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라는 5월, 그 첫째 날인 5월 1일. 필자는 이날을 가리켜 ‘근로자의 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노동절, 혹은 메이데이라고 부르는 쪽을 선호한다. ‘근로자’라는 단어 속에 내포된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그렇게 성실하게 일한 사람들에게 하루의 휴식을 허락한다는 인식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권력에 의해 조작되고 만들어진 이미지다. 역사가 말하는 노동절은 그런 날이 아니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는 8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1일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경찰의 발포로 노동자들이 사망했고 격분한 노동자들은 5월 4일 헤이마켓 광장에서 이를 규탄하는 집회를 다시 열었다. 한데 누군가 사제폭탄을 투척했다. 혼란상황에서 경찰이 발포했고 7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훗날 ‘헤이마켓 사건’이라 불리게 되는 참사였다. 공권력은 참사의 책임을 뒤집어씌울 희생양을 찾았고 기소된 노조원 8명 중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문제는 이들이 폭탄테러에 가담했다는 증거가 전무했다는 것이다. 당시 일리노이 주지사였던 존 알트겔드의 덕에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지만 이미 5명의 사형이 집행된 후였다.
이 헤이마켓 사건을 기리기 위해 지정된 기념일이 노동절이다. 1889년 제2인터내셔널(국제사회주의자회의) 창립대회에서 5월 1일을 노동절로 정한 것이다. 이때의 노동절 결의는 매우 극적인데 ‘기계를 멈추자,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투쟁을 조직하자,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노동자의 권리쟁취를 위해 동맹파업을 하자’라고 했다. 그러니 노동절은 근면하게 일해 온 자들이 하루의 휴식을 허락받은 날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하기를 거부한, 불성실한 노동자들을 기념하는 날이라 하겠다. 한데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는 여기에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고 근무의욕을 높이기 위한 날’이라며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체제에 저항하는 노동자보단 조국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산업의 역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4월 17일이던 것을 노동계의 끈질긴 요구 끝에 1994년에야 5월 1일로 고칠 수 있었다. 노동절을 제 날에 기념하는 것조차 싸워서 얻어내야 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예년처럼 대규모의 노동절 집회를 예고했다. 주요 요구사항으로는 둘 다 ‘노동개악 저지’를 내걸었다. 경찰은 집회는 보장하되 불법행위는 엄벌하겠다는 익숙한 입장을 내놨다. 130여 년 전에 비해 노동절에 집회하다 총 맞을 걱정 없을 정도로 발전된 사회라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는다. 총 맞을 걱정이 사라진 것이 발전의 결과인가, 아니면 총을 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인가. 민주노총은 입이 닳도록 총파업을 부르짖지만 실제로 세상이 멈춘 적은 없다. 한국노총은 노사정 대타협에 발을 담갔다가 노동개악 반대로 선회했는데, 정작 일부 간부는 반(反)노동정당이라던 새누리당에 공천 신청을 냈다. 이 상황에서 노동절 집회가 그저 요식행위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너무 과한 걸까. 과거 헤이마켓 광장의 노동자들은 끝내 1일 8시간 노동을 쟁취해냈다. 그리고 126번째 노동절, 과연 한국에서 하루 8시간 이하로 노동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쟁취해냈나. 그리고 무엇을 쟁취해야 하는가. 

김민관 대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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