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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글쓰기
  • 오선영 소설가
  • 승인 2016.03.26 22:50
  • 호수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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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이 되자 여기저기서 봄호 계간지들이 배달되어 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잡지 목차부터 살피던 나는 어느 작가의 이름 앞에서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소설을 쓸 수 없을 거라 여겼던 한 작가의 신작 소설이 게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 <작가와 사회> 봄호에 실린 정태규 소설가의 <갈증>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정태규 소설가를 처음 본 것은 2013년 봄이다. 어느 작가의 출판기념회 자리였는데, 당시 막 등단한 나는 어색한 표정을 한 채 맨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이런저런 인사와 축하 말들이 오가고 행사가 끝나갈 때쯤 검은 뿔테안경을 쓴 한 작가가 강단에 섰다. 특이한 점은 그가 양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있고 마이크를 다른 분이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술에 취한 것도 아니고, 마이크를 잡지 못할 정도로 약해 보이지도 않는데 왜 저렇게 인사를 하는지 의아스러웠다. 그 작가가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뒤풀이 장소에서야 알게 되었다. 2014년, 전 세계적으로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열렸을 때, 부산 소설가들도 중앙동 40계단에서 정태규 소설가를 위한 아이스버킷 행사를 하였다. 1년 만에 본 소설가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굉장히 어눌한 발음으로 간신히 의사 표현을 하였다. 그 후 작가가 치료를 위해 서울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나는 정태규 소설가를 볼 일이 없었다.
그런 그가 신작 소설을 발표한 것이다. 키보드를 치는 것은 물론이며, 제대로 된 생활조차 하기 어려울 작가가, 새 소설을 써서 문예지에 발표하다니! <갈증>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루게릭병 환자가 꾸는 여러 가지 꿈과 현재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는 침대 근처를 오가는 간호사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열심히 눈을 깜박였다. 그는 ALS(일명 루게릭병) 환자였으므로 팔을 들 수도 다리를 들 수도 없었다. 이제 막 구멍 뚫린 목으로 소리를 내는 건 더구나 불가능했다. 오직 눈을 깜박이는 것만이 그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작은 신호를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적인 표현과 문장들은 정태규 소설가가 지금, 현재 처해 있는 환경과 생각들을 지독할 정도로 세밀하게 형상화하고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간호사의 주의를 끌기 위해 눈을 깜박이는 것처럼, 정태규 소설가도 안구 마우스를 장착하고 눈을 깜박이면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모음 하나에 눈 한 번 깜박, 자음 하나에 눈 한 번 깜박.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이 눈동자를 움직여야 했을까. 소설을 향한 작가의 의지와 영감의 원천은 도대체 무엇일까.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대학의 인문, 예술 관련 학과들은 무자비하게 통폐합당하고 있다. 돈이 되지 못하는 것들은 열등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하여 가감 없이 폐기처분되고 있는 것이 정태규 소설가가 머물고 있는 병실 밖, 우리네 삶의 풍경이다. 일본에서는 인공지능이 쓴 SF소설이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했다고도 한다.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왔던 상상력과 창조력마저 대신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문학이, 소설이, 점점 쓸모없어지고 소설가가 한낱 인공지능보다 못한 존재로 추락해가는 시대에 그는 무슨 심정으로 소설 ‘따위나’ 쓰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정태규 소설가의 소설은 자전적인 내용이나 형식이 아니라 ‘쓰기 그 자체의 행위’에서 이미 숭고한 것이기도 하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면, 정태규 소설가의 모습이야말로 진정 소설가다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가장 극적인 순간에 만나는, 가장 소설가다운 소설 쓰기가 그의 문장 한 구절, 단어 하나에 아로새겨 있는 것이다. 루게릭병은 육신이 죽어가는 과정을 생생한 정신으로 감각하면서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기에 더욱 고통스러운 병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태규 소설가는 스스로를 무기력 속에 가두어 놓지 않았다. 그는 소설 제목과 같이, 여전히 소설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소설가가 아닌가.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오선영
소설가

 

오선영 소설가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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