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생활고로 생을 마감한 후 지난 2011년, 예술인들의 안정적인 작품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예술인 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또 다른 문제가 제기돼 재개정을 거쳤지만, 여전히 <예술인 복지법>에는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다.

  <예술인 복지법>(이하 복지법)은 지난 2009년 처음 논의됐지만, 법 체계와 제정 문제 등으로 통과되지 못했다. 지지부진했던 복지법 제정은 지난 2011년 1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생활고로 사망하면서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2011년 전병헌 의원이<예술인 복지 지원법안>을, 최종원 의원이 <예술인의 지위와 복지에 관한 법률>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들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심사와 수정을 거친 후 의결돼 공포됐다. 그렇게 공포된 법안이 현재 <예술인 복지법>으로,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 6월 두 명의 배우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문화예술계에 전해졌다. 그들이 오랜 무명 생활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지면서, 복지법의 허점이 또 다시 드러났고 두 번째 재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예술인소셜유니온 나도원 공동위원장은 “복지법은 죽음을 먹고 사는 법”이라며 “누군가 죽어야만 관심을 갖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밝혔다.
 
  예술인들의 연 평균 수입을 살펴보면, 절반이 넘는 예술인들이 연 500만원 이하의 수입을 얻고 있다. 2016년 1인 가구의 연 최저생계비가 약 78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일반적으로 회사가 보험료를 내주는 일반 근로자와 달리 예술인들의 경우 개인적으로 보험료를 납부한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건강보험을 제외하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가입하지 않는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

 
까다로운 기준·절차에
참여 낮은 예술활동증명
 
  복지법이 제정된 후 지난 2012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복지재단)이 설립됐다. 복지재단은 예술인 복지를 위해 △예술활동증명 △창작준비금 지원 △예술인 산재보험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인들은 복지재단이 진행하는 복지 사업의 혜택을 받기 위해 예술활동증명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술인 본인이 복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예술활동을 업으로 하는 자’에 해당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절차인 셈이다. 현재 부산 예술인들 중 이 같은 증명 과정을 거친 사람은 약 800명 정도다. 이는 부산시가 실시한 예술인 실태 표본 수가 2000명인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이 같은 수치가 나타난 이유는 다양했다. 먼저 예술인들의 현실을 배려하지 않은 기준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반 근로자라면 회사에 고용되어 일정시간 근무하는 형태가 있지만, 예술인은 그 형태가 다양해 기준 설정이 쉽지 않아 예술 활동, 소득 등의 기준으로 평가한다. 신진 예술인들은 이런 평가기준에 의해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법령체계에 최근 활동내역을 적기 어려운 만 70세 이상 원로 예술인에 관한 종신 유효 조항은 있지만, 신진 예술인에 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기문 문학평론가는 “신진 예술인들은 오랜 자신과의 싸움으로 작품을 준비하고 등단을 준비한다”며 “이를 고려해서 심사기준을 만들어 예비 예술인들의 창작 여건을 도와주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의 활동을 기준 삼는 것이 예술인들의 준비기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나도원 공동위원장은 “예술계에서 활동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내의 실적으로 기준을 평가해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예술인들은 증명절차가 복잡해 복지사업에 지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예술활동증명 자격이 되는지 먼저 확인해야할 뿐만 아니라, 자료를 스스로 준비해 형식에 맞춰 보내기까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연주 만화작가는 “신청 하려면 까다롭고, 신청한다고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지원 대상 선정에도 의문 제기돼
 
  복지재단은 예술인이 경제적인 요인 등으로 인해 예술창작활동을 중단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창작준비금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원사업에도 빈틈은 존재한다.
  해당 사업의 심의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창작준비금 지원 사업은 일정 정도의 소득 기준선 이하의 예술인을 지원하며, 고용보험 등의 사회안전망과 중복 지원되지 않도록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그러나 이 절차를 심의하는 데에는 2~3주라는 기간이 소요된다. 부산작가회의 김남영 사무국장은 “수혜 대상이 아닐지도 모르는 상황에 심의기간까지 길어져 예술인들이 선뜻 신청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김가진 직원은 “지원에 근거와 책임성이 전제되는 부분이 있어 확인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관련법의 개정을 추진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지원금의 선정 대상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지원 대상의 선정 기준은 △가구원 소득 최저생계비 185% 이하 △신청인이 등재된 건강보험료 최저생계비 200% 이하 △예술 활동실적 또는 예술 경력기간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기준에서 예술인 본인의 소득이 없어도, 가구원의 소득에 따라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김경화 설치미술가는 “다른 세대주의 건강보험에 같이 등재돼 혜택 못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지원이 절실한 경우가 아님에도 지원을 신청해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민아 시인은 “예술인의 개인 양심도 중요하다”며 “복지가 추구하는 정신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 정말 복지가 필요한 예술인에게 지원이 돌아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계속해서 드러나는 복지의 한계
 
  지역 문화재단과 복지재단의 연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서울특별시에 위치해, 지역 예술인들이 찾아가기도 어렵다. 또한 수도권에 비해 복지 관련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까지 지역의 문화재단에는 전문 상담인력이 배치되어 있지 않아, 지역 예술인들이 복지 사업의 혜택을 받기 더욱 어려웠다. 부두연극단 이성규 대표는 “서울특별시나 수도권에 비해 부산 같은 지역 예술인들은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이 체감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에 부산문화재단도 지역이기에 혜택에 소외당하거나 정보가 없어 지원할 수 없는 경우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부산문화재단 예술진흥팀 김명숙 직원은 “올해 예술인복지지원센터를 건립한 만큼, 지역 예술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도와주고 뒷받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술인들의 사회보장 확대를 위해 예술인 산재보험 제도가 실행되는 것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업무상 재해에 관한 보호를 보장하는 산재보험은 대부분의 예술인들에게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인들이 원고를 쓰는 데, 미술인들이 작품을 준비하는 데에 재해를 겪을 일이 드문 것이다. 또한 산재보험 가입 시 근로기준법이나 고용보험법 등 다른 노동법 권리를 행사할 때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 이민아 시인은 “가시적인 실적을 내는 데 사회보험 수치가 사용되는 것”이라며 “실적내기용 사업보다 복지 소외 현상이 없는 기반 사업을 진행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