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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회 부대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의적
  • 박승찬 (국어국문학 석사 15)
  • 승인 2015.11.23 04:49
  • 호수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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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형식을 만났을 때, 형식은 대부의 주인공 말론 브란도 흉내를 내고 있었다. 비록 소파가 아닌 버스정류장 벤치였지만, 몸을 잔뜩 기울이고 한 손엔 담배를 쥔 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게”
형식은 누구보다 내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계속 말해봐”
“내가 돈을 벌 방법을 알아왔어. 너도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만 할 거야. 너도 이제 이십 대 후반인데,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나는 또 형식의 허튼소리가 시작될 것을 짐작했다. 형식은 가끔 나에게 사업아이템에 관한 얘기를 종종 했다. 그중에 몇몇은 혹할 만큼 괜찮은 아이디어도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그런 계획을 예상했다. 형식은 담배를 한껏 빨더니 길게 내뱉었다. 그리고는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재를 툭툭 털어냈다.
“훔치자”
“뭔 소리야?”
“훔치자고”
“뭘? 돈이라도 훔치자고?”
“그럼 뭘 훔치겠어. 돈을 훔쳐야 제일 깔끔하지”
“니가 드디어 미쳤구나?”
“들어봐.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우리가 아는 의적들 있잖아. 홍길동이나 장길산, 뭐 로빈 후드 같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그 당시에는 도둑이라고 손가락질받고, 죄인 취급받았어도 후대에는 의인 취급을 받았다고. 그러니까 훔친 다음 우리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거야”
“현재는 현재를 평가할 수 없다?”
“그렇지”
나는 몇 초 동안 형식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평소에 지겹도록 헛소리를 해댈 때의 그 표정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진지했다. 진심이구나.
 
   
 (일러스트=김보나)
 
내가 형식을 처음 만난 건 무파마라는 정체 모를 스터디 모임에서였다. 인문, 과학, 정치뿐 아니라 연애까지 세상의 온갖 잡학을 연구하는 모임이었다. 지역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특이한 이름에 끌려 나오게 됐지만, 모집 공고에도 모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와 있지 않았다. 첫 모임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면 바로 발을 빼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히, 이 사이비 종교 같은 모임의 내 첫 질문은 무파마의 유래였다.
“음... 그게 뭐냐면 무덤을 파헤치는 마라는 의미에요. 부산에서는 친구를 부를 때 마라고 하거든요. 무덤을 파헤치는 사람들 정도로 이해하면 될 거 같네요”
그때, 내 질문에 대답을 해준 사람이 형식이었다. 형식은 유일한 스터디의 창립멤버이자,  스터디의 장이기도 했다. 으레 이런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모임의 장들은 통통한 살집에 안경을 끼고, 여드름이 잔뜩 나서는 현실의 여성보다는 가상의 여성을 더 좋아하는 경향을 보이거나, 정리되지 않은 장발에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티셔츠를 대충 걸친 채, ‘나는 외적인 겉모습이 아니라 내 적인 모습을 가꾸겠소’라는 철학자 류의 모습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형식은 깔끔하게 머리를 올리고, 말쑥한 차림으로 테이블의 상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무파마의 이름답게, 무파마의 지향점은 확실했다. 죽은 이들의 연구, 죽은 이들의 저작, 죽은 이들의 영화. 이것이 무파마의 스터디 주제였다. 누군가 무덤을 파헤친다고 하면 다소 컬트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고전연구모임’처럼 고전을 연구한다는 스터디의 목표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여타의 연구모임과는 확실히 다른 무파마의 독특한 방식이 있었다. 이를테면 스터디는 항상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사회자가 ‘오늘은 누구의 무덤을 파헤쳤습니까’라고 운을 떼면, 그날의 발제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제가 카뮈의 무덤을 파헤쳤습니다. 아직도 제 삽이 날카롭지 않은가 봅니다. 깊숙이 들어가지가 않더군요... 그래도 제가 파헤친 것은... 부조리를... 반항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카뮈의 이방인을 살펴보면... 알제리인에게 총을 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은 실존의 한 대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치고 나면 다른 참여자가 ‘아 근데... 그 무덤에는 너무 아름다운 묘비를 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외국인 노동자에게 아무런 죄의식이 없이 총을 당기는 모습이 진정한 실존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카뮈의 비석은 뽑아 버려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런 식의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대화가 마칠 때쯤, ‘이쯤에서 무덤을 덮도록 할까요. 다음 주에는 들뢰즈의 무덤을 한번 파헤쳐 봅시다’ 라고 형식이 말하면, 스터디는 끝이 난다.
