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모양의 섬이 있다. 폭 200마일, 길이 500마일에 54개의 도시로 이뤄진 이 섬은 ‘유토피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덕을 숭앙하면서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고, 풍요롭게 살아간다고 한다. 하루 6시간 노동이 이뤄지며 마치 섬 전체가 하나의 가족 같다는 이곳을 혹자는 ‘노동자들의 천국’이라고, 다른 어떤 이는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라고 말한다.
  유토피아를 구상한 토마스 모어는 1477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판사 출신의 아버지 슬하에서 잠시 수도사 생활을 했지만, 부친의 뜻에 따라 법조계에 입문한다. 1504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모어는, 헨리 7세의 과도한 특별세 부과에 반대했다가 한동안 정치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모어가 다시 세상에 등장한 건 1509년, 헨리 8세의 즉위 이후였다. 이 때 모어는 △집정관 △외교특사 △재무차관 △하원의장 △대법원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게 되는데, 모어의 정치 인생에서는 크게 3가지 변곡점이 있었다. 우선 모어는 1515년경부터 에라스무스의 인문주의 운동에 적극 동참하며 그와 친교를 맺었는데, 이 과정에서 저서 <유토피아>가 탄생했다. 한편, 1517년부터 있었던 종교개혁은 정통 가톨릭을 옹호하던 모어가 가톨릭군주였던 헨리 8세의 신임을 얻어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는 1533년에는 헨리 8세와 왕비 캐서린의 이혼이 있었는데, 이를 비판하던 모어는 반역죄에 연루돼 최후를 맞게 된다.
  그렇다면 풍운아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그의 이상향인 유토피아섬의 정치는 공화제로 운영된다. 시민들이 공무원을 선출하고, 공무원들에 의한 간접선거로 섬의 최고 통치자가 결정된다. 섬 전체의 문제는 각 도시에서 보낸 3명의 연장자들이 모여 논의한다. 섬에는 사유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국가의 관리 아래 생산·분배된다. 모든 사람이 농사에 종사하는 동시에 공업 기술을 하나씩 갖고 있다. 모두가 노동에 참여하기 때문에 개인당 노동시간이 짧아도 질 좋은 제품을 충분히 생산해낸다. 집은 추첨에 의해 분배되며, 직업 사이의 귀천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토피아>에 나오는 어떤 이는 “유토피아에서는 사회적 필요가 허락하는 데까지 모든 시민이 육체의 노동에서 벗어나서 정신세계의 자유로운 함양을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는‘최선 상태의 공영 사회’인가?앞서 묘사된 섬의 모습은 일견 이를 긍정하게 만든다. 하지만, 진정 그러한가? 유토피아에는 뜬금없고 불합리한 모습들이 많이 등장한다. 남녀가 결혼하기 전에는 나체로 서로를 소개해야 하며, 여권 없이 여행을 하거나 간통을 하는 경우 노예가 될 수도 있다. 반전 평화주의를 표방함에도 동맹국이 외국군에 의해 공격당했을 경우 군을 파병해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 밖에도, 유토피아의 사회 체제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박홍규(영남대 교양학) 교수는 “유토피아 사회에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유토피아가 아닌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로서의 모습도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종숙(서울대 영어영문학) 교수 역시 “유토피아는 안과 밖을 구별하여 국민과 비국민을 차별한다”며 “전쟁하는 방식이나 외국인 용병을 고용하는 모습이 그런 대목”이라고 전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예컨대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계층에 따른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유토피아는 부의 분배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볼 거리를 남긴다. 조준현(경제학) 강사는 “유토피아에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부의 평등한 분배가 묘사돼있다”며 “유토피아처럼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해소해 비정규직도 정규직 수준의 소득과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유토피아> 

토마스 모어 저/2005/서해문집

 

 

 

  모어가 구상한 유토피아라는 이상향은 그의 저술인 <유토피아>에 소개돼있다. <유토피아>는 모어와 앤트워프의 사무관 자일스, 그리고 가상의 여행가 히슬로다에우스의 대화가 내용의 주를 이룬다. 이 책의 1권에는 당대 르네상스 유럽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2권에는 히슬로다에우스의 입을 빌려 묘사하는 유토피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유토피아, 농담과 역설의 이상 사회> 

주경철 저/2015/사계절

 

 

 

  이 책은 주경철(서울대학교 서양사학) 교수의 <유토피아> 해설서다. ‘유토피아를 여행하기 전에’에서는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가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유토피아를 구상했는지가 설명된다. 이어서 ‘농담과 역설의 유토피아’에서는 <유토피아> 1권의 내용인 모어와 히슬로다에우스의 논쟁에 대해, ‘유토피아 살펴보기’에서는 <유토피아> 2권에 해당하는 유토피아섬에 대한 해설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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