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8일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유예기간을 거쳐 2017~18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은 연명의료를 중단할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호스피스의 활성화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환영 받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연명의료 중단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과정을 살펴보고 법 제정이 가지는 의미와 한계를 살펴봤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집이 아닌 곳에서 죽음에 이르는 ‘객사(客死)’를 부정적으로 보아왔다. 따라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퇴원시켜 집에서 임종을 맞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한국 의료계에서 관행처럼 이어져왔다. 이는 경제적으로 곤궁해 의료비를 부담하기 힘든 경우에도 적용됐다. 하지만 1997년 이 같은 관습에 제동을 거는 사건이 발생했다. ‘보라매 병원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연명의료를 둘러싼 두 번의 판결

IMF 사태의 검은 그림자가 온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던 1997년 12월 4일, 58세 남성 한명이 보래매 병원 중환자실로 호송됐다. 머리를 크게 다친 환자의 상태는 심각했고 의료진은 가족과의 연락이 닿지 않았음에도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환자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인공호흡기를 착용했다. 이때 그의 배우자가 병원에 도착했다. 환자의 배우자는 ‘병원비를 부담할 수도 없으니 퇴원을 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의사들은 지금 퇴원하면 환자의 상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며 반대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병원 측은 환자의 상태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고 환자를 퇴원시켰다. 집으로 돌아간 환자는 간이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지 5분 만에 사망했다.
이는 의료계의 관행에 따른 일이었지만 배우자가 장례식 지원금을 받을 목적으로 남편을 변사로 신고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병원이 환자를 퇴원시켰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의료진을 기소했다. 환자가 사망할 것을 알고도 퇴원시킨 행위가 살인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7년의 법정공방 끝에 의료진은 살인방조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한국 의료계에 큰 충격을 줬다. 환자에 대한 의료행위를 중단했다가는 살인에 준하는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퍼진 것이다.
보라매 병원 사건 이후 환자에 대한 의료행위는 일단 시작된 이상 끝을 몰랐다. 의사들은 환자의 회생 가능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의료행위를 계속했다. 2008년 ‘김 할머니 사건’은 이 같은 의료계에 대한 반발이었다. 김 할머니는 과다출혈로 인한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고 가족들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시켜 달라며 소송을 걸었다. 2009년 5월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인공호흡기는 제거됐고 김 할머니는 201일 만에 임종을 맞이했다.

