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인류의 역사를 엮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한 이래, 농경 생활에 달력은 필수적이었다. 농사의 적령기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달력은 생존과 직결됐고 사회적 체계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달력의 존재는 국가의 형성과 문명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달력이 권력을 상징하다
지금이야 달력이 구하기 쉬운 것이지만 고대에는 소수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권력이었다. 달력은 곧 생존을 좌우하고 체계를 세우는 문제였고, 달력 없이는 국가권력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한국천문연구원 안영숙 연구원은 “국가란 일종의 사회적 계약”이라며 “달력이 없으면 가장 중요한 ‘언제’라는 개념도 없기 때문에 국가가 성립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달력은 고대에서 중세까지 통치자의 덕목과 통치권력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했다.
예컨대 조선시대는 달력이 권력의 상징이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사대의 명분을 중시했던 조선은 중국에서 달력을 받아 사용했다. 조선만의 역법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 했다. 안영숙 연구원은 “하늘의 뜻을 읽는 것은 중국 황제인 ‘천자’만의 권력이기 때문에 조선은 역법을 만드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됐다”고 말했다. 실제 세종대왕은 조선의 실정에 맞게 한양을 중심으로 한 역법을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이는 중국 명나라의 제재를 받았다. 세종은 중국 사신이 올 때 외교문제로 번질 것을 우려해 천문대를 철거하기도 했다. 그런 제재 속에서도 조선은 자체적으로 ‘칠정산 내·외편’(이하 칠정산)이라는 역법을 만들었지만 이를 ‘역법’이라고 칭할 수는 없었다. 실제 칠정산은 ‘일곱 개의 천체 운행에 관한 계산’이라는 의미만 담고 있다.
그럼에도 칠정산은 조선의 실정에 맞는 역법으로서 우리의 자주성을 드높였다고 평가받는다. 이전에는 중국에서 달력을 받아와 배포하던 것을 우리 스스로 배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동짓날 20일 전에 달력을 배포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도착하면 이미 새해가 지난 후였다. 하지만 칠정산 덕분에 중국에게서 받은 달력이 조선에 도착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현재도 달력은 한국천문연구원이 정한 역법을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제작하도록 되어있다. 한국천문연구원 민병희 연구원은 “대한민국 헌법에 달력은 국가에서 정하도록 명시돼 있다”며 “이것이 다른 국가표준보다 가장 처음 명시된 것을 보면 달력의 편찬이 국가의 위상과 직결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까지 진화를 계속하는 달력
이처럼 달력의 중요성이 컸기에 고대에서 현대까지 달력은 계속 진화해왔다. 최초의 달력으로 보이는 ‘이상고의 뼈’는 기원전 2만년 전부터 달력이 존재했음을 알려준다. ‘이상고의 뼈’는 동물의 뼈에 홈을 새겨 6개월간의 음력을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초기의 달력은 천체에서 가장 관찰하기 쉬운 달에 기반한 ‘태음력’으로 시작됐다. 민병희 연구원은 “인지적인 측면에서 달은 매일 모습을 바꾸고 그 주기가 태양보다 짧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달력은 우리가 흔히 ‘음력’이라고 부르는 태양태음력으로 발전했다. 태양태음력은 달의 운행뿐만 아니라 태양의 운행까지 함께 계산한 역법을 의미한다. 동양에서는 태양의 각도 15도에 따라 24절기를 나누었다. 이러한 태양태음력은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태양력으로 대체됐다.
그 과정에서 시간에 대한 개념은 점점 세분화됐다. 고대에는 해가 지고 뜨는 원초적인 개념만 있었던 반면, 현대에는 1초까지 시간의 개념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는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을 줬다. 예컨대 조선시대에는 시간의 최소 단위가 1각(15분)이어서 약속을 해도 1각안에 오면 늦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반면 이제는 사람의 인지가 확장됨에 따라 1분만 늦어도 늦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이렇게 세분화된 시간의 개념은 ‘윤초’의 도입까지 이끌어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지구의 자전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했다. 따라서 지구의 자전 시간을 대체해 절대적인 1초의 표준을 확립할 필요성이 대두됐고, 세슘 원자의 반감기를 기준으로 절대 시간을 정하게 됐다. 그 결과 절대 시간과 지구 자전에 따른 현실 시간의 괴리가 발생했고 이를 메우기 위해 윤초라는 개념이 도입됐다. 윤초는 1972년 도입 이후 26회 적용됐으며 최근에는 2015년 6월 30일 23시 59분 59초에 적용됐다.

 원자시계의 등장은 지구 자전 시간을 대신할 절대 시간의 도입을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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