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모두들 ‘민심이 천심이니, 민심이 참으로 무섭다느니, 정말 절묘한 민심의 결과라니’라고 떠들어 대고 있다. 선거 전날까지 밤낮으로 들었던 ‘박심’이라는 소리가 쑥 들어간 반면 새로운 기적의 ‘심’이 등장한 것이다. 소위 보수는 물론 진보라고 하는 언론들도 똑같은 소리를 해대고 있다. ‘박심이 민심을 몰랐다느니, 민심이 박심을 버렸다느니’ 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모두들 비슷한 소리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박심이라는 것에 대한 심판이라는 것이다. 선거 전날까지 그렇게 대단했던 박심이라는 것을 하루 만에 심판하기 위해 수천만 명이 수천억의 돈을 써가며 그 야단을 부린 것일까? 그래야 박심이라는 것이 꺾일 만큼 대단한 것일까? 그것을 꺾을 민심이니 천심이니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엄청난 짓을 해야 하는 것일까? 선거라는 것이 고작 그런 의미의 것일까? 그러나 민심이니 천심이니 하는 소리는 선거 다음 날이면 으레 들었던 말이 아닐까? 그리고 그 며칠이 지나면 으레 사라지고 새로운 심이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도대체 민심이니 천심이니 하는 말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니 정체를 물어볼 만큼 실체가 있는 말일까? 어제까지 박심이라는 것이 세상을 흔들었는데 그것을 물리친 새로운 심은 도대체 누구의 마음이란 것일까? 몇천만 명이 하나의 마음을 가졌다는 식의 집단주의적 상상력의 근거는 무엇일까?
선거 다음 날 외국인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선거결과를 묻는 질문에 민심이니 천심이니 하고 설명하니 전혀 이해를 못 했다. 외국인 친구는 자꾸만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무엇이었느냐, 그 이슈에 대한 각 당 정책의 차이가 무엇이고, ‘국민들의 반응은 어떠했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명색이 대학교수라고 하는 내가, 전공분야도 사회과학 쪽이라는 내가 모르는데 일반 국민이 그런 걸 알 리 없다고 하면서 한국 정치에는 그런 정책적 이슈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은 대단히 정치적이라고들 한다. 언제 어디에서나 정치가 화제라고도 한다. 외국에서는 일상생활, 특히 식사자리나 술자리에서는 금기사항인 정치 담론이 한국에서는 언제 어디에서나 최고의 화젯거리이다. 택시를 타도 운전수가 정치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지하철에서도 사람들이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벌이는 이야기판의 화제가 정치이다. 그러나 그 경우 정치라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가? 이번 선거 이전에 대통령이 계속 말한 것은 소위 배신의 심판이었고 국민들도 그 배신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다. 이번 총선에서 253개 지역구의 후보자들이 주민들에게 나누어준 명함에는 하나같이 누구와 일했고 누구를 보좌했고 어떤 학교를 나와서 어떤 지위까지 올랐다는 것밖에 없었다. 정책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설명도 없었다.
하루 종일 정치토크라는 것을 하는 소위 종편이라는 방송은 그런 한국인의 비정상적인 정치 열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자 그것을 더욱 부추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에 하루 종일 나와서 떠들고 있는 소위 정치평론가들이란 각 당의 정책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 판도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등의 예언을 하지만 대부분 맞지 않았다. 결국, 그 예언이란 그 종편의 정치적 편향을 교묘하게 합리화하는 말장난일 뿐이다. 선거가 끝나고 그들의 예언이 모두들 틀렸는데도 다시금 민심이니 천심이니 하면서 말장난을 한다. 한국에서 정당이란 무엇일까? 정치에 대한 주장이나 정책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만든 단체라는 정당이 한국에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정당 비슷한 말에 도당이라는 것이 있다. 그냥 무리, 그것도 나쁜 자들의 무리라는 것이다. 사전에 보면 도당 설명에 괴뢰도당이라는 말이 나온다. 북한을 지칭하는 말인 것 같은데 그런 도당은 박심이니 김심이니 기타 각종 ‘심’이니 하는 말만을 섬기는 경우에도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또 어떤 심들이 등장할까? 그런 심들에 의해 4년마다 희비가 엇갈리다가 다 잊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정치일까? 

박홍규
영남대 교양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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