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장판이 뜨거나 뜯긴 곳 있음’, ‘부모님이 정기 건강검진 안 받음’, ‘브라운관 TV거나 30인치 이하 평면 TV’, ‘화장실에 물 받는 대야 있음’…. 빙고, 흙수저 확정!
‘수저론’으로 인터넷 커뮤니티가 뜨겁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라는 영어 관용 표현에서 유래된 것으로, 부의 상징인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것은 곧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다. 금수저도 비슷하다. 이와 반대로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재산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켜 ‘흙수저’라 한다. 부모님의 재산 정도와 직업, 배경, 주거지역 등 여러 요소에 따라 수저의 종류가 분류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자산 20억 원 또는 가구 연 수입이 2억 원 이상인 경우 금수저, 자산 10억 원 또는 가구 연 수입이 1억 원 이상인 경우 은수저, 자산 5억 원 또는 가구 연 수입이 5,500만 원 이상인 경우 동수저, 그리고 자산 5,000만 원 미만 또는 가구 연 수입 2,000만 원 미만인 가정 출신이면 흙수저. 수저론은 빙고게임으로 나오기도 했다. ‘가계 부채 있음’, ‘집에 비데 없음’ 등과 같은 항목이 적힌 빙고판에 동그라미가 많을수록 흙수저에 가까운 것이다. 저마다 자세한 기준은 다르지만 수저론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같다. ‘우리가 아무리 노오력을 해도 헬조선에서는 안 된다’.
지옥 같은 우리나라라는 의미의 ‘헬조선’, ‘노력하면 이 세상에 안 되는게 없다’는 말을 비꼬는 ‘노오력’이란 표현 역시 시대에 대한 회의가 담긴 단어다. 박근혜 대통령이 “노력을 계속하다가 대통령까지 됐다”며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고 말한 것에서 비롯했다. 누리꾼들은 ‘내가 힘든 이유는 온 우주가 감동할 만큼 노오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자조하기 시작했다.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없이 그저 ‘더 노력하라’는 말로 일관하는 기성세대에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노력도 하다 보니 지친다. 언제까지 노력해야 하나.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긴 한 걸까.
수저 계급표나 빙고판이 객관적인 것도 아니고, 그것이 진짜 ‘나’를 규정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기준으로 계층을 나누는지 한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에서만 퍼지고 있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이미 청년들은 비판하고 화내는 단계를 넘어 체념하고 자조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저 ‘청년들이 나약하다’고만 지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힘든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 구조가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수저론을 두고 ‘스스로 노력할 생각은 안 하고 부모 탓만 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모르고 하는 소리. 수저론은 흙수저를 물려준 부모가 아니라 한번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다른 수저를 가질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절망의 표현이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나고 자란 이 나라를 지옥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개천에서 아무리 용을 써도 용이 되기가 불가능한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흙수저가 은수저가 될 가능성이 보여야 땀과 노력을 쏟을 희망을 갖게 된다. 가난해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때는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기회의 평등을 바라는 것조차 사치가 된 세상, 청년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헬조선을 뒤덮은 자조는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세상’을 기다리는 청년들의 외침이다. “제발 노오오오력 한만큼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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