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팔아 자식 대학 보내던 부모 세대, 대학 졸업하고도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88만원을 받는 세대. 이들은 왜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해마다 선거가 치러질 쯤 이면 이들을 위한 공약은 쏟아져 나오지만 그 때 뿐이다. 갈수록 두 세대의 빈곤율은 늘어만 가고, 인구 구조는 점차 빈곤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두 세대의 빈곤은 왜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한국전쟁 직후 대한민국의 인구 구조에 큰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다. 출산율이 폭발적으로 급증해 이른바 ‘베이비붐’이라 불리는 세대가 출현한 것이다. 1963년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라는 정부 표어가 나오기 전까지, 태어난 이들은 700여 만 명으로 추산된다. 불과 13년 만에 전체 인구수의 14%를 차지한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활동이 곧 나라의 경제력과 직결되는 삶을 살았다. 한편 이들이 인구 재생산을 하기 시작하면서 대한민국 인구 구조에는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마치 메아리(Echo)처럼 다시 붐을 이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이들을 ‘에코붐 세대’라 부른다.
한정된 경제적 자원을 두고 베이비붐 세대와 에코붐 세대가 싸우는 것 같지만, 실상은 구조적인 힘에 의해 양측 모두 자원을 빼앗기는 입장이다. 구조적인 힘은 실체는 없지만 양측이 서로 갈등상황에 놓여있다고 느끼게 한다. 그 구조적인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

벼랑 끝으로 몰린 두 세대

2020년이면 베이비붐 전 세대가 노년층에 접어든다. 벌써부터 노인층의 경제적 실정은 매우 나쁜 상태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7.2%으로, 평균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가계 부채 또한 전 연령대에 비해 월등히 높다. 한국개발연구원 자료에서는 60대 이상 고령층의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161%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 연령대 평균이 128%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노인들이 처한 경제적 상황에 비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안전망은 미흡한 실정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지원제도는 크게 △기초연금 △국민연금 △노인일자리 사업이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한 <2014년 노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전체 노인의 93.6%가 월 7.1만원의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지만 기초보장수급자와 의료급여대상자는 7.2%에 불과했다. 92.8%의 노인이 의료비를 국가의 아무런 지원 없이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은 에코붐 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 졸업장과 맞바꾼 학자금 대출은 2010년 기준 총 3조 7천억 원이었으나 4년 새 그 3배인 10조 7천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후 한국장학재단에서는 ‘대출이 늘어난 것은 2010년 제도를 새롭게 도입하면서, 신입생을 시작으로 매년 1학년씩 늘어나는 방식으로 시행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 사이 2배 이상 늘어난 대출자 수와 60% 가까이 급증한 상환 연체율을 놓고 본다면 결코 상황이 나아진 것이라 할 수 없다. 노년 부양비 역시 10.1%(2000년)에서 17.9%(2015년)으로 빠르게 상승 중이다.
청년에 대한 국가적 도움도 많지 않다. ‘젊어서는 고생도 사서하지’라는 말이 나온 이래로, 청년과 복지라는 단어는 함께 올 수 없었다. 서울특별시(이하 서울시)에서 올해 7월부터 시행하려던 ‘청년활동지원사업(이하 청년수당)’도 반대 세력에 부딪혀 무산될 처지에 놓여있다. 지침에 따라 서울시는 보건복지부에 청년수당에 협의 요청을 했지만 보건복지부가 수용의사를 밝히지 않아 시행이 무기한 연기되고 있는 것이다.

형평성 맞지 않는 국민연금 체계
포퓰리즘의 한계?

