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간 모든 도서의 할인율을 제한한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1여년이 지났다. 중소출판사와 지역 중소서점을 살리는 방안이었던 도서정가제는 어느 정도 본래의 취지를 살렸다는 긍정적인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외국 간행물까지 도서정가제가 적용됐고, 도서 공급률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오가는 등 아직도 해결할 과제가 많아보인다. 15개월 지난 지금, 개정 도서정가제를 진단해봤다

출판 시장의 긍정 신호, 공정 경쟁이 가능해졌다

지난 2014년 11월, 많은 논란 속에서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됐다. 기존에는 18개월 이내의 신간도서에만 적용해오던 정가제를 구간 도서에도 적용한 것이다. 또한 기본적인 가격 할인은 10%, 간접할인은 5%까지 허용해 최대 15%까지만 할인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개정 도서정가제는 출판문화산업을 활성화시키고 대형·온라인 서점에 밀려나는 지역 중소서점을 지키기 위해 시행됐다. 온라인 서점과 동일한 할인 폭을 가지게 돼 지역 주민들이 지역서점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소장은 “도서정가제는 출판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며 “중소서점이 살아나면 출판시장이 활성화돼 양질의 책을 독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실제로 ‘공정경쟁’이 일부 가능해졌다고 전했다. 출판계는 이전처럼 소비자를 이끄는 수단으로 가격할인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에 따라 출판계는 책 할인 경쟁이 아닌 질적 경쟁을 할 수 있어, 양질의 콘텐츠를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대형출판사가 점령했던 베스트셀러 순위에 중소형출판사가 발간한 미움 받을 용기, 비밀의 정원 등의 책이 오르기도 했다.
도서정가제 개정 이후 중소서점은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주문도서 박영호 대표는 “온오프라인 할인율이 10%로 똑같아지면서, 지역민들이 지역의 중소서점을 이용하자는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다”며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중소서점을 이용해준다”고 말했다. 또한 공공기관이 지역 서점들의 책을 구매하게 되면서 그 효과는 더 두드러졌다. 문화관광체육부는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D+100일 모니터링 결과’(이하 모니터링 결과)를 통해 ‘서울시청, 파주시청, 관악구청 등 지자체에서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의 도서를 지역의 중소서점을 통해 구입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최저가 입찰을 하지 않게 되고 중소서점들도 입찰에 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져 공공기관과 협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할인폭이 제한되면서 이를 고려해 책정됐던 책값의 거품이 서서히 빠지고 있다.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같은 기간 2014년 대비 평균 도서의 가격이 4% 인하된 것으로 밝혀졌다.

개정 도서정가제, 꿈과 현실은 달랐다

지난 2014년 시행된 개정 도서정가제는 출판사, 서점 등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공급률과 무자격 업체 응찰 등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누구를 위해
도서 정가제는시행됐나