항상 모임을 가졌던 그 음침한 장소도 잊을 수가 없다. 가파른 지하 계단을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가면, 왠지 음침한 분위기를 풍겼던 맥주집. 흩어진 테이블 위를 하나씩 비추고 있던 주황빛 조명등. 우리는 그곳 제일 구석에 자리를 잡고 스터디를 시작했다. 그 맥주집의 문을 열 때면, 흡사 오래된 왕릉의 돌들을 치워내고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죽은 자들이 남긴 흔적들을 뒤적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스터디가 끝나고, 다른 회원들이 먼저 떠난 뒤, 형식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승찬 씨, 어쩌면 현재는 현재를 말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지금의 내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처럼요. 마르크스나 루카치처럼 뛰어난 경제학자, 사회학자들이 문학을 즐겼던 이유가 그런 것 아닐까요. 현실을 바로 볼 수 없으니까 현실의 모델이 필요한 거죠”
그 말은 아마 무파마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한 부연설명이었던 것 같다. 나는 형식의 그 말이 좋아서 무파마를 계속했다. 나에겐 그 말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삶의 무덤에도, 언젠간 다시 화려한 비석이 세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들렸다. 그 위로가 길지는 못했다.   
내가 스터디를 시작하고 몇 주 후부터 묘한 기류가 흘렀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오기 전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일인데, 그동안 그 독특한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정말 오래간만에 들어온 신입 회원이었고, 나중에 듣기로는 열 명이었던 회원이 내가 오기 직전에 이미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결정적 이유는 기존 스터디장이 바뀐 일 때문이었다. 그 이후, 끊임없이 스터디장의 자질 문제가 계속 거론되고 있었다. 지금 형식이 스터디장을 맡기 전, 그러니까 창립멤버이자 형식의 친구였던 이전의 스터디장은 공부의 깊이가 남달랐던 것 같다. 그는 스터디를 진행하는 동안 뛰어난 견해와 지식으로 다른 회원들과의 대화를 주도하곤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형식은 내가 보기에도 대화에 별로 참여하지 않았고, 시작과 끝을 알리는 것이 역할의 전부였다. 바뀌어버린 스터디 분위기에 불만을 가진 회원들은 하나둘씩 떠났다.
몇 명 남지 않은 회원들은 그럭저럭 잘 버텨왔다. 그러나 내가 스터디를 시작한 지 딱 두 달이 되었을 때, 스터디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다. 그 문제는 스터디장의 자질이 아닌, 장이 주도하는 스터디의 방향에 관한 문제였다. 대화에 잘 참여하지 않던 형식이 어느 순간부터 태도를 바꾼 것인데, 요지는 이렇다. ‘결국 우리가 무덤을 파헤치는 것은 그 안에 갇혀 있는 영혼들을 꺼낸다는 의미고, 그 영혼들이 현재를 활보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들리는 이 발언은 결국 파장을 일으켰다. 형식이 원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참여였고, 그 참여는 구체적이지 않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간의 멤버들이 같이 움직여줄 것을 요구했다. 기존의 멤버들은 그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거나 거부의 의사를 외치며 스터디를 나갔다.
결국, 스터디는 나와 형식밖에 남지 않았다. 내가 그때 그곳을 나오지 않았던 이유를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 동정이랄까. 의리랄까. 왠지 형식을 혼자 남겨두는 게 나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형식의 말에 동의했던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현재는 현재를 바라볼 수 없다’는 형식의 그 말, 그리고 그 말을 했던 형식이 자기가 무덤에서 불러냈던 그 영혼들이 이제 현실에 있게 해야 한다는 그 말도 좋았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몇 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 나 역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 혹은 내가 이해하면서도 내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되지 않았던 그 말들을 어떤 식으로든 ‘무엇’이 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형식은 스터디가 막상 해체돼버리자 결심과는 다르게 의기소침해졌다. 많은 말들을 내뱉었지만, 여전히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만한 것이 없었다. 나 역시 ‘좋네’, ‘괜찮네’로 호응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처음 형식이 스터디에서 참여를 외칠 때도, 그것이 차라리 구체적인 목표를 가졌다면, 논리적인 설득을 할 수 있었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잔뜩 담긴 풍선은 채 띄워보지도 못한 채, 매듭을 묶던 손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조금씩 바람이 빠지며 이리저리 휘날렸다.
