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 사하구의 한 중학교에서 3년째 무용 강사로 일하는 예술강사 A 씨는 한 교사가 짐을 옮겨달라고 요청해 흔쾌히 도왔다. 그 때부터 해당 교사는 자신의 책상 정리, 짐 나르기 등 개인적인 일들을 A 씨에게 지속적으로 시키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A 씨가 더는 못 하겠다며 항의하자 “평가점수를 낮게 주겠다”는 협박이 돌아왔다. A 씨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부탁을 다 들어줘야 했다.

사례 2 : 남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2년째 국악 강사로 일하고 있는 예술강사 B 씨는 어느날 황당한 지시를 받았다. 학교 측에서 국악 강사인 자신에게 서양음악 강의를 하라고 말한 것. 국악을 전공해 서양음악을 가르칠 수 없다고 하니 돌아온 답변은 “그럼 우리 학교에서 그만 나가달라”는 것이었다.

 
정부가 문화융성정책과 예술인 일자리, 문화 교육의 모범사례로 홍보하고 있는 ‘예술강사’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예술인들이 먹고 살기 힘들었던 것은 한두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예술인들은 본업인 예술 활동 외에 학교나 지역 기관에서 예술 교육을 병행하며 생활하고 있다. 예술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와 소통함과 동시에 생계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과 교육의 만남
문화체육관광부가 교육부와 협력해 진행하고 있는 ‘예술강사 지원사업’은 학교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해 전문 예술강사를 학교에 파견·지원하는 것이다. 2000년부터 국악교육 활성화를 위해 시작된 해당 사업은 2002년 연극, 2004년 영화, 2005년 무용·만화, 2010년 디자인·사진·공예 등으로 지원 분야를 점차 확대해왔다. 현재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총 8개 분야의 예술강사가 학생들의 문화예술 교육에 힘쓰고 있다. 정형화된 공교육 환경 속에서 문화예술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시작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과 16개 시·도의 광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이하 지역센터)의 협력으로 진행 중이다. 
 <2005~2014년 누적 예술강사 수>
 
학교·학생은 ‘만족’, 예술강사는 ‘울상’
2014년 기준 전국 초·중등학교의 약 67%인 7,809개교가 예술강사 지원사업의 수혜를 받았으며, 참여 예술강사는 4,735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수혜학생 비율은 38%이며, 사업이 시작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누적된 수혜학생은 약 255만 명에 이른다. 학교문화예술교육본부 정책연구팀 박진아 직원은 “매년 실시하는 설문조사 결과 학교 교사와 학생들 모두 예술강사들의 수업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정책을 발전시켜 확장해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학생들의 만족도는 실제 수치로 드러나기도 했다. 작년 12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발행한 <2014 예술강사 지원사업 효과분석 연구>에 따르면, 예술강사 지원사업 수혜학생의 △문화예술감수성 △자아존중감 △행복감 △정서지능 △사회성 △진로성숙도 등은 모든 영역에서 비수혜 학생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예술강사들의 경우 불안한 정체성, 저임금, 건강보험 혜택 불가 등 열악한 처우로 고통 받고 있다. <2014 예술강사 지원사업 효과분석 연구>에 따르면 예술강사들은 경제적 소득, 신분에 대한 불안정성, 학교 및 학생들과의 관계에 따른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삶의 질’ 항목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다소 낮았다. 예술강사 지원사업이 시작된지 10년이 지난 현재, 예술강사들의 근로 환경은 여전히 10년 전의 상황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부산 지역에서 무용을 가르치는 김현주 강사는 “시간당 강사료는 10년째 4만원으로 동결돼있고 연차유급휴가, 퇴직금,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대상에서도 제외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 주당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근로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각종 혜택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달 7일 진흥원은 ‘2016년 예술강사 지원사업 강사 모집공고’를 통해 개인별 최대 강의시간을 28%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예술강사들은 임금이 삭감될 위기에 놓였다. 진흥원은 건강검진, 휴업수당, 연수수당 등을 강의시간 축소 이유로 들었지만, 예술강사들은 근거가 되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예술강사노동조합(이하 예술강사노조) 김광중 위원장은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뻥튀기한 금액을 산정했을뿐 아니라 예술강사들의 의견을 구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며 진흥원을 비판했다. A 강사는 “근로조건 악화는 교육의 질 하락과 우수강사 유출로 이어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 있는 예술강사의 사정은 열악한 상황이다. 예술강사는 강사평가의 결과에 따라 이듬해 수업시수를 배정받고, 80점 미만의 강사는 재면접 대상이 돼 다음해에 강사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진흥원에서 정한 '예술강사 평가매뉴얼'의 평가기준이 평가자의 주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강사노조 변우균 부위원장은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교 측이 평가를 이용해 예술강사에게 부당업무를 지시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참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예술강사노조의 자체 조사 결과, 예술강사들의 평가·배치에 대한 만족도는 5%에 불과했다. 또 학교 측이 계약된 수업 시수를 어기거나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사례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강사가 해마다 최상위권과 최하위권을 오가는 사례도 발견됐다. 변우균 부위원장은 “평가요소가 미리 공개되지 않은 채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평가매뉴얼을 확실하게 재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5년~2014년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 추진실적>
 
너도 나도 책임없어… 답답한 예술강사
예술강사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지난 2013년 예술강사노조를 결성했다. 이후 진흥원과 교섭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요청해왔으나 번번이 거절당하고 있다. 진흥원 측은 ‘학교에 출강하는 예술강사들은 진흥원과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없으므로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도 없다’는 의견으로 일관하고 있다. 예술강사의 선발, 평가 등의 실무는 지역센터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센터 측 역시 예술강사와 교섭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무를 담당하고 있긴 하지만 모두 진흥원의 지침에 따른 것이므로 예술강사의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지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강사들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변우균 부위원장은 “진흥원과 지역센터 모두 서로 책임이 없다는 말만 하니 답답할 따름이다”라며 “그나마 서울·경기 쪽에서는 교섭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부산은 그런 것도 없어 더욱 힘들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부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김수아 직원은 “실무는 지역센터가 담당하지만 전적으로 진흥원의 지침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교섭하기에 애매한 부분들이 많다”고 밝혔다. 
 
제도적·행정적 보완 절실해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술강사들은 ‘정부 차원의 제도적·행정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6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유은혜 의원은 <문화예술교육지원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예술강사 계약기간을 1년 단위로 명시하는 한편,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수행하는 업무에 ‘예술강사의 선발·연수 및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추가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것이다. 유은혜 의원은 “정부는 문화융성정책을 내세우며 예술강사 지원사업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정작 <문화예술교육지원법>에는 기본적인 근거조차 없어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게 됐다”고 밝혔다. 예술강사들이 가장 강조한 것은 예술강사와 학교 교사 간의 협력이 원활해지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해운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연극을 가르치는 정민영 강사는 “학교와 교사, 예술강사 간에 협력적 관계가 구축됨으로써 문화예술 교육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학교 및 예술강사 차원에서 열리는 교육연수를 통해 지도안, 매뉴얼 등을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많은 예술강사들이 이러한 제도적·행정적 보완을 통해 학생과 강사 모두 즐겁게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랐다. 김현주 강사는 “아이들에게 삶의 즐거움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스스로는 그 교육의 현장에서 절망을 느낀다는 것이 모순적이라 슬프다”며 “예술강사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와 제도적 개선을 통해 학생도, 강사도 즐거운 문화예술 수업을 즐기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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