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책 표지에 눈길이 가서 집어 들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까만 바탕, 하얀 안개꽃, 주황색 제목 박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입니다.
소설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합니다. 처음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 채 한 장, 두 장 읽기 시작했으나, 이내 책을 다시 덮었습니다. 그저 읽기에는 그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자리 뒤편 책꽂이에 다시 꽂아두고서 지내기를 며칠, 올해 5월 18일쯤 저는 다시 이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저에게 광주라는 도시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고, 1980년 5월 18일은 겪어보지 못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공간이자,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시간이기도 합니다.
불과 35여 년 전의 일.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현대의 여러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된 바 있습니다. 영화, 소설, 다큐멘터리 등 그 형식도 다양합니다. 초점을 사건 당시에 둔 채 생생하게 재현해내기도 하고, 살아남은 이들의 목소리로 담아내기도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방법, 어떤 매체를 통해도 그 모든 것을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이 책 안에 있는 것은 그저 슬프다는 표현으로는 다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고 말입니다.
소설 속에는 ‘소년’이 등장합니다. 소년은 도청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또는 휘두르는 매질에 맞아 죽은 사람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또 다른 소년을 찾고 있었습니다. 도청 앞 광장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 외면했던 소년을 찾기 위해 ‘소년’은 도청으로 왔습니다. 친구를 버렸다는 죄책감으로 소년은 합동분향소에서 시신들을 수습하며 매일 초를 밝힙니다. 그리고 ‘그날’, 소년은 여전히 도청에 있었습니다. 돌아오라는, 돌아가라는 손을 뿌리치고 쏟아지는 총소리 속에 남아 이른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런 소년 뒤로 많은 이들이 등장합니다. 소년이 찾던 또 다른 소년은 이미 죽어 검은 숨이 되었습니다. 소년과 함께 도청에 있던 형과 누나들은 그날 이후 살아 있음을 치욕스러운 고통으로 여기며 무력감에 젖어듭니다. 되찾으려 했으나, 오히려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세상에 던져집니다. 일상을 회복할 수도, 새로운 희망을 볼 수도 없습니다. 자신들을 향한 감시 속에서 숨죽이며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냅니다. 소설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여러 명의 시선과 경험이 얽히는 과정들이 계속되며 이어집니다.
소설 속에서 하나의 사건이 수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합니다.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짓밟습니다. 죽었으나 죽음으로 끝나지 않으며, 지나왔으나 완전히 지나오지는 못했습니다. 살아있어도 온전히 살아있는 것이 아니며, 시간을 넘어, 공간을 넘어 고통은 계속됩니다. 죽은 이들에게, 살아있는 이들에게 하나의 사건은 계속해서 다가옵니다. 그 기억 속에서 모두가 ‘소년’이며, 소설은 또 다른 ‘소년’이기를 자청하는 이의 발걸음으로 끝맺습니다.
이 소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든 ‘소년’일 수 있음을,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면 시간을 넘어, 공간을 넘어 어느 누구든 ‘소년’이 될 수 있으며, 되어야 함을. 지금, ‘소년’은 오고 있습니까?

김시내(국어국문학 석사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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