개정 도서정가제의 가장 큰 수혜가 온라인 서점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개정 도서정가제는 최대 15%의 정가 할인을 승인하고 있지만, 대형·온라인 서점은 △제휴카드 할인 △배송비 무료 △사은품 제공 등의 편법으로 소비자를 유인하고 있다. 아직 할인 여지가 남아있던 것이다. 대형·온라인 서점은 이 같은 편법 할인으로 홍보해 소비자를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중소서점의 경우 할인이 아닌 다른 홍보 수단이 크게 없어 고전을 겪고 있다
또한, 출판사가 온라인 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가격의 비율인 공급률은 개정 이후에도 변화가 없었다. 이로 인해 온라인 서점이 큰 이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급률은 같지만 판매가격이 인상돼 영업이익이 올랐기 때문이다. 공급률은 출판사와 유통사 서점 사이의 자율 계약으로 체결된다. 그러나 도서 시장 점유율이 높은 온라인 서점은 이를 이용해 중소출판사에 낮은 공급률로 책을 공급률을 요구한다. 산지니출판사 강수걸 대표는 “출판사가 펴내는 책의 정가가 적정하게 책정되려면 공급률이 60% 이상은 되어야 한다”며 “특히 한 온라인 서점 업체는 지나치게 낮은 공급률을 요구해 출판사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공급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일 한국출판인회의는 온라인 서점 ‘예스24’ 공급률 인상을 권고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출판계 상생을 위해 <예스24>에 권고합니다’라는 제목의 권고문을 통해 ‘예스24에 할인된 공급률로 도서를 공급하던 출판사들은 할인 판매가 중단되었음에도 여전히 할인 경쟁 시기의 공급률을 강조 받고 있다’며 ‘지속 가능한 출판유통 환경개선과 출판·서점계 상생의 취지에서 예스24에 공급률 조정을 권고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지역 도서관과의 상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중소서점은 무자격업체라는 복병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최저 입찰제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유령 서점’들이 나타나 입찰에 응하는 것이다. 문우당서점 조준형 대표는 “도서정가제 전에는 보통 한 관공서에 50개의 서점이 입찰했었는데, 지금은 100개까지 늘었다”며 “서적 유통만 하면 누구나 기회가 있게 돼 너도나도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도서정가제 개정은 도서관 운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서 구입 예산은 같더라도 도서 정가가 올라 구입할 수 있는 총 도서 수가 줄어든 것이다. 우리 학교 도서관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 학교 도서관 자료개발팀 정재훈 직원은 “도서 구입비가 증가해 구입 도서 수가 줄어드는 현상은 모든 대학교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이용자들이 볼 수 있는 도서의 양이 줄어드는 것과 직결돼,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에 영향을 끼친다”고 전했다.
도서 정가의 평균이 2014년 대비 4%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지만, 소비자들은 이 같은 가격 인하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정미(사하구, 51) 씨는 “책값이 하락하지는 않은 것 같다”며 “오히려 전보다 약간 오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대하여 관계자들은 할인의 폭이 감소해 체감 정가가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준형 대표는 “할인의 비율이 줄어들면서 소비자들은 책 가격이 올랐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소비자의 체감은 일부 분야의 도서 가격 하락이 전체 정가의 하락을 유도했기 때문으로도 보인다. △유아 △아동 △과학 등의 12개 분야의 평균 정가는 하락했지만 △역사/문화 △인문 △시/에세이 등의 12개 분야의 평균 정가는 인상됐기 때문이다.

'정가’없어 앓고 있는
정가제가 개선되려면?

공급률을 정률로 맞추는 것은 개정 도서정가제가 해결해야 할 큰 숙제다. 한국출판인회의가 권고한 내용에 대해 ‘예스24’는 ‘공급률 조정 문제는 개별 기업 간에 자율적으로 맺는 사적 계약’이라며 ‘출판사들이 요청할 경우에는 거래조건이나 매출 확대 방안 등을 논의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예스24’ 같은 시장 점유율이 높은 업체에 중소형 출판사는 공급률을 요구하기 어렵다.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소장은 “개정 전처럼 할인을 크게 하지도 않으면서 60%보다 낮은 공급률을 계속 요구하는 것은 출판사 쥐어짜기밖에 안 된다”며 “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이 있는데 보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많은 도서 관계자들은 할인이 없는 완전 도서정가제(이하 완전 정가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제휴카드 할인이나 경품제공 등의 추가적인 할인 수법은 온라인 서점에만 유리한 조치이다. 부산서점협동조합 박영호 해운대지부장은 “아직 변칙적인 할인 여지가 많이 남아있다”며 “이런 여지도 완전히 없앤 완전정가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전했다. 완전 정가제로 가면 소비자와도 상생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또한 완전정가제가 되면 책값 거품 역시 줄어들게 된다. 아직 남아있는 10%의 할인 여지가 사라지면서 이를 고려해 책값이 책정되기 때문이다. 백원근 소장은 “도서 가격은 여전히 10%의 할인 폭을 고려해 책정된다”며 “이러한 이유로 구조적 거품가격이 조장될 수 밖에 없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최대 할인율 15%를 넘긴 할인율로 도서를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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