소득이 없는 시기를 대비하는 국민연금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며 도입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세대 간 경제 갈등을 고착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1988년 전두환 정부 때 시행한 제도다. 도입 초기에는 민영보험보다 우월한 혜택으로 국민들에게 큰 만족감을 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정치권의 인기 영합주의에만 부합한 제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소득의 3%만 내면 60세 이후 평생 동안 70%를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는 국민연금 재정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결국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총액을 기준으로 월 급여 3%에서 6%로 바꾸었고, 지급액은 70%에서 60%로 줄였다. 이후 국민연금 개혁이 이뤄져 2007년부터는 40%까지 낮아졌다.
이처럼 국민연금의 급여액이 단기간에 크게 하락하면 가입한 기간에 따라 급여 금액이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도입 초기에 가입한 세대는 낮은 기여에도 높은 급여를 받았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급여액이 삭감됨에 따라 이후에 가입한 세대는 상대적으로 낮은 혜택을 보는 것이다. 이는 세대 간 비형평성을 초래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차라리 국민연금을 아예 없애자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해당 조치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될 수 없다. 칠레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1924년 우리나라보다 60년 이상 앞서 도입했던 칠레의 국민연금제도도 기여액에 비해 급여액이 지나칠 정도로 후했다. 심각해진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1년 피노체트 군부독재 정권은 퇴직 연령을 높이는 등의 변화를 줬다. 이후 민간 운영의 연금제도를 도입해 자연스럽게 공적 연금체계에 있던 사람들이 민간 연금으로 옮겨가도록 했다. 그러나 경쟁 논리를 덧씌운 국민연금 민영화는 몇 가지 문제점을 낳았다. 연금급여액 수준이 예민하게 변동해 금융자본의 불안정성이 더 커졌다. 세대 간 급여액의 비형평성이 더 커진 것이다. 또한 저축할 여력이 없어 혜택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연금의 사회적 보호 기능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임금피크제로는
청년도 노년도 살릴 수 없다

노동시장에서도 청년과 노년층은 서로 양분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놓치지 않고 두 세대 간에 대립 구도를 세우는 ‘임금피크제’를 주요 과제로 두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정년퇴직 연수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개념이다. 표면적으로는 청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퇴직 세대의 임금을 제한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두 세대 모두 혜택을 본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정년을 연장하는 법안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퇴직할 나이가 되도록 노후를 대비하지 못해 조금이라도 더 돈을 벌기 위해서다. 또한 젊은 세대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떨어지면서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더 오래 지속해야만 한다. 서울대학교 노화고령사회연구소의 <한국 베이비부머 연구보고>에 따르면 18세 이상 성인 자녀가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80%는 자녀와 함께 살고 있으며 자녀들의 취업 비율은 35%를 상회하고 있는 상황이다. 성인 자녀와 함께 살면서 베이비붐 세대의 한 달 생활비의 평균 27% 가량은 교육비와 자녀 양육에 쏟고 있다.
장년층의 고용을 축소해 청년고용을 늘리는 임금피크제 도입은 크게 실효성이 없다는 연구결과가 수차례 발표됐다. OECD는 이미 11년 전인 2005년, <신(新) 일자리 전략>을 발표했다. 요약하자면 장년고용의 확대가 청년고용의 축소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청년고용 역시 늘어난다는 주장이었다. 국내 연구 역시 같은 골자의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기업의 정년 실태와 퇴직 관리에 관한 연구>에서도 ‘중년과 고령 인구의 고용 증가가 청년층 고용의 감소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고용 총량'과 상관없이 일자리가 늘어나야 고용이 확대되는 것이므로 기존 고용을 줄인다고 해서 새로운 고용이 창출되지 않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다.

인구구조 변화로 문제는 가속화 된다

에코붐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정책’의 존폐여부가 아니라 그 정책을 실질적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경제상황은 현재 중요한 갈림길에 놓여있다.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이룩했던 베이비붐 세대들이 이제 4년 후면 모두 노년층으로 접어들고 은퇴한다.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주평>에서 이준협 연구원은 “한국의 생산가능 인구는 2020년에 71.1%를 기록하며 이후 전례 없는 빠른 속도로 더 줄어들 것”이라 밝혔다.
우리나라에 88만원 세대가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1,000유로 세대가 있다. 1,000유로 세대란 침체된 청년 고용 현실과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탈리아 청년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 와중에 이탈리아의 73대 총리 베를루스코니는 정치 인기영합주의에 편승해 5년간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음 주자로 등판한 그릴로 총리는 이미 천문학적인 빚더미가 이탈리아에 쌓여있음에도 현실을 외면하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 정치권력은 이탈리아보다 얼마나 잘하고 있나. 이탈리아의 사례에서 어딘가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까.
 

■참고자료
- <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전쟁> 박종훈 저/21세기북스/2013
- 박재흥, "한국사회의 세대갈등", 한국인구학회, 2010
- 한정림, "국민연금 노령연금 수급자의 기대여명 추정과 수급부담구조 분석", 한국인구학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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