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의 바둑 대결이 알파고의 4승 1패로 막을 내렸다. 세기의 대결이라 불리며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던 이번 승부는 종목이 ‘바둑’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바둑은 인간만의 영역으로 분류돼 왔다.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문에 연산뿐 아니라 직관과 추론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로, 세로 19줄인 바둑판에서 첫수를 둘 수 있는 곳은 361개로 바둑의 규칙을 고려하면 수를 둘 수 있는 곳은 250개, 게임당 평균 150수를 둘 때 경우의 수만 250150(약 10360)이나 된다.
물론 시간제한을 두지 않고 게임을 한다면 가능하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그중 승률이 가장 높은 수를 두면 되기 때문이다. 1997년 IBM의 ‘딥블루’가 체스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의 승부에서 쓴 방법이다. 딥블루는 30초당 약 2억 개의 수를 읽는 빠른 연산능력으로 세계 챔피언을 꺾었다.
알파고가 주목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파고는 딥블루와 달리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 않는다. 학습을 바탕으로 직접 추린 특정 경우의 수에 대해서만 시뮬레이션을 진행한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는 “알파고는 사람의 신경망을 본떠 만든 것으로 학습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대전을 앞두고 알파고의 학습은 크게 두 단계로 이뤄졌다. 우선 프로 바둑 기사 6단에서 9단 사이 이뤄진 실제 대국 16만 개의 기보를 데이터로 익혔다. 실제 프로 바둑 기사들이 게임을 이끌어가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16만 개는 사람이 1년에 1,000 기보씩 익힌다 해도 평생 학습할 수 없는 양이지만 알파고는 5주 만에 수행했다. 이후 승리 기법을 익히기 위해 자체 대결을 수만 번 진행했고 이를 통해 승리로 가는 최적의 선택법을 학습했다. 이 과정을 통해 무한대에 가까운 탐색의 폭을 좁힌 것이다. 이후 고속 시뮬레이션을 통해 각 수마다의 승률을 파악해 다음 수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를 바둑에서는 수 읽기라 하는데 알파고는 중앙처리장치(CPU) 1,202대와 그래픽연산처리장치(GPU) 176대, 구글 서버 1,000대를 사용해 30초당 약 10만 번을 수행한다. 사람과 비교하자면 바둑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이창호 9단은 약 100수 정도를 읽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리 뛰어난 바둑 기사도 컴퓨터의 고속 연산능력을 따라갈 수는 없기 때문에 사람은 직관과 추론을 이용해 다음 수를 결정한다.
이 때문에 알파고의 직관과 추론 능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학습을 통해 승리할 ‘확률’을 높인 것은 맞지만 인간의 사고 능력을 익혔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알파고의 승리를 인간과 기계의 대결로 가져가거나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영화 속 장면의 현실화를 우려하기에는 지나친 감이 있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학습을 통해 높인 확률 능력은 다양한 분야에 쓰일 수 있다. 일례로 여행을 계획할 때 장소만 지정하면 그동안 묵었던 숙소 기록이나 신용카드 기록, 방문했던 장소들의 특성을 분석해 숙소와 선호하는 관광지, 여행 동선까지 인공지능이 추천할 수 있다.
산업에도 쓸 수 있다. 기후변화 데이터나 판례 등 빅데이터를 분석해 기후를 예측하고 변론도 할 수 있다. 전문직으로 분류됐던 과학자, 법조인의 역할을 일정 부분 인공지능도 수행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실제 미국 LA타임스의 인공지능 로봇인 ‘퀘이크봇’은 지진 데이터를 분석해 자동으로 기사를 작성해 업로드까지 수행한다. 한 벤처기업이 개발한 인공지능은 환자들의 증상과 임상자료를 바탕으로 암을 진단하고 완치 확률까지 제시한다. 지난 1월 열린 다보스포럼(WEF)에서는 향후 5년간 15개국의 약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는 빠른 변화 속에 살고 있다. 최초 컴퓨터라 평가받은 에니악(ENIAC)이 개발 된 지 70년 만에 인공지능과 인간이 게임을 펼치는 세상이 왔다. 하지만 두려움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대결을 통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세돌은 4국에서 승리한 뒤 5국은 검은 돌로 싸워 승리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불리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더 큰 도전의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또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더 노력하고 발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세돌의 도전정신과 아름다움, 왜 바둑을 두는지조차 모르고 게임을 하는 인공지능은 넘볼 수 없는 진정한 인간다움의 일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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