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단풍은 가뭄 자락 끝이어서인지 원색적으로 강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채화처럼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빛깔은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에게 뭉클한 시심(詩心)을 일깨워주었다. 올해 효원의 젊은 시들 55편도 눈에 띄는 수작은 보이지 않아도 애면글면 익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우리는 그들이 꾸준히 시를 공부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예년과 달리 분별없는 감정의 토로, 이를테면 대중가요의 노랫말과 같은 사랑 타령은 보이지 않았고, 적어도 나름 절제된 언어를 구사하려는 노력이 경주된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추구하는 주제나 이미지의 구축이 일관되지 못한 채 파편적으로 흩어지거나 맥락이 닿지 않는 비유들의 나열이 눈에 다소 거슬렸다. 이는 시인 자신의 형상적 비유 조직 능력과 감정의 조절에 아직은 안정되지 못함을 보여준다.
시는 순간을 포착하는 예리하고 명징한 정신을 요구한다. 산문(prose)처럼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서의 깊이를 위해 제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시행(verse)이 담고 있는 뜻이다. 흔히 비유나 시어의 반복은 소리와 색깔과 모양과 표정들이 발산되거나 집중되면서 어떤 이미지를 만들며 살짝 자리 잡아야 한다. 멈춤(止)을 통해 정서를 한껏 고양시킨 뒤 울림을 터뜨리는 것은 흡사 아름다운 몸짓으로 살포시 마음을 전해주는 춤이요, 제 속을 비워내어 깊은 소리를 울려내는 현악기와 같다. 미적으로 형상을 이루지 못한 시어의 반복은 지루하고 지칠 뿐이다.
우리는 <가뭄>을 가작으로 추천한다. <가뭄>은 <갈증>, <하늘이 두꺼운 날> 등과 함께 시적 화자가 건조한 현실 속에서 또 다른 자아에 대한 탐구가 제법 일관적으로 추구되면서, 시어의 적절한 반복과 간결한 표현이 시인의 내면적 시정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청춘이 갖는 갈증들을 딱딱하고 갈라진 눈빛을 지닌 마른 물고기, 햇빛 아래 축 늘어진 이미지로 묘사한 점이 눈에 띈다.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시상의 시적 응결이 미흡한 점이 아쉬웠다.
이밖에 메타시학을 활용하여 화자의 심리적 내면을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은유의 망으로 형상화 <감수성 1>과 흡사 한시의 집구시(타인의 시를 한 구절씩 모아서 만드는 작품)처럼 시 창작에 대한 단상들을 직조하고 있는 <시집>은 비약의 정도가 다소 심하여 전체적인 이미지 형상화가 부족한 것이 흠결이다. 산문시의 리듬에 의존한 <양파> <풍선껌>, 고단한 일상을 주목한 <도시 속의 국시>, ‘녹’을 중의적으로 포착한 <사철나무 2> 등은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들이었다. 가작을 비롯해 응모한 사람들 모두 더욱 정진하여 어수선한 시대에 시의 힘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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