 
“야”
내가 정신 차리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는 만원이었다. 여름이 지나간 초가을임에도 버스 안의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꽉 찬 사람들 속에서 사우나의 습한 열기가 버스를 가득 메운 듯, 숨이 턱 막혔다. 이미 형식은 뒤엉켜 있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그나마 여유 공간이 있는 버스 뒤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 역시 표정을 찌푸리며 겨우 형식이 있는 쪽으로 갔다.
“버스에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오늘 야구 있잖아. 롯데랑 두산이랑”
“그런데 이런 날에는 에어컨 좀 켜놔야 되는 거 아냐?”
“그러니까 돈을 벌어서 택시를 타던가, 차를 타고 다니든가 해야지”
나는 형식을 노려봤다. 형식은 언제 그랬냐는 듯 딴청을 피웠다. 누군가 내 허벅지를 툭툭 건드렸다. 신호의 출처는 내 앞에 앉아있던 할머니였다. 말없이 나에게 벨을 눌러달라며 손짓을 했다. 나는 벨을 눌렀고, 버스는 다음 정거장에 섰다. 사람들이 내렸고, 한쪽 다리가 불편해 보였던 그 할머니도 몸을 일으키며 뒷좌석의 계단을 힘겹게 내려갔다.
“봐. 우리 같이 젊으면 이 만원 버스에 끼여서 가든, 찜통 같은 더위를 참든, 아무렇지도 않지만 저런 노인분들에겐 고문이야.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제대로 되지 않다던가. 뭐 그런 거”
“또 시작이네. 갖다 붙이지 마”
“아니 진짜라니까. 생각해봐. 지금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해? 내가 롤스니 마르크스니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야. 난 단지 저 할머니의 삶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은 거라고. 그리고 우리가 행동을 해야 한다고”
“그래서 결국 니가 찾은 결론은 훔치자?”
나는 형식이 내게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 들어보라고 얘기할 때마다, 행동이 없는 이상주의자라고 공격해왔다. 형식은 계속해서 유산자계급의 타도니, 노동자들의 단결이니, 그런 이야기들을 했다. 나는 형식의 그런 이야기에 지쳐있었다. 나는 이미 지나가 버린 구시대적인 산물을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고, 그것들이야말로 무덤에서 꺼내서는 안 될 것들이라는 얘기를 했다. 결정적으로 형식은 자격이 없었다. 형식은 부유했다. 그 지점에서 항상 우리는 대립했다. 나는 가난에 대해 무지한 이는 가난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처음에 형식은 기득권층이 혁명을 주도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사례를 들며 항변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형식은 자신도 뒤늦게 서야 깨달았다고, 이런 것들이 사회악인 줄 몰랐다고 외쳤다. 나는 그럴 때마다 왜 그게 사회악이냐고, 네가 가진 것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형식이 좀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집을 나와 내가 사는 원룸촌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내게 이제 더 이상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단기알바, 노가다, 전단지 붙이기. 할 수 있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하기 시작했다. 가끔 내게 일할 거리가 있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이미 내 스스로를 프리터족이라고 칭했지만, 생계를 겨우 유지 하면서 지내는 중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른 방법도 없었다. 나는 직장 같은 건 스스로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여유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경기장 앞에서 우르르 내렸고, 우리는 버스에 나란히 앉았다. 형식은 무언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창문을 밖으로 깊은숨을 내뱉었다.
“신기하지 않냐? 야구를 보러 가는 저 많은 사람들”
“이번엔 또 뭐?”
“아니, 나도 예전에는 정말 야구 광팬이었다고. 주말만 되면, 야구장에 갔었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야구장에 가는 게 두려워졌어. 뭔가 내일까지 해야 될 숙제를 잊어버리고, 놀고 있는 찜찜한 느낌 있잖아”  
“그게 혹시 무파마를 하고 나서부터야?”
형식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말을 덧붙였다.
“처음 너랑 무파마를 만들었던 그 친구, 어떤 친구였어?  그 장을 맡았다던 친구”
형식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버스가 한 정거장쯤을 더 간 뒤에야 대답을 했다.
