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선언했다. 아직 노정관계는 한겨울 엄동설한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거리로 나섰고, 정부는 언론사로 나섰다.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서로 남 탓하기에 바쁘다. 
  “누구의 책임인가?”. 한동안 너무나 자주 들었던 이 질문에 답하자면 노동관계의 속성을 이해하는 게 먼저다. 노동관계는 인간관계다. 계약이니 이념이니 하지만 그건 헛소리다. 산업혁명 초기 대공장 시절 얘기다. 사람 살이란 게 그렇다. 사소한 일에 마음 상할 수도 있지만, 잘만 풀어내면 안 될 일도 없는 관계다. 어느 한 사람만 잘못해서 어그러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 굳이 따진다면, 노사정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 이유는 이렇다. 
  우선 정부의 잘못이 크다. 모든 정책이란 게 그렇다. 매끄럽고 신속해야 좋다.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다. 때로는 어설프고 지체되어야 할 때도 있다. 노동계는 오랜 세월 동안 사회적 약자로 살아왔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두려워서다. 그런 그들과의 대화는 조심스럽고 또 신중해야 한다. 이끌고 앞서 나가서도 안 되고, 서둘러서는 더욱 안 된다. 수십 년간 불신이 쌓여 온 노정관계가 아닌가?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달랐다. 정부는 9·15 노사정 대타협이 서명된 이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노동5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해고에 관한 지침도 일방적으로 발표해 버렸다. 노동계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의 배려 없이 노동계와 대화를 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노동계의 잘못도 없지 않다. 이번 노동개혁 과정에서 노동계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그들은 노동현장의 영세 사업장 근로자나 기간제 근로자 그리고 구직 청년의 걸러짐 없는 목소리를 전달하고, 그 대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노동계는 프레임 싸움에 급급했다. 대안은 늘 정부나 전문가들에게 떠맡겼다. 나중에 보고받은 후 결정하겠다는 식이었다. 논의가 겉돌 수밖에 없다. “대기업 노동조합 사람들이 영세사업장 근로자들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자격이 있는가”. 80~90년대 민주화의 상징인 노동조합으로서는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노동개혁은 노사정 각자의 ‘자기 혁신’을 의미한다. 각자 스스로를 개혁하는 것이 진짜 노동개혁이다. 아직은 노사정 모두 상대방의 혁신만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그 결과는 뻔하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노사정 대타협 파기선언은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노동개혁’인지 ‘노동개악’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우리 노동시장은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비정규직 근로자는 너무나도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 한편 대기업 조직 근로자와 영세 기업 근로자 간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존재한다. 격차와 차별보다 심각한 것은 ‘시선’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바라보는 그 따가운 시선 말이다. 사용자의 시선도 그렇고, 정규직 근로자의 시선도 매한가지다. 비정규직들을 동료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귀찮고 더럽고 어려운 일을 나 대신 시켜도 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값싸게’ 말이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야말로 최선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쉽지 않은 게 문제다.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다 그렇게 되어 버렸다. 정 그렇다면 비정규직의 근로조건만이라도 획기적으로 높여주자. 고용이 불안한데 임금이라도 더 많이 받는 게 순리다. 방법은 간단하다. 사용자도 통 크게 내놓고,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도 어렵지만 양보해야 한다.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은 당연하다. 이게 노동개혁이고, 노사정 대타협이다. 겉으로는 노사정이 옥신각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속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의 책임이냐고 묻기가 민망스럽다.
 
권혁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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