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삶에 가끔 부딪히는 장애물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언뜻 들으면 동양의 공자 맹자 노자, 또는 서양의 유명한 철학자가 했음 직한 이 말은 사실 내 동기가 카카오톡 상태 메세지에 등록해놓은 말이었다. 나도 그 상태 메세지를 보고 처음에는 다른 동기들과 함께 그 친구를 애늙은이라고 놀리곤 하였으나,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니 무기력한 나에게 장애물이 다가온 뒤에 다시 그 말을 곱씹어 보니 그렇게 아름다운 말이 아닐 수가 없다.
  사실상 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무언가 아주 열심히 하고 바쁘게 사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난 여태껏 매우 무기력한 사람이었다.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도 회의에는 제대로 집중하지 않았고, 알바를 하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설거지 등을 선호하는. 겉보기에는 매우 활기차게 생활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항상 무기력함에 빠진 사람. 그 이중적인 생활에 지쳐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활력을 준 것은 확실한 휴식도, 엄청난 ‘부’도 아닌 장애물이었다. 지금까지와 같이 나의 생활에 항상 불만을 느끼고 계시던 아버지와의 갈등. 나와 아버지의 성격 차이는 물과 기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상극관계였다. 여전히 무기력하게 살고 있던 나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나에게 ‘영어공부를 해봐라’, ‘군대 준비를 조금 더 해봐라’는 식의 장애물부터, 매우 사소한 문제까지 아버지의 가치관을 들이밀며 나에게 장애물을 제시하셨다. 지금에서야 그러한 잔소리가 아버지의 애정 담긴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때의 나에겐 그러한 잔소리들은 뛰어넘거나 부수어 버려야 할 장애물이었다. 그런 장애물을 극복해내는 과정에서 나는 동아리 활동과 학생회 활동을 택했다. 무슨 일이 있다면 ‘참여하지 못한다’고 하며 집에서 컴퓨터만 만지고 있던 전과는 달리 활발하게 활동에 참여해 결과물을 만들었고, 그를 핑계로 집에 들어가지 않기도 자주 하였다. 지금까지의 나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는 아버지가 나에게 던진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지는 않으면서도, 아버지가 던지는 장애물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었다. 그 이후로는 내가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아버지가 보시면서 나는 장애물을 조금씩 넘어 나갔다.
  평소와 다르게 무기력하지 않은 방학생활을 보낸 뒤 개강하기 전 나의 방학을 돌아보면서, 다시 한 번 친구의 상태 메세지를 생각해 보았다. 가끔 부딪히는 장애물. 만약 내가 아버지가 나에게 던진 장애물을 피하고자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나에게 던지는 장애물이 계속해서 이어졌더라면, 내가 그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
  개강을 한 지금, 다시 무기력한 내 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를 이겨내고, 좀 더 활발히 활동하는 이유는 당장 나에게 닥쳐올 커다란 장애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바라는 점은 그 장애물이 가끔 다가와 주었으면 한다는 것뿐이다. 무기력한 사람이 그를 극복하려 노력한다는데, 그 정도는 위에 계신 분께서 조정해 주셔도 좋지 않을까. 나에게 다가올 장애물들을 알며, 나의 무기력함을 극복하려 노력하며 다시 한 번 친구의 말을 곱씹어 본다. 무기력한 삶에 가끔 부딪히는 장애물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신헌(심리학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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