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국제결혼중개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주변의 여성’들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국제결혼의 ‘인신매매적 형태’를 개선하는 것이 목표인, 어설픈 국제결혼중개업 창업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달 베트남을 방문해 식사하고 있던 차,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있었던 두 남녀의 목소리가 무척 크게 들렸다. 한 백인 남성은 큰 목소리로, “나랑 결혼할래? 나와 결혼하면 이 돈을 다 줄 수 있다”며 돈뭉치를 꺼내서 흔들고 있었다. 이윽고, 맞은편에 있던 베트남 여성이 나지막하게 거절했고, 남성은 언성을 높였다. 내 상식으로는 그 여성이 물이라도 끼얹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야 했지만, 묵묵히 앉아있었다. 귀국한 뒤에도 이 여성에 대한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필자가 국제결혼중개업 사업 계획을 세우면서 마주한 가장 큰 편견은 여성들이 돈 때문에 결혼한다는 인식이었다. 실제로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있는 여성들을 만났을 때,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지급했다는 돈마저 여성들의 수중에 들어오지 않았거나, 경제적 여건이 결혼의 주요 목적이 아닌 예도 있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여성들에게 이러한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결혼 후에도 이주 여성 대부분은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일을 찾아야 했다. 이들이 한국에서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녹록지 않았다.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저임금과 고강도의 일자리를 전전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결혼이주여성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주민으로서 겪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 외에 한국 사회 내에서 여성의 열악한 위치였다.
중국 출신의 한 여성은 결혼한 뒤, 부모님의 취업 비자를 발급받았다. 가족 전체가 한국으로 이주했다. 중국에서는 육체노동을 하는 여성은 50세 이상이 되면 은퇴를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일용직이나 식당 등에서 일할 수 있고, 이 여성의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 여성은 부모님께 ‘몸이 고달픈’ 일을 소개하면서 느꼈던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는 우리나라에 보편적 복지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는 것과 ‘열악한 일자리’만이 넘쳐난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이주는 경제, 정치적 요구와 목적으로 여러 세기 동안 이뤄져 왔다. 국제이주기구(IOM)는 21세기 이주의 특징 중 하나를 ‘이주의 여성화’로 꼽았다. 여성의 노동력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이를 사회학자 혹쉴드는 글로벌 돌봄 연쇄(global care chain)라 개념화했다. 서구를 필두로 한 국가에서 생산 활동과 양육활동을 병행하기 힘들어지면서 돌봄 노동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고, 이에 개발도상국 출신의 이주여성들이 ‘선진국’에 유입되는 글로벌 연쇄작용이 발생한다.
결혼이주여성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출신국으로,피부색으로, 여성으로 차별당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라서 억울하다. ‘인터내셔널리즘(internationalism)에서 인터를 지워버리기는 쉬웠고, 내셔널리즘만이 남았다’는 고종석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국적과 민족주의의 틀에 갇혀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여성과 노동에 관한 정책을 개선해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선거의 바람 속에서 ‘약자 속의 약자’가 또 다시 소외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