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이야기. 사도세자의 비극을 모르는 한국 사람이 있을까?그럼에도 얼마 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는 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했다. 사도세자 이야기는 이전에도 영화로, 드라마로, 책으로 수십 번 이상 전해져 제각기 다른 관점으로 해석됐다. 더 이상 재해석의 여지가 없는 진부한 소재라 생각했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역사 해석들이 한 뒤주 안에 갇혀 모두 통폐합돼버릴 위기를 맞았다. 지난달 12일, 교육부가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겠다’며 현행 역사 교과서들을 하나의 국정 교과서로 통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교육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주요 근거는 ‘현행 교과서가 좌편향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취재 중 현직 역사 교사에게 들은 실상은 달랐다. 현행 검·인정 교과서 중 어떤 것에도 김일성 주체사상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는 부분은 없었다. 만약 있다고 한들, 교과서를 검·인정하는 주체는 교육부이므로 책임은 교육부에 있다.
교육부의 자가당착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본인들이 만든 교육과정과도 어긋난다. 지난 9월 교육부는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2018년까지 현행 검·인정 체제의 교과서로 교육하는 내용의 고시를 내렸다. 그러나 이들은 최근, 2017년까지 교과서를 내놓겠다며 비밀리에 프로젝트팀까지 꾸렸다가 들통 났다. 한 정권 안에서도 수시로 말이 바뀌는 교육 정책. ‘교육은 백년지대계다’는 이미 옛말이다.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는 여론은 날이 갈수록 거세다. 전국 교수 2천 명과 교사 2만1천 명을 비롯해 각 지역에선 일반 시민들까지도 반대 집회를 통해 반발하고 있다. 마치 4·19혁명의 데자뷰를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반대 시류에는 17살 소녀까지 동참했다. 지난 28일 부산역 앞에서 열린 ‘부산시국대회’에 참가한 전옹지(해운대구, 17) 학생이었다. 한창 교실에서 친구들과 수다 떨며 공부할 나이인데, 그는 천 명의 시민들 앞에서 교과서 국정화를 왜 그토록 강행하는지 모르겠다며 울부짖었다.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던진 한마디는 압권이다. 야당 의원의 ‘현행 교과서에서 좌편향된 기술이 어디에 있나’라는 물음에, 그는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라고 발언했다. 각계각층에서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데도, 이를 밀어붙일 수 있는 동력은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그 ‘기운’이었다. 그 기운이라는 것은 실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조선 왕조 500년 중 통치 기간이 가장 길었던 영조. 그에게도 천민의 자식이라는 가족사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 콤플렉스를 가리기 위해 그는 아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엄격했다. 2015년판 자비 없는 왕에게도 가족사 콤플렉스는 끊을 수 없는 꼬리표다. 그리고 그 꼬리표 때문에 뒤주 안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가두려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또한 역사로 기록돼 계속해서 재해석될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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