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프리지아로 원정을 나갔을 때 그곳 신전에 기둥에 묶여 있는 전차 한 대가 있었다네. 과거 프리지아의 국왕이었던 고르디우스가 단단히 묶어두라고 명령을 내려서 그렇게 해둔 것이었지. 당시에 “전차를 묶은 매듭을 푼 자는 아시아의 왕이 되리라”하는 전설이 있었다네. 그런데 어찌나 복잡하고 단단하게 매어 놓았던지, 머리깨나 쓴다 하는 자들이 앞 다투어 도전했지만 아무도 풀지 못했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어떻게 한 줄 아나?
내가 2학기에 가르치는 문학치료와 자기반영적 삶(학생들은 그냥 ‘문치’라고 부른다)은 문학 장르를 하나씩 통과하면서 내 안에 있는 상처나 트라우마도 하나씩 분리하는 강의다. 첫 시간에 항상 이렇게 말한다. “이 강의가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지 않는다. 다만 온전해질 것이다” 무결점이기를 기대하기보다 나를 인정하는 과정이 본연의 나를 찾아줄 것이라는 당부의 말이다. 비공개를 원칙으로 학생들의 다양한 고민을 접하다 보면 아련하기도 우습기도 그립기도 한 과거의 나를 발견한다. 지금의 나는 ‘이거 별거 아닌데…’싶지만 지금의 그들은 아프다.
20대는 학업, 취업, 연애 등 굵직한 고민 외에도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실망과 좌절을 경험한다. 부모와의 불화,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도 있겠지만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나는 가치 있는 인간인가’에 귀결된다. 만약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어떤 일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을 것이다. 아들러는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때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타인으로부터 받는 칭찬과 상관없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우리 학교에서 공생하는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준다든가 국제구호단체에 매달 일정한 기부금을 낸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차가 있고, 번잡한 식당에서 자리를 비워준다거나 공정무역 커피를 고집하는 것도 나의 가치를 높이는 귀한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그들의 눈과 마음에 나를 맞출 필요는 없다. 칭찬에 들뜰 필요도 없고 비난에 주눅이 들 필요도 없다. 그들의 눈과 마음은 그들의 몫이다. 나를 진심으로 교정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눈과 마음이다. 타인의 시간과 장소에 내 생각이 머무는 기간은 짧을 것이다.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다. 물론 나처럼 기억력이 좋지 않다면 금상첨화다. 되도록 지난 것은 잊는 것이 좋다. 특히 그 기억이 흔쾌하지 않다면 더욱더.
나의 가치는 문치에도 있다. 학생들과 시를 읽고, 소설 속 인물이나 서사를 교감하고, 영화 안 캐릭터의 처지를 함께 의논하면서 ‘이 친구들이 내 스승이구나, 나를 키우는구나’ 싶은 순간이 불쑥 찾아올 때 나는 가치 있다. 우리 학생들이 모두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인정하여 외부세계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자아를 만들기 바라며 나는 1학기에 2학기 생각을 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단단하게 묶인 매듭을 보자마자 단검을 꺼내 단칼에 끊어버렸네. 

 이성희(교양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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