않을 수 있다”며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려 노력하지만 한계는 존재한다”고 전했다. 법의 내용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는 “현재 장차법의 적용 범위는 아직 제한적이다”라며 “재발방지책으로 권고하는 정도의 벌칙 조항 적용도 미흡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관계자들은 장애인들의 문화향유권 권리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역시 부족하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시설을 이용하는 주체라는 인식이 부족해, 편의 시설에 관한 제대로된 고려가 이뤄지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지부 최수희 교육협력팀장은 ”문화시설이 장애편의시설을 악의적으로 미설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물이 미흡한 것도 이러한 인식 부족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한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유진아 연구원은 “장애인들도 자신의 권리를 보장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한 편”이라며 “절차를 거쳐 자신의 권리 구제를 하는 경우가 없다 보니, 문화시설에서도 편의 시설을 제공하는 비율이 낮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당연한 문화 향유를 위하여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문화 향유를 할 수 있으려면 어떤 점이 보완되어야 할까. 전문가들은 관련법의 미흡한 부분이 고쳐져야 한다고 전했다. 송시섭(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해당 법률과 관련 시행령에서 구체적인 이행지침들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위반 시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의 수위가 낮은데, 보다 강력한 제재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의 강제적 이행보다는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고려하는 시민 의식이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장애인계의 중론이다. 해운대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정미 소장은 “문화시설이 계획단계에서부터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동등하게 고려면 추후 보강부담이나 갈등 조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한 이영숙 소장은 “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편의인 배리어프리를 넘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셜디자인에 대해 고민할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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