“내가 무파마에 마, 부산에서 친구를 부를 때 쓰는 말이랬잖아. 그 애가 항상 나를 ‘마’라고 불렀어. 부산 애였거든. 처음에는 듣기 싫었는데, 나중에는 이름을 부르면 오히려 이상하더라고. 맞는 거 같아. 무파마 때문이 아니라 그 아이. 영규 때문에. 내가 달라졌던 거 같아”
형식은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다시 말을 삼켜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사건을 떠올렸다. 때론 자신의 방향마저 바꿔버리는 그런 사건들. 형식은 그 사건이 그 친구였다. 형식은 아직 그의 그림자에 머물러 있었다. 형식은 다시 얘기를 이어갔다.
“너 감독 되고 싶댔지. 저번에 뭐 한국 영화계는 변질됐다며. 예전에는 그래도 자기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남아있었다고. 지금은 관객만 남고 감독은 없다고 했었나? 진짜 감독들은 사라지게 될 거다. 그래서 네가 나서야겠다. 그렇게 말했었잖아? 그런 자신감 좋다 이거야. 그런데 지금 너 먹고살기도 빠듯하잖아. 그건 그렇다 치고. 너도 미래를 생각해야지. 결국 그걸로만 먹고 살 수 없다면, 너도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거 아니야. 돈이 있어야 원하는 작품도 찍지”
“야. 지금. 그 도둑질 하나 때문에, 너무 모든 걸 내던지고 설득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렇다고 도둑질이 나의 다른 길인 건 아니잖아? 넌 될 거다. 걱정 마라. 이게 너의 일관된 태도였잖아”
“그래 될 거야. 그건 지금 생각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으니까. 훔치는 일은 넌 이번 한 번만 해”
“너, 지금 되게 사기꾼 같은 거 알지?”
나는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바꿔 보려 했다.
“내가 아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고 했잖아”
형식은 아랑곳하지 않고 얘기를 계속했다.
“내 얘기를 일단 들어봐.”
 
“우리집을 털자”
형식이 말했다. 차라리 로빈 후드처럼 뇌물을 받은 국회의원을 습격하자고 말했다면, 별로 놀라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나는 멍하니 형식을 바라봤다. 형식은 내가 대답하지 않자,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어때? 걸려도 내가 책임질 수 있어. 우리 부모님이 나를 신고하겠어? 너를 신고하면 나도 공범인데 너도 절대 신고 못 해”
사실 형식이 그 말을 했을 때 대답을 못했던 건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티 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형식이 그 말을 뱉기 전, 내 마음속에는 이미 형식의 말들이 스쳐 지나갔다. 놀람과 동시에 내 머리는 재빠르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형식이 처음 ‘훔치자’라는 말을 내뱉었을 때, 나는 그 언어가 너무나 가벼워서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고픈 또 하나의 머릿속은 만약 걸리지 않는 무결점의 범죄라면. 그것이 불법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의로운 행위라면. 그 두 질문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형식의 말이 내가 생각했던 질문에 다가가자 나는 말을 잃었다. 부정을 하지 않는 그 순간, 나는 그 말을 긍정하고 있었다. 형식도 자신의 생각에 내가 넘어왔다고 생각했는지, 고민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옳을까라는 질문은 어디까지나 선을 넘기 전까지 유효하다. 마음은 이미 내가 계획에 성공했을 경우를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전적으로 이건 내 생각이고, 내 계획이야. 너는 그냥 따라가는 거야”
형식은 말했다. 버스는 우리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다다랐다. 형식은 잠깐 자신의 집에 들르겠다며 자리를 떴다. 나는 침묵했고, 침묵이 긍정이 될 수 있지만, 아직 제안을 거절하기에는 늦지 않았다. 여기서 한 발을 더 내딛는 순간 절벽 아래로 추락하듯 더 이상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저울이 한쪽으로 슬슬 기울어가는 것을 느꼈다. 버스정류장과 내 집. 그 오 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거리 동안 앞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한때는 정의로운 사회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했었다. 내가 처음 상경해서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 돈이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이 없으면 집에서 지낼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었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현실과 부딪혀보지 않았을 때는 몰랐었다. 누군가의 울타리 안에서 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받는 것만으로도 삶의 무게를 얼마나 덜어낼 수 있는가를.
집으로 가는 골목에 유독 높은 담벼락의 집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항상 지나치던 높은 담벼락의 집이 언젠가는 넘어야 할 곳으로 여겨졌다. 막상 내가 정말 의적이라도 된 것처럼, 담을 넘어 돈다발을 주워담고 나눠줄 생각을 하자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그래. 저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 저 사람 한 명이 가질 행복감으로 불행해질 나머지 사람들을 봐. 나도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잖아? 나는 이미 발을 내딛고 있었다.
