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개발됐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을 이용해 유전자 편집기술의 혁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이 가진 높은 잠재력으로 말미암은 생명윤리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박테리아의 면역체계에서
힌트를 얻다
 
  크리스퍼란 박테리아의 유전체에서 특이하게 반복되는 염기서열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바이러스 감염에 맞서 박테리아가 자신을 보호하는 데 쓰는 면역체계다. 크리스퍼는 이전에 침입했던 바이러스의 DNA 일부를 유전체 안에 쌓아두고, 바이러스 침입 시 저장해둔 DNA 정보를 꺼내 바이러스 DNA를 찾아 자르는 역할을 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이처럼 특정 염기서열을 찾아내는 크리스퍼 RNA와 찾은 DNA를 절단하는 효소 Cas9가 짝을 이뤄서 행동하는 과정에 착안하여 만들어졌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잘라내고 싶은 특정한 DNA에만 결합하는 유전물질인 RNA와, 특정한 DNA를 잘라낼 수 있는 효소를 결합한 형태로 구성된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기술은 특정 DNA에 지퍼처럼 딱 들어맞을 가이드 RNA를 합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합성된 가이드 RNA와 DNA 절단 효소 단백질을 결합하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탄생하는 것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몇 가지 단계를 거쳐 작동한다. 우선 DNA를 절단하는 Cas9 효소가 DNA에 달라붙으면 이중나선이 풀리고 그중 한 가닥이 가이드 RNA에 결합하게 된다. Cas9 효소는 RNA가 끼어들어 간 곳의 DNA를 양쪽 가닥 모두 잘라내는 역할을 한다. 잘린 DNA 사이로 새로 만든 DNA 조각이 들어가 새로운 유전자 조합이 생성되는 것으로 유전자 편집이 끝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연 
유전공학의 새로운 가능성
 
  유전공학의 혁명을 일으킨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1·2세대 유전자 가위와 다른 장점을 가진다. 이전 세대의 유전자 가위를 제작하려면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다. 김철민(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백질의 서열을 바꾸기 위해서는 DNA의 서열을 바꿔야 한다”며 “DNA의 서열 정보가 RNA로 전해져 다시 단백질을 바꾸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가이드 RNA가 단백질의 역할을 대체한다. 이 가이드 RNA는 단백질보다 훨씬 작아 만들기 쉽고, 덕분에 유전자 가위의 제작도 간편해졌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기술은 유전자 연구의 새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유전자변형생물(이하 GMO)의 생산방식이 변할 수 있다. 현재 GMO의 대부분은 식물 세균인 아그로박테리움을 활용하여 외부 유전자를 식물에 인위적으로 삽입하는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수백, 수천 개가 넘는 외부 유전자가 삽입되어 안전성 문제가 우려됐다. 정태준(생명과학) 교수는 “이전의 GMO는 유전자를 무작위로 넣는 방식을 이용했기 때문에 위험성이 있었다”며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면 원하는 유전자만을 바꿀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기술은 인간의 질병치료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여 에이즈와 암을 정복하는 체외치료방법도 등장했다. 환자의 몸에서 면역세포를 채취한 뒤 이 면역세포의 유전자를 수정하고 다시 주사하는 방법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인간 유전자 편집,
생명윤리 문제부터 해결해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동시에 생명윤리 문제적 측면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 편집에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인간 유전자 편집에 찬성하는 측은 이것이 가져올 인류의 긍정적인 미래를 강조한다. 인간의 배아 유전체를 편집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기초과학분야의 발전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생존이 불가능한 배아는 체외수정 과정에서 폐기되는 세포이므로, 세포를 이용하는 연구를 제제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 2월, 영국 배아관리국(HFEA)이 유산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밝히기 위한 목적으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인간배아 유전자편집 연구를 최초로 허가하기도 했다.
  반면, 이와 같은 인간의 유전체 편집 연구를 제한하거나 중지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학 전문 주간지 <네이처>에서 에드워드 란피어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윤리적?기술적인 이유로 생식세포 유전체 편집 연구를 반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안정성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편집 오류나 돌연변이가 발생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 유전자 편집이 가지는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논란이 심화되자 작년 12월 미국 과학 기술 의료 학술원에서 <국제 인간 유전자 편집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20여 개 국이 참가한 이 날 회의에서 인간 유전자 편집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동시에 유전자 편집의 위험성을 고려해야 하며, 따라서 체세포의 유전자 편집연구는 계속하되 생식세포의 유전자 편집연구는 보류되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식세포의 유전자 편집 연구에 대해서는 유전자 편집 기술의 안정성이 증명되었을 때 다시 논의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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