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소설 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모두 열 편이다. 예년에 비해 많지 않은 편수이나, 문학이 소수 마니아의 이색 취향이거나 살림살이 걱정 없는 자들의 고급한 여기(餘技)로 사소화되고, 소설을 쓰려는 작가지망생들이 나날이 멸종 위기에 놓인 이즈음의 상황에서 여전히 문학의 위의(威儀)를 믿고 소설 쓰기를 열망하는 열 명의 젊음을 만나는 일은 기쁘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우리 시대 한국문학의 참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신경숙 표절사태의 충격과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이 아닌가. 한국문학과 문학권력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이들 문학도들의 순결한 열망을 훼손했을 법도 한데, 오히려 비루한 한국문학의 실존에 단지 절망하기보다 사태를 냉철히 성찰하려는 작품들도 있어 반갑고 고마웠다. 신경숙 논란에 대한 이 젊은 문학도들의 진지한 사유야말로 지금, 이곳의 한국문학이 당면한 비관적 상황을 돌파해 갈 수 있는 힘센 동력이며, 도래할 한국문학의 분명한 희망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응모한 작품들의 주제는 다양했으나, 그 기저에 흐르는 어떤 공통된 정서를 읽어낼 수 있어 흥미롭기도 했다. 다름 아닌 삶을 박탈하는 사회의 불온함을 직시하려는 의지이며, 비틀린 현실을 외면하거나 수동적으로 처세하지 않으려는 자각이다. 가령 고(故) 고현철 교수님의 투신을 환기하면서 사회에 무관심하고 개인의 삶/행복에만 몰두했던 자신을 되돌아보거나(<눈과 태양 사이>), 불합리한 세상에 살면서도 슬퍼하거나 분노할 줄 모르는 우리네의 무뎌진 감각을 벼리려거나(<보다 우울한 사회를 위하여>), 최근의 표절추문을 겨냥하면서 진(眞)을 가장한 위(僞)로 스스럼없이 타락해가는 한국문학의 현실을 신랄히 풍자하는(<더블-박민규 소설집>) 소설들은 그 내용과 형식은 물론 달랐으나 지향은 하나로 수렴되는 작품들로 읽혔다. 허나 이 정당한 주제의식과 재기발랄한 형식 실험에도 불구하고, 서사를 이어가는 구조는 성글거나 진부하고, 때문에 주제는 생경하게 노출되며 결말은 성급한 경우들이 많아 아쉬움이 컸다.
심사위원들은 숙고를 거듭한 끝에 <의적>을 당선작으로, <구두>와 <보리들의 루시드드림>을 공동 가작으로 결정했다. 고민이 깊었던 까닭은 예년에 비해 수상 작품들이 안고 있는 한계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리들의 루시드드림>은 루시드드림(자각몽, 自覺夢)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빌어 ‘현실을 회피하지 말라’는 주제를 의미 있게 천착해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서사는 긴장감을 잃고 인물들의 대화는 장황해지며 다소 난삽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구두>는 익숙하지만 발에 맞지 않았던 구두를 잃어버리는 사건을 통해 자기 삶의 주권을 온전히 회복하려는 갈망을 보여준 흥미로운 작품이다. 다만 사건에 의미를 입히는 과정에서 밀도가 떨어졌다. 이들에 비해  <의적>은 서사적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주제를 관철시켜 나가는 힘이 돋보인 작품이다. 정의는 실종되고 인간은 비인간으로 추락하는 세상을 도발하려는 의지가 읽혀 좋았고, 그럼에도 세상에 대한 저항/반항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직시하는 태도 역시 진지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독해한다는 독서모임 ‘무파마’의 설정도 적절했고, 자신의 집을 터는 마지막 에피소드 역시 기발했다. 그러나 인물(형식)의 전회를 추동한 것이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라는 설정은 익숙한 것이었으며,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마무리가 아쉽기도 했다. 이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적>은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자질이 충분히 엿보이는 작품이었으며 우리 심사위원들은 그 가능성에 흔쾌히 기대를 걸어보고자 했다.
수상자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보내며, 좋은 작가로 성장해 꼭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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