형식이 우리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형식은 갖가지 것들을 가방에서 꺼내놓았다. 나는 말없이 형식을 지켜봤다. 우선 내 방 벽면에 지도를 붙였다. 갖가지 사진들을 붙여놓고는 핀을 박았고, 사진들 아래에는 알 수 없는 시간들을 적기 시작했다. 나는 형식이 내게 말하기 전, 이미 오랫동안 이 일을 계획해 왔고, 준비해왔다는 것을 알았다.
“근데 왜 하필 집이야?”
벽면 작업이 거의 다 끝난 후, 나는 물었다. 
“집이니까”
형식은 작업을 계속했다. 열정적이었지만, 화난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슬퍼 보이기도 했고, 형식의 표정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몇 장의 사진을 더 붙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을 꺼내서 땅에 내려놓았다.
“사실, 이 계획. 1년이 다 됐어. 그래서 이 사진 하나하나에 우리 집 내부며, 외부, 풍경들이 자세히 다 찍혀 있는 거야”
나는 형식이 작업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언젠가 한 번 SNS에서 본 적이 있던 것 같은 형식의 방, 형식의 부모님의 것으로 추정되는 방, 집 밖의 담벼락, 우리가 거쳐 가야 할 수많은 문들.
“그런데, 막상 사진들을 붙여놓고 훔칠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돈을 훔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내 과거들까지도 훔치는 게 아닐까. 지금까지 부모님의 말을 별로 거슬러 본 적도 없는 착한 나의 모습. 하지만 아무것도 몰랐고, 세상의 단면밖에 보지 못했던. 그런 과거의 모습을 나는 지워 버리는 거지”
 
우리는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더 많은 준비들을 했다. 구체적인 동선을 짰다. 형식이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리스트로 작성했다. 마침, 준비를 시작하고 2주 뒤에 형식의 부모님이 홍콩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우리는 부모님이 떠나신 이틀째 되는 날을 디데이로 잡았다. 날이 다가올수록 형식은 더 긴장된 모습이었다. 나 역시 긴장되긴 마찬가지였지만, 형식은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런 형식에게 아직 늦지 않았으니 그만하자고 말을 해도 형식은 뭐가 괜찮다는 건지 ‘괜찮아’만 반복했다. 나는 이번 일이 형식에게 최초의 반항이자 결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형식은 좀처럼 집중을 하지 못했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형식에게는 이번 일이 에덴을 떠나는 셈이었다.
그날이 왔다. 우리는 대담하게 오전에 작업을 시작했다. 형식은 공중전화로 집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계획대로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도둑’의 구색은 다 갖췄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며칠 전 시장에서 사둔 작업용 점퍼를 서로 걸치고, 얇은 손 장갑을 꼈다. 사전에 조사한 대로 보안이 꽤나 까다로웠다. 우리의 정체를 들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더운 날씨라 이미 들어가기도 전에 땀이 등을 적시고 있었다. 그날의 복장은 날씨에 맞지 않게 너무 튀었다. 나는 긴장한 탓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복장뿐 아니라 허술함 투성이었다. 너무 쉽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담장에 있는 대문 비밀번호를 그토록 쉽게 누르고 들어가는 도둑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그 집의 가족처럼 당당히 집으로 들어갔다. 집을 지키던 형식의 개도 마당에 보이지 않았다. 걸림돌은 아무것도 없었다.
형식은 이제 집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때 문제가 생겼다. 집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형식과 나는 당황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집 주위를 돌며 열려있는 창문을 확인했다. 열려있는 창문은 아무 데도 없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형식은 보안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곳의 창문을 깨기로 했다. 창문을 깨는 것은 계획에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점퍼를 벗고 창문에 댔다. 형식은 그 위를 발로 찼다. 다행히 큰 소리가 나지 않고 창문이 깨졌다. 이중으로 된 창문을 두 번 깨고 나서야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알람도 울리지 않았다. 우리는 안도했다.