마침내 법적 근거를 마련하다

김 할머니 사건을 거치면서 연명의료 중단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환자나 가족들이 연명의료 중단을 원할 때마다 소송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도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법률의 제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종교계를 중심으로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가 이어졌다. 18대 국회는 끝내 법률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19대 국회로 바통을 넘겼다.
19대 국회에서는 법안 처리에 탄력이 붙었다. 2013년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무의미한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을 확정해 보건복지부에 입법화를 권고했다. 정부·의료계·법조계·종교계 등이 논의 끝에 연명의료 중단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에 합의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안>(이하 연명의료법안)을 발의했고, 연명의료법안을 중심으로 유관 법안들이 통합됐다. 통합된 연명의료법안은 작년 1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과정에서 제동이 걸렸다. 한의사 참여 여부가 문제였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한의사에게 연명의료 중단결정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반발했고 법안 심사는 보류됐다. 심사 보류를 놓고 의사와 한의사들 사이에서 로비 의혹과 해명이 계속되자 보건복지부는 대한한의사협회와 회의를 갖고 한의사를 포함시키지 않을 것을 합의했다. 마지막 관문을 넘어서 연명의료법안은 지난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보라매 병원 사건으로부터 약 19년, 김 할머니 사건 대법원 판결로부터 약 7년 만이었다.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우려 여전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하 연명의료법)은 연명의료 중단의 법적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한 상황이다.
연명의료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만 중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종과정이란 연명의료법 2조에 따라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로 정의된다.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담당의사만이 아니라 해당 분야 전문의가 함께 한다.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그럼에도 판단이 쉽지는 않다. 특히 말기 판정 이후 생존기간의 개인차가 큰 질환들이 문제다. 국민본부 김명자 공동대표는 <미래한국>에 기고한 글에서 “암 환자의 경우에는 쟁점이 별로 없다”면서도 “다른 질환(만성간경변, 폐쇄성 호흡기 질환자 등)은 판정이 간단치 않다는 지적이 초기 법안 초안 작성 때부터 대두됐다”고 전했다.
일단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는 것으로 판정되면 환자의 의중이 가장 중요해진다. 환자의 의사는 환자가 사전에 등록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치료과정에서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에 따라 판단한다. 문제는 사전에 등록한 연명의료의향서가 없으며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기도 힘든 상황에 발생한다. 환자가 아예 의식이 없거나,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힘든 발달장애인인 경우가 그렇다. 이 때 연명의료법은 ‘가족 중 2인 이상이 환자가 평소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할 경우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더욱이 환자의 의사를 확인 할 수 없을 때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1월 13일 성명을 내고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을 환자의 의사로 무조건 간주해서는 안 된다”며 “일기, 유언장 등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는 절차를 추가해 환자가족들이 경제적 이유로 연명의료 중단을 남용하는 사례를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환자가족이 연명의료 중단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무연고자의 경우 연명의료법의 적용을 받기 힘들게 됐다. 연명의료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 심의를 통과하던 시점까지만 해도, 병원 윤리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환자 본인과 가족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환자의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조항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 조항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과정에서 삭제됐다. 병원 윤리위원회의 구성과 의결 요건이 불분명해 무연고자의 생명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문제는 조항이 보완·수정되지 않고 아예 사라졌다는 점이다. 국립중앙의료원 권용진 기획실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족이 없는 취약계층 환자의 연명의료를 지속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보완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호스피스 활성화도 갈 길 멀어

연명의료법이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내용은 호스피스의 활성화다. 호스피스는 임종을 앞둔 환자가 평안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고통과 불안을 덜어주는 일을 의미한다. 때문에 호스피스의 활성화는, 마지막까지 생명의 존엄성을 주장한 종교계의 강력한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이를 위해 연명의료법은 △호스피스 대상자를 비암성 환자까지 확장 △입원형 외에 자문형, 가정형 등 호스피스의 다양화 △호스피스 전문의료기관의 확대 등의 포함하고 있다. 호스피스 관련 법 조항을 연명의료 중단 제도보다 6개월 이른 2017년 8월부터 시행토록 한 것도 호스피스가 빠르게 정착하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그러나 호스피스의 정착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현재 전국적으로 60여 개의 호스피스 전문의료기관에 1,100여 개의 호스피스 병상이 존재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전체 병상의 0.17%에 불과한 수준이며 그나마도 절반 가까이 수도권에 몰려있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부산, 울산 같은 지역 대도시들도 호스피스 공급 부족 상태다. 따라서 정부는 지역을 중심으로 호스피스 의료기관을 확대해 이용률을 높일 계획이다. 하지만 당장 오는 4월 실시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시범사업’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작년에 참여의사를 밝혀 기대를 모았던 50여 개의 요양병원이 정부에서 요구하는 인력기준을 맞추기 어렵다며 참여포기를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박용우 회장은 <데일리메디>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은 간호인력 수급을 위해 전쟁을 치르고 간호사가 없어 병원을 폐쇄하는 마당”이라며 “요양병원이 간호사를 늘려 사업에 참여할 이유도 없고 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게다가 현재 시행되고 있는 ‘가정형 호스피스‧완화의료 건강보험수가 시범사업’도 전용차량 지원, 임종 가산 문제 등으로 현장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호스피스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보다 체계화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위해서는 빠른 전담조직 구성과 사업계획 확정을 통한 예산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동시에 호스피스의 질 향상을 위한 엄격한 관리도 요구되고 있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최윤선 이사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목표를 달성한 기관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대신 시설·인력·교육이수 등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기관에는 단호한 책임과 처벌이 따라야 질 향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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