천천히 집안을 살폈다. 리스트에 있는 것들을 가방에 담았다. 금고도 순조롭게 열렸다. 형식은 자기 방문 앞에서 잠깐 멈칫했다. 자신의 물건을 훔친다는 게, 자기 자신도 의아해했으리라. 훔치기 전까지 넋이 나가 있던 형식은 오히려 현장에서 긴장한 모습이 없었다. 십 분이 채 안 돼서 물건과 돈을 다 담았다. 이제는 빠져나갈 일만 남았다. 그때.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형식과 나는 서로를 쳐다봤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오전에 사이렌이 들릴 일은 극히 드물었다. 우리는 벗어나야 했다. 가방을 들쳐 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열었다. 흔적을 지울 시간도 없었다. 사이렌은 거의 집 근처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문을 열었다. 담벼락 저 끝에서 보안업체의 차가 보였다. 우리는 반대로 뛰기 시작했다. 차가 쫓아왔다. 형식과 나는 두 갈래 길에서 흩어졌다.
흩어진 다음 나는 100m 정도를 내달렸다. 나는 더 달릴 수가 없었다. 내 앞에 경찰 두 명이 서 있었다. 경찰이 두 명이 다가와 나에게 수갑을 채우는 순간이 정말 느리게 느껴졌다. 남자 두 명이 내 팔을 억세게 잡아채는 그 느낌, 딱딱하고 차가운 그 금속이 내 손목을 억죄는 감각이 너무 강렬했다. 경찰은 계속해서 나에게 뭐라고 외쳤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경찰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나는 뭔가 텅 비어 버린 채 있었다. 나는 평화로운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시민권은 박탈되었습니다. 이 사회를 떠나주세요’라는 어이없는 통보를 받은 사람 같았다. 
경찰서에 도착해서 한 시간쯤 흘렀을 때, 형식도 끌려왔다. 나는 조서 작성이 끝나 있었다. 형식은 조서 쓰기를 거부했다. 형식은 계속해서 자기 집이라고, 부모님과 연락을 취해달라고 요구했다. 형사는 현행범이기 때문에 이유야 어찌 됐던 조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형식은 버텼지만 부모님과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형식 역시 조서를 썼고, 우리는 유치장으로 인계됐다. 우리는 꿈을 꿨다. 그 꿈은 악몽이었다.
밤까지 연락을 했지만, 형식의 부모님과는 끝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음날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유치장에는 다행스럽게도 우리 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얼떨떨한 기분으로 유치장의 창살을 흔들어 봤다. 너 무 단단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형식과 나는 서로 조금 떨어져서 벽에 기대있었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한참 동안 있었다. 손에서 진한 쇠 냄새가 났다. 그때 비로소야 나는 현실감각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형식아. 그런데 왜 하필 도둑질이었어?”
내가 물었다. 작게 말한 소리가 좁은 공간에 울려 퍼졌다.
“넌 그럼 알겠어?”
형식의 질문은 언젠가 형식이 말했던 그 말의 연장 선상이었다. 구체적이지는 않았지만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형식의 말. 형식은 몰랐다. 그 무언가가 어떤 것인가를. 형식은 말을 이었다.
“사실 나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말든 상관없는 사람이었어. 근데 그 부산 친구 있잖아. 무파마를 만들었던 그 친구. 어느 날 문득 나한테 무파마를 같이 하자더라. 몇 주 동안 알 수 없는 말 몇 마디를 던지더니, 나한테 스터디를 맡기고는 홀연히 사라졌어. 그때 내가 해줬던 말, ‘현재는 현재를 알 수 없다’ 그것도 그 친구가 나한테 해줬던 말이야. 그리고 몇 주 동안 연락이 없다가 소식이 들렸어. 근데 그게 그 친구의 장례 소식이었어. 죽었대. 1인 시위를 하러 크레인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뎠대. 아마 그런 이야기를 못 들어 봤을 거야. 장례식이 끝나고 정확히 알고 싶어서 걔가 죽은 날의 뉴스를 찾아봤거든. 아무도 그 애 이야기는 안 하더라고. 그날 어떤 술 취한 사람이 자기 외제차를 부신 이야기만 도배돼 있더라. 사람 목숨이 차 한 대 값도 안 되나...”
그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형식이 느낀 감정이란 무엇이었을까. 슬픔이었을까. 아니면 안타까움, 아니면 후회. 그것도 아니면 부끄러움이었을까. 무엇이 형식을 그토록 답답하게 했고, 나아가게 했을까. 나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 감정이, 형식을 안에서 채찍질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채찍질은 여전히 형식에게도, 나에게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다만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모를 뿐.
“무엇을 해야 할까?”

박승찬 (국어국문학 석